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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종모종 Aug 29. 2023

잼버리는 그저 명분일 뿐

무등일보 청년칼럼 2023. 08. 29.

지난 8월 1일부터 12일까지 전북 부안 새만금에서 세계잼버리대회가 열렸다. 잼버리는 1920년 런던을 시작으로 4년마다 개최되는 국제 청소년 야영대회로 ‘청소년의 올림픽’이라 불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1년 제17회 대회를 강원도 고성군 신평벌에서 처음 개최한 이후 올해 제25회 대회를 전북 부안 새만금에서 두 번째로 개최한 셈이다.


새만금의 잼버리는 기본적인 화장실 설비조차 취약했고, 매립지라 염분 농도가 높아 나무를 심을 수 없어 그늘조차 없었으며, 물이 빠지지 않아 진흙탕이 된 바닥에서 온갖 벌레가 들끓는 풍경을 가감 없이 들키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행사는 엉망진창이었고, 뒤늦게 불거진 비난을 회피하려 정치권에서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치졸한 상황이다. ‘잼버리 파국’이라는 국가적 망신이 있기까지 대체 무엇이 문제였는지 정확히 이해하려면 새만금 개발이라는 긴 역사를 들여다봐야 한다.


‘새만금 사업’은 1970년 간척지로 만들어 농지를 늘리고 식량을 지급하겠다는 명목으로 처음 등장하게 된다. 노태우 후보의 선거 공약으로 공식화되며 1991년 새만금 간척종합개발 기공식이 치러졌다. 그저 전북도민의 표심을 위해 노태우 정권부터 윤석열 정부까지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개발은 더디면서 목표만 부풀려져 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경제적인 면에 대한 충분한 검토도 없고, 환경적 가치 등에 대한 충분한 고려도 없었다. 그러다 2017년 8월 17일 새만금은 2023년 세계잼버리대회의 개최지로 확정된다. 심지어 선정된 것은 아직 매립이 진행되지 않았던 해창갯벌이었다.


해창갯벌은 관광레저용지였으나 마땅한 예산 없이 흐지부지 방치되다 잼버리 유치를 위해 농업용지로 변경하고 농지관리기금을 통해 매립한 부지였다. 여기서 잼버리는 방치되던 해창갯벌을 서둘러 매립할 좋은 명분이 된 것이다. 매립 시 사용한 흙은 동진강 하구에서 퍼 올린 펄 모래였다. 물이 섞인 준설토로 갯벌을 급하게 매립한 탓에 지반이 안정될 틈도 없이 자연 배수 기능을 상실한 상태에서 행사를 치렀다. 재앙의 근본적인 이유는 폭염이나 폭우가 아니라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심지어 배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새만금호의 관리 수위를 낮추게 되고, 그나마 하루 두 번 바닷물이 들어왔단 인근의 수라 갯벌은 말라가기 시작했다. 


수라 갯벌은 새만금 신국제공항 예정지로 새만금의 마지막 남은 갯벌로 알려졌고, 최근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곳이다. 그나마 소량의 해수 유입을 통해 생명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던, 더 많은 해수가 유입된다면 다시 복원될 가능성이 너무나도 큰 수라 갯벌이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수도권에만 집중된 발전을 지역으로 돌리기 위해 각 지자체는 국제행사나 대규모 개발사업을 무리하게 유치하곤 한다. 순간의 지역 개발과 일자리 창출을 가져올 수는 있으나 과연 얼마가 긴 호흡으로 지역에 스며드는 지는 분명히 따져봐야 할 문제다.


순천은 순천만을 지켜서 도시의 정체성과 경제력을 쌓아 올렸다. 군산은 비록 많이 훼손됐으나 아직 지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새만금 신국제공항 공사가 17일 입찰을 완료하고 9월 중순 선정 및 착수할 계획이었으나, 잼버리 사태로 부정적 이미지와 함께 사업 백지화 이야기까지 나오며 설계심의 자체가 미뤄졌다. 어쩌면 지금이 경제적인 면과 환경적인 가치에 대해 충분히 검토하고 논의할 수 있는 타이밍인지도 모른다. 지역을 위한 지속가능한발전을 위한 옮은 방안은 대체 무엇인지, 누적 손실이 4천억 대가 훨씬 넘는다는 지방공항을 유치하는 게 정녕 지역을 위한 개발인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시기이다.




무등일보 청년칼럼 2023. 0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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