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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vu letar Apr 28. 2023

2,000개의 메시지

선생님이 쓰신 글은 착하잖아요. 저도 착한 글을 쓰고 싶거든요. 근데 막상 쓰고 보면 제 건 냉랭한 경우가 많아요. 선생님은 애초에 착한 사람이라서 착한 글을 쓸 수 있고, 저는 아니라서 그런 걸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 신발 밑창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3월 중순부터 4월 20일까지 6주간 에세이 쓰기 수업을 들었다.


 와. 좋은데요?


회사 대표는 이 얘길 듣자 입을 동그랗게 벌리곤 그렇게 말했지만. 글쎄.

 

수업을 듣고 있던 6주 내에 회사는 이사를 했고 집과는 더 멀어졌다. 업무는 늘었고 상황과 관계없이 늘 그랬듯 회식은 잦았고. 교회에서 새로 시작된 세미나와 집회. 덕분에 체력은 바닥을 쳤다. 그럼에도 가만히 있는 성정이 못 되는 나는 또- 목요일마다 나 자신을 그 멀고 먼 글쓰기 수업장소로 내몰았던 것이다. 더욱이 힘들었던 것은 수업을 함께 듣던, 나보다 열세 살 어린 친구가 알고 보니 내 집 근처에 살았다. 정말이지 원망스러웠다. 한 시간 반을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닌 사람과 지하철을 타야 하다니.


사회초년생과 틀딱 개꼰대 중 하나와 육 개월간 합숙을 해야 한다면, 단연코 나는 틀딱 개꼰대를 택할 것이다. 다음 세대의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그 천진함을, 내 세계관에서 실용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기란 내겐 거의 고문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녀를 피하기 위해 1시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방향을 포기하고 굳이 2시간이나 걸리는 루트를 택해, 돌고- 또 돌았다.


사람들이 떠나고 혼자 앉은 지하철 안에서 내내 고개를 숙이고 뒷목을 주물렀다. 그렇게 겨우겨우 집으로 기어 들어간 나는 허물을 벗듯이 옷가지를 벗었다. 그리곤 욕실에 서서 한참 동안, 미간을 들여다보며 패인 주름이 조금이라도 옅어지기를 바라며 손가락으로 이마를 비비는 것이었다.



글쓰기 수업은 비쌌고, 따라서 최악이었다. 부른 가격보다 20만 원 더 저렴했다면 어쩌면 쌍수를 들고 그 수업을 극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객관적인 시선이고, 아무리 수업이 저렴해진그건 전혀- 내가 원하던 내용이 아니었다. 커리큘럼인 줄 알았던 안내글은 나중에 알고 보니 강사가 쓴 책들의 제목, 즉 이력일 뿐이었고 그건 내게 있어서 엄청난 반칙이었다. 수업 내용은 2만 원짜리 작법서 세 권이면 모조리 다 습득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매 수업마다 힘이 빠졌다.  


선생은 여느 실력 없는 강사들이 그렇듯 학생들에게 자기소개를 시키며 호구조사를 했고, 다른 글쓰기 수업을 들어본 일이 있는지 묻기도 했다. 그 질문에 나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6년 전, 한 기관에서 소설작법을 배웠다. 8주짜리 수업 세 종류를 들었고 그때 너무나 운이 좋게도 강사로 M작가님을 만났다. 그는 현대에 몇 남지 않은 직업적 윤리의식이 투철한 사람이었는데, 그로 인해 나는 단기간 내에 주제의식이 있는 소설 한 편을 완성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후 나는 2년간 9편의 소설을 썼고 그것들로 6번의 등단을 시도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모두 미끄러졌다.


한동안 나는- 좌절과, 잊을만하면 고개를 빼꼼 내미는 희망 사이에서 짧은 글들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더 이상 소설은 쓰지 않았고 아무도 볼 수 없을 500장의 에세이를 모았다. 나는 가끔 인쇄된 그 페이지들을 의미 없이 손 안에서 넘겼는데, 그럴 때마다 얼굴을 향해 힘없는 바람이 불어왔다. 내가 그러는 사이, 이제 '등단'은 너무나 낡고 또한 늙은 단어가 되어버린 것이다.


글을 잘 쓰는 것과 글이 알려지는 것과 그것으로 먹고사는 것과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모두 별개의 문제다. 그 시절 등단에서 실패했지만, 글이 알려지지도 않았지만 창작을 해야만 하는 나 역시도 이미 작가의 반열에 서있는 것이다.


내가 계속해서 글을 쓰는 이유는 어느 책의 제목처럼 '언젠가는 혼자서 일해야'하기 때문이다. 나를 담고 있는 회사는 훗날 사라지게 될 것이다. 혹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겠지. 그때는 다시 취업할 마음이 없다. 혼자 남은 시간 아래에 도착하면, 글만큼은 꼭 잘 써야 된다고 생각한다.



특별하게도 이번에 만난 선생의 수업엔 그와 독대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것은 명백한 취미수업이었으므로, 합평을 민망해할 학생들을 배려한 선택이라고 했다. 독대의 시간에 그는 학생들이 즉석에서 쓴 글을 평가했다. 마지막 수업이던 날에도 나는 그와 둘만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맞아요 기쁨 씨. 이렇게 하면 돼요. 이렇게 쓰면 결국은 '모 아니면 도다.' 하는 메시지를 줄 수 있잖아요.


 선생님, 그런데 전 이런 뻔한 메시지 같은 건 쓰고 싶지 않아요. 이런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이야기잖아요. 저는 뭔가 더 좋고, 특별한 메시지에 대해서 쓰고 싶어요.


 기쁨 씨. 음······.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세상에 그렇게 특별한 메시지는 많지 않아요. 기쁨 씨는 미술을 전공했잖아요. 그때를 생각해 보면, 매번 그릴 때마다 특별한 그림이 나오던가요? 한 2,000번 붓질하면 그중에 한 두 개? 좋은 그림이 나올까 말까 하죠. 글도 마찬가지예요. 모든 게 다 그렇죠. 그래서 계속해서 써야 돼요. 계속해서.


선생이 그 말을 하는 순간, 나 또한 그가 쓴 단 한 페이지 때문에 여기에 와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1층 우편함에 카드 명세서가 꽂혀있는 게 보였다. 거기엔 이번 수업료도 청구되어 있었다. 나는 천천히 계단을 오르면서 카드값을 이체했다. 그리고 옷을 훌러덩 벗고는 욕실로 바로 가지 않고 책장 앞에 서서,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선생의 책들을 모아 한 곳에 가지런히 꽂았다.


illust by Hana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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