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9. 27. 콘서트 Chapter0
7월부터 참으로 애타게 기다린 시간이었다.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서 그대들의 무대만 기다리던 그때에도, “이번엔 춥지 않을 때 만나”라는 캡틴의 말을 믿고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공식 팬클럽으로서의 마지막 선예매를 하던 날, 9월까지 언제 기다리나 싶었다. 시간이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린 건지, 어느덧 여름의 무거운 습기가 걷히고 그대들을 만날 9월의 따사로운 가을볕이 찾아왔다.
처음 선보이는 360도의 무대 구성에 예매할 때부터,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이었다. 구역 선정에 실패해서 자칫 뒷모습과 옆모습만 보다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 그리고 얼마나 또 새로운 모습을 들고 나타나는 걸까라는 기대. 예매 날이 지나고 공연일이 가까워질수록 걱정은 옅어지고 그 자리에는 설렘이 자리 잡았다. 기대와 함께 설렘은 무럭무럭 자라나서 마음을 붕붕 들뜨게 했다.
공연은 8시 시작이었지만, 우리는 1시부터 올림픽공원을 채우기 시작했다. 콘서트 MD를 사기 위해 일찍이 줄이 늘어섰고, 새 MD를 향한 호기심이 품절되어 가는 MD 소식에 대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오가며 만난 팬들과 삼삼오오 모여 공연까지 남은 시간을 쉴 새 없이 웃으며 보냈다. MD속 포토 카드를 보며 그대들의 미모를 칭찬하고, 서로 만들어온 기념품을 나눴다. 누군가 인증사진용으로 만들어온 그대들 얼굴의 타투스티커를 손등에 붙이고서는 내 손 안의 그대들을 보며 깔깔거렸다. 하풍봉과 타투스티커를 모아 함께 사진을 찍으며, 우리는 그대들을 만날 그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넷째와 눈을 맞추며 시작한 금요일의 밤, 처음 만나는 360도 무대에 핸드폰을 든 손은 방황하기에 바빴고, 어디를 봐야 할지 몰라 눈을 요리조리 굴리기에 바빴다. 저기 가 있는 캡틴을 찾아보다가, 내가 있는 구역 바로 앞에 셋째가 온 것을 알아차리면 바로 또 시선을 셋째에게 고정하곤 했다. 무대 밑으로 그대들이 내려갈 때면, 내 자리 근처로 내려온 멤버는 누구인가 두리번거렸고, 그래도 안 보이면 빠르게 전광판으로 시선을 돌려야 했다. 가뜩이나 그대들의 한 모습도 빼놓지 않고 담고 싶은 욕심에 콘서트 날이면 눈이 제일 바쁜 신체 부위인데, 360도 무대가 되니 더 바빠졌다.
그렇게 두리번두리번 가장 가까운 멤버를 찾아 집중하던 그때, 내가 셋째와 넷째가 연달아 이어지는 파트에 집중하던 그때, 어디선가 함성이 들려왔다. 함성을 쫓아가 보니, 그곳에선 캡틴이 걸어오고 있었다. 캡틴은 한 걸음씩 가까워지는데 내 머리는 한층 더 굳어져만 갔다. 손은 핸드폰의 줌을 다시 조절해야 했고, 입은 소리도 질러야 했는데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캡틴은 하염없이 가까워 만졌고, 나는 동상이라도 된 듯 얼어만 갔다. 캡틴의 걸음이 내가 있던 구역 앞에 머무를 때, 캡틴의 눈길도 내 자리 앞에 걸어둔 슬로건에 머물렀다. ‘매지컬 반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반짝거리는 펄 감과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색깔로 빛나는 내 슬로건이 ‘박준형’ 세 글자로 빛을 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가던 캡틴의 걸음이, 시선이 슬로건에 멈췄고 슬로건을 향해 손을 뻗어 왔다. 미처 조절하지 못한 핸드폰을 떠올릴 때가 아니었다. 슬로건을 건네 달라는 캡틴의 손짓에 빠르게 응답해야 했다. 공연은 흘러가고 있으니까, 시간은 멈춰있지 않으니까. 의자에 걸어둔 고리를 통째로 뽑아 급하게 캡틴의 손에 슬로건을 건넸다. 후다닥. 심장은 이미 박자를 잃은 채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어떡해’ 세 글자만이 머리에 꽉 차서 입 밖으로 아무 말도 못 한 채 입을 양손으로 감싼 채 그대로 얼어버렸다. 바로 앞에서 캡틴이 슬로건을 들어 보이며, 잔뜩 귀여움이 묻어나는 표정을 지었다. 이 순간을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아, 시선을 캡틴에게 고정해 두었다. 캡틴을 바라보는 동상이라도 된 양 그대로 굳어 버렸다.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상이 되었던 난 캡틴이 지나가고 나서야 사람으로 돌아왔다. ‘얼음’ 상태였던 나에게 공연 시작 전 담소를 나눈 옆자리 분이, 한 자리 건너 앉아 있던 지인이 날 부르는 소리가 ‘땡’을 외쳤다. 그제야 입 밖으로는 알 수 없는 환호와 함께 ‘미쳤나 봐요!’를 연발하며 꽁꽁 얼어있던 동상에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캡틴이 내 앞에 머물렀던 그 짧은 시간이 그저 황홀했다. 그저 슬로건을 보고 웃어만 지어 줬어도 나는 행복했을 텐데, 직접 듣고 나를 바라봐주는 그 모습에 나는 황홀경에 빠져버린 그런 밤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가는 발걸음, 나는 토끼라도 될 뻔했다. 신이 나서 슬로건을 꼭 쥐고 폴짝폴짝 뛰었다. 내가 디자인한 슬로건을 그대에게 쥐어 줄 수 있었다는 기쁨을 만끽한 오늘 밤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만 같다. 밤 열한 시 삼십 분이 다 돼서 끝난 공연에 막차 시간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했지만, 나는 집에 가는 막차보다 오늘 내 눈앞에서 사랑스럽게 슬로건을 들어주던 캡틴의 모습을 담아준 사람들을 찾기가 바빴다. 그렇게 그대들과의 첫날을 황홀함으로 부풀어 오른 마음과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