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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u letar Mar 27. 2023

그 남자의 BGM (6)

 그 양반, 술집 다니면서 여자 허벅지나 주무르시는 분이. 무슨 혀가 그렇게 기실까.


 뭐라고?


주성은 내 말엔 대답 없이,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는 헤프게 입을 벌린 피조개만 뒤적였다.


 주성아, 남들이 여자 허벅지를 주무르러 다니든, 남자 허벅지를 주무르든, 별로 관심이 없어. 난 우리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내가 우리 회사 윗대가리들 싫다고 몇 번이나 말했었지. 넌 계속 그 사람들이랑 술이나 마시고 돌아다니고 얘기 듣고 그렇게 다녀. 너 하고 싶은 대로. 난 당분간 너 안 보고 싶다.


 아. 겨우 일주일 만에 봤는데 또 잠수를 타겠다고.


내 말이 끝나자 그는 자리를 박차고 가버렸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웃어버렸다. 내가 만일 이 일로 소설을 쓴다면 남자 주인공의 대사를 이렇게 썼을 것이다. "너는 내 말은 못 믿니? 내 말을 좀 믿어 보라고." 그러면 여자 주인공은 못 이기는 척 그 남자를 더 기다려주는 거다. 그러나 현실에서 누군가와의 대화는 언제나  예상을 빗나갔다. 주성과의 대화는 목 안이 쩍쩍 갈라질 만큼 갈증이 일었고······. 대화가 끝나고 나서 돌이켜 보면 여전히 나는 그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주성이 가고 난 자리엔 나와, 비와, 파라솔과, 아직 식지 않은 피조개 구이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정 과장과 연락하지 않는 동안, 회사에선 크고 작은 사건들이 벌어졌다. 강남역 지사에서 벌어진 사건은 사안이 엄중해 그쪽 직원들이 본사에 몇 번이고 다녀갔다. 그러나 정 과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3개월 전인 5월 셋째 주, 강남 지사의 직원인 미혼 남성 A와 기혼 여성 B가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셨다. B는 어떠한 이유 때문인지 당시 상황을 사 측에 낱낱이 고했다. 두 사람의 주장은 서로 엇갈리고 있으나 현재로서 A가 B를 강제 추행 하였다고 주장하는 상황. 사 측에서는 그간 A의 업무 태도에 관련해서도 조사하고 있는 상황 가운데, 그가 횡령을 해왔다는 정황까지도 발견되었다.


조용한 사무실에 구두굽 소리가 몇 번씩 우르르 몰렸다 다시 우르르 사라지고 대표실에서는 두런두런 말소리가 종일 끊이지 않았다. 나는 평소 A와 친분이 있던 정 과장도 행여 이 일에 연루된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정 과장은 연락을 받지 않았다.


 


주성은 보름 만에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도 웃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나의 그런 모습에 만족해했다. 그는 일전에도 다툼 이후, 화해를 위해 내가 평소보다 더욱 몸을 밀착하며 웃자,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웃을 수 있느냐며 따졌기 때문이었다. 주성은 매우 자주, 웃는 내 얼굴에 침을 뱉었다.

사람은 다들 저마다의 상식을 가지고 살지만 가끔 그것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경우도 있다.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것은 애초에 쓸모없는 일이다. 상식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야 평화롭다. 그런 면에서 나는 정 과장과 사내연애든 나발이든 그만 끝내버리는 것이 건강에 이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성과 나는 회사 로비에 있는 커피숍에 앉았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자 주성이 입을 열었다.


 딱 두 가지 질문만 할게. 응, 아니.라고만 대답해 줘.


 뭔데.


 너 나 사랑하니?


주성은 나를 웃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2주 만에 나타나서는 뭐가 어떠냐고? 잠수 탔잖아. 난 너 같은 남자는 처음 만나 봐. 기가 막힌다고. 근데 지금 나한테 뭘 물어?


 아니. 너도 나한테 연락 없었잖아. 네가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없다면 나 그냥 가려고. 내가 아직 좋으면 내가 그동안 했던 생각들을 이야기해 볼게.


나는 커피숍 테이블을 뒤집어엎는 상상을 했다. 커피를 바닥에 쏟고, 그리고 최대한 크게 소리를 지르는 거다. 이 사람이 창피하도록.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폭력성이 느껴졌다. 그건 최악의 기분이었다.


 좋아하지. 좋아하니까, 여기 앉아있지 않겠어?


 응, 아니.라고만 대답하라니까. 나랑 계속 만날 마음은 있어?


 응.


화가 치밀어 오르다 못해 말초 뜨거워지며 온몸에 따가웠지만, 참고 "응"이라고 대답했다.

 

 나 생각 많이 했어. 그전엔 연애할 때 여자친구들 입에서 먼저 헤어지잔 말이 나오게 만들었거든. 지쳐서 나가떨어지게 만들었어. 그런데 당신한텐 그러지 않으려고.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게 자랑이야? 그건 뭣도 아니고 그냥 쓰레기 같은 행동이야. 나한테는 그러지 않아서 내가 감사해야 해?


 그렇게 말하지는 말고. 내가 살아온 방식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거 같아. 그런 얘긴 듣기가 싫고. 어쨌든 너한테는 좀 더 노력을 해보겠다는 뜻이야.


나는 그가 왜 나를 계속해서 만나려 드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랑해서 나를 만나다고 하기엔 나는 그에게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잘못된 걸까. 정 과장은 내게 어떤 식으로든 칭찬 한 마디 한 일이 없다. 온라인 속 여자들을 보는 눈과, 자신의 애인을 보는 눈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고 싶었다. 논리에 부합하지 않는 과거사들, 제 부모까지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가며 바꾼 인생드라마를, 그 TV화면을 부수어버리고 진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는 나에게 있어서 끊임없이 순도 100프로의 분노를 일으켰지만 그 자신은 단 한 번도 나에게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점이 나를 미치게 했다.


그 남자의 BGM (7)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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