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혜 Nov 07. 2023

그날 울었던 걸까, 웃었던 걸까


학교에 가는 건 오랜만이었다. 평소 화장을 진하게 한다거나 눈에 띄도록 화려하게 옷을 입는 쪽이 아니다. 안 그래도 이목구비가 뚜렷한 편이기 때문에 , 자칫 눈화장에 라도 힘을 들였다가는.. 더군다나 주목받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터라. 생각만 해도 어지럽다. 어쩐 일인지 예정된 시간보다 일찌감찌 나갈 채비를 마쳤다.  거울에 비춰본 내 모습이 은근 마음에 들었다. 좋아하는 머스크 계열의 잔잔하게 포근한 향수까지 뿌리고 나니 더욱. 두를 즐겨 신지만, 이번엔 단정하 하얀 운동화를 꺼내 신는다. 외출 후 집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신발 손질이기 때문에 나의 신발은 한결같이 매끈하고 깨끗할 수밖에.


아무튼 2024년 중학교 신입생 배정 업무 학부모 설명회에 참석할 예정.  강당이 있는 5층까지 걸어서 올라갈 참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것쯤은 무척 간단한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대단한 착오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제법 심각한 운동부족. 강당에 다다르자 하필이면  신어버린 하얀 운동화에 대비될 정도로 얼굴벌게져 있었다. 헐떡이지 않도록 꼭 맞는 운동화를 일부러 신었음에도. 가쁘고 거칠게 숨 쉬는 소리를 내는 것 또한 참을 수 없이 보태어지니.  쨌거나 결국 헐떡거리게 되어버린 건 마찬가지였다.


조금 뒤, 나는 또 한 번 무언가에 대해 참을 수 없게 되었다. 나란 사람은 도무지 그럴 수밖에 없이 생겨 먹었다는 사실에 묘하게 웃음이 나기도 했다. 실은 나는 종종 큰아이의 뒤통수를 보기만 해도  울음이 나버리곤 한다.  그런 아이가 두 달 후쯤에는 초등학교를 졸업한다는 것과,  아이의 중학교 입학 관련 원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에 나는 묘하게 종일 초조해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이랬던  마음이  담임선생님께서 낭송하신 문장에 결국  터져버리고 만 것이다. 맨 뒷줄에 앉아 있기도 했을뿐더러. 어쩐 일인지 이때 강당안은  조금 소란 했기에, 또렷이 듣지는 못하여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아이들을 따뜻한 봄에 만나 추운 겨울에 헤어지는 것은.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계절에 포근하게 새로운 도약을 하길 바라는 마음, 추운 겨울에  온기로 품어주며 작별하고 싶은 선생님의 마음을 어쩌면 담은 것은 아닌가 싶다는.  끝으로  아이들을 정말 진심으로 아끼며 사랑하신다는 정도의 내용. 한데  나는 대체  울어버렸다고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웃어 버렸다고 해야 하는 걸까. 어지러웠다.


집으로 돌아와서까지도  소란스럽고 어지러운 마음은 진정되질 않았기에. 별수 없이 냉장고를 열어 캔맥주를 꺼내 들고, 접시에 귤을 서너 개쯤 담아 소파에 앉았다. 캔을 따서 입술에 갖다 대자, 맥주는 단숨에 목구멍을 타고 식도를 차갑게 긁으며 싱겁게 사라져 버린다. 조금 나른해져 버린 기분이 들었다.

 

한순간  달빛에 흐릿 해진 듯.  열세 살 앳된 소녀가 서있다. 어슴푸레 비추지만 분명 시린 빛이 반짝이는 눈밭에. 내가 살던 송정마을 대화집의 마당 한 편 눈밭.  달밤에 보는 박꽃처럼  새하얀 눈에 반사되어 단발머리 열세 살 소녀의 얼굴이 더욱 깨끗하고 선명하게 희다.  소녀는 소매가 반뼘넘게 긴 어두운 남색 모직 재킷, 무릎아래로 한 뼘 정도 내려오는 회색치마를 입고, 새카만 스타킹 위론  하얀 양말을. 검은색 굽이 낮은 누가 봐도 단정한  구두를 신고  있다. 마치 학생용 구두라고 쓰여있기라도 한 듯 반듯한.


열세 살 소녀는 영 귀찮은 듯, 못마땅한 듯, 성가신 듯, 이제 그만 좀 하라는 듯.  아직 마흔이 채 안된 젊은 엄마를 바라보며 찡그리고 있다. 엄마는 싱글싱글 소녀가 마냥 귀여워 죽겠다는 듯. 예뻐서 어쩔 줄 모르는 채로. 연신 은백색 니콘카메라 셔터만 눌러대고 있다. 소녀는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곧  있으면 녀가 중학교 입학을 하기에, 한 뼘 정도는 크게 맞춘 교복을 막  들여온 참다. 엄 열세 살 소녀에게 교복을 입혀놓고  조금만 가만있어 보라며. 네가 너무나 예뻐 가만히 두 눈으로 보기 조차도 아까워 죽겠다는 듯. 렌즈 안으로 제 곧 중학생이 될  딸아이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 가만  눈에 새겨 필름 속으로  는다. 카메라 필름 안의  소녀는 언제까지나 박꽃처럼 새하얗기만 할 것이리라 . 언제까지.






매거진의 이전글 조금 오래된 기억에 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