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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아 고마워

봉정암 내려놓음의 길

by 미소천사맘

엄마와 함께 봉정암에 다녀왔다.
몸이 아파 주저했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편에서 자꾸만 그 길이 불렀다. 통증이 심했지만, 막연한 끌림에 짐을 간단히 싸 들고 설악산을 올랐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고, 발가락 통증도 잠시 멎었다.

하지만 봉정암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험했다.
돌이 많고, 가파른 절벽이 이어졌다. 힘들어서 눈물도 나고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었다. 등산화 밑창이 뜯어져 버렸을 때는 정말 돌아서고 싶었다. 그럼에도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내디뎌 겨우 도착한 봉정암.

108배를 올리며 나는 나 자신을 마주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단순히 포기하는 일이 아니었다.
탐(貪), 진(瞋), 치(癡)를 비워내는 일.
마음속에 흐르던 집착과 분노, 어리석음을 하나씩 놓아보니, 그 자리에 고요한 평안이 흘러들었다. 물이 흐르듯 비워낸 뒤 찾아온 것은 편안함과 사랑이었다.

절에서 먹은 음식은 소박했지만 깊은 맛이 있었다.
그 따뜻한 밥 한 숟가락이 세상의 위로처럼 느껴졌다.
하산길에 스님이 건네주신 운동화 덕분에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몸은 고단했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설악의 산길은 험했지만, 그 길 위에서 나는 나를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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