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부모를 닮아간다는 말이 있던데,
나는 일단 겉으로는 엄마보다 아버지를 꽤나 많이 닮은 편이다. 그렇다 하면 타고난 성품은 , 아무래도 그 역시 아버지를 많이 닮았을 테다.
자라면서는 보통 긍정적인 성향이었던 엄마 미화씨의 보살핌으로 그럭저럭 나름 성장할 수 있었던 듯하며.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주변인들이 자녀들을 치켜 내세울 때. 그러니까 그들이 자식자랑을 할 때면 은근 기분 나빠함을 드러냈다. 물론, 지인들과의 자리에선 그녀가 어땠는지 나로선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그 당시의 일을 나에게 전할 때만큼은 미화 씨의 감정엔 털끝만치 숨김이 없다.
한데 잠시 떠올려보면 이 또한 뭐 , 마땅히 알길없긴 마찬가지인 듯하기도.
내속으로 낳아 십삼 년 , 십 년째 기르는 아들 둘 속도 당연히 모를 판이고, 어느 날엔 감쪽같은 내속도 잘 모르겠으니까.
어쨌든 미화 씨는 그럴 때엔 나에게 샐쭉대며 이야기하곤 한다.
"윗집 언니네는 그 집 아들이 이번에 냉장고를 바꿔줬다더라. 최신형으로."
"누구네집 딸은 뭐뭐 하는 남자랑 결혼을 했다더라."
"그 집 딸은 무슨 박사가 됐다고 자랑을 얼마나 해대던지."
대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며 삐죽거린다.
어느 날엔 "엄마도 딸들. 사위들이 세탁기, 티브이, 싱크대 바꿔준 거. 기타 등등 있으니까 이야기해!" 소리를 빽 질러줄까 보다 싶다가도 그만두고 만다.
그저 듣다못해 맞장구를 쳐주는 시늉만 하며 "아 그렇지 , 우리도 선물준거 있잖아. 엄마도 사람들한테 그거 자랑하면 되지. " 이쯤 하고 둬버린다.
어제저녁 무렵부터 역시 속을 알길 없는 큰아들 덕에 속이 무척 상하는 일이 있었다.
저녁준비하기도 마땅찮았겠다. 치킨이나 실컷 먹자 싶은 마음에 무려 종류별로 세 마리나 주문을 하고 , 생맥주 또한 잊지 않았다.
우울하고 착 가라앉기만 했던 기분이 비 오는 저녁. 바삭한 닭튀김을 뜯으면 좀 나아지려나 ,
오후. 미화 씨와 오랜만에 전화통화를 하는데 은근 실룩거리며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내는 게 아닌가. 이번엔 끝내 한마디 했던 것이 떠올라 목구멍 어디쯤. 그만 콱 멕혀버리는 듯했다.
"그냥. 그건 엄마 속이 꼬부라져있는 거 아냐? 그래서 그렇게 자랑한다고 생각되는 거겠지!"
나이가 들면 대게 남성은 남성호르몬수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여성호르몬수치가 증가하게 되며, 마찬가지로 여성도 급격한 호르몬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던데. 그 때문인 걸까,
언제부턴가 내 어릴 때 엄마였던 미화 씨와 다르게 느껴지는 건. 미화 씨의 호르몬 수치 때문인 걸까. 아니면 순전히 나의 호르몬 수치 때문인 걸까.
어쩌면 그 누구의 호르몬 때문이 아닐는지도 모를 일이다.
엄마의 보살핌 아래 엄마밖에 모르는 천진난만했던 여자아이가 훌쩍 자라 어느덧, 가정을 이루고 아이 둘의 엄마가 되었으니.
옛말로 치면 강산이 여러 번 족히 변했을 테 였다. 길다면 긴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 흘러버렸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이 언젠간 변하게 될 테지.
미처 눈치챌세라 끊임없이 변하고 움직이기에 마냥 호르몬 탓만 할 수도, 야속한 시간만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나대로 여전히 보통 흘러가는 채 살아가겠지만.
무언가를 원망하며. 어떤 세월만 탓하려 들진 않으련다. 이런 생각을 느닷없이 되뇌며 , 이래저래 오늘밤도 점점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