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청년칼럼 2024. 01. 09.
‘독립출판’은 2010년대 초반에 등장했다. 개인 제작자들이 소량으로 제작하며 대체로 ISBN이 없는 책을 지칭하던 ‘독립출판’은 10년이 훌쩍 넘어가며 훨씬 넓은 영역과 의미로 확장되었다. 그렇다면 그 전 시대에는 ‘독립출판’이 없었을까? 개인 또는 소규모가 책을 제작한다는 의미에서 바라보자면 그렇지 않다. 책을 쓰거나 만드는 작은 움직임은 꽤 오랜 시간 이어져 오다 ‘독립출판’이라는 큰 흐름으로 합쳐졌을 뿐이다.
새해가 되며 문득 전공과도 무관한 이 장르를 업으로 살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대학교 졸업 작품집 제작을 위한답시고 터무니없는 회비를 모으는 관례에 오기가 생겨 직접 만들겠다 큰소리쳤던 그때일까.(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스스로 어이가 없고 아주 엉성하게 만들어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첫 책이다) 아니면 친구들과 함께 시험공부를 한답시고 열람실에서 이책 저책 뒤적거리는 걸 좋아했던 중학생 시절일까.(아마도 책의 물성 자체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이때임이 틀림없다) 그것도 아니면 집에 유일하게 존재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 테이프가 끊어질 때까지 돌려봤던 미취학 아동 시기일까.(야수가 벨에게 도서관을 보여주며 마음을 얻는 씬에 세뇌되었을 것이로 추측한다)
여전히 책방과 출판은 어려운 것투성이고, 수습하기 급급하며, 한없이 부족하고, 매일 배우느라 바쁘지만 그럼에도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얕은 전문가 흉내를 내보자면 지금은 ‘독립출판’의 시대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구독자를 직접 찾아 나서는 ‘일간 이슬아’로 기존 출판계를 뒤흔든 이슬아 작가를 전후로 보수적인 출판시장은 많은 변화를 거듭해 왔으며, 2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제작하거나 소비했던 독립출판물은 점점 넓은 연령대와 다양한 목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온라인 인쇄소를 통해 소량의 책 주문이 가능해진 기술적인 흐름과 개인이 출판사를 등록하는 게 어렵지 않은 사회적인 흐름도 밑거름이 됐다. 2024년 1월(현재) 기준으로 출판사/인쇄사 검색 시스템(https://book.mcst.go.kr)에 등록된 영업 중인 국내 출판사 수는 106,243개이며, 그 중 광주광역시는 1,752개에 달한다. TV 앞에 앉아서 리모컨을 누르며 프로그램을 고르는 것에서 벗어나 유튜브라는 인터넷 공간에서 자기 방송을 만드는 것처럼, 단순히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것에서 벗어나 자기가 원하는 책을 만드는 시대에 도래했다는 뜻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가 있고, 본인만의 콘텐츠로 무엇인가를 생산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글과 책이라는 콘텐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매해 늘어나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 수치가 책 판매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책 판매만으로 작은 책방이 운영되기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다. 약간의 과장을 더하자면 책방에는 책을 사러 오는 손님보다 책을 만들고 싶어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훨씬 많다. 수요보다 공급이 넘쳐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읽는 독자가 아닌 쓰는 독자의 시대라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쓰는 독자의 시대라고 도깨비방망이처럼 책 한 권이 뚝딱 생겨나지는 않는다. 기록해야 글이 되고, 글이 쌓여야 책이 된다. 책은 온전한 원고 없이 탄생할 수 없는 법이다. 어떤 것을 기록해야 할지 고민하고 쓰고 다듬어가는 인고의 과정이 필요하다. 최소한 ‘나’라는 독자는 설득해야 한다.
수요보다 공급인 지금의 시대를 환영한다. 어찌됐든 (어떠한) 독자의 시대가 있어야 책이 존재할 테니까. 자기만의 책을 위해 삶을 돌아보고 고민하고 의미를 발견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