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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혜 Aug 20. 2023

스타벅스에 가면 가끔 재미있는 일이 생겨  반갑다


우리는 같은 테이블에 한동안 마주 앉다. 하나 다음을 기약할 수는 없을 터였다.  내내 서로를 마음껏 쳐다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슬쩍 흘겨보았을지언정.

어느 곳에서 정말 우연히 스쳐 지나게 될지라도, 서로를 알아볼 수조차 없을 테지.

어쩐지 조금 아쉬워알 수 없는 마음이다.


아이들 개학 후 첫 주말. 첫째 석이 친구와 그의 동생을 집으로 초대하게 되었다. 그런 김에 용(남편)의 제안으로 석이친구, 그의 동생, 첫째석이, 둘째 . 아이 넷 데리고 에버랜드 다녀오기로 했다.

8월의 세 번째 주말이지만, 한낮의 더위는 맹렬하기만 하다. 곧 다가올 가을에 못내 아쉽기라도 한 듯 , 무척 선명하게.


나는 더위에 무척 취약한 편이라 네 명의 아이들과 용을 놀이기구 쪽으로 보낸 뒤, 언제나처럼 에버랜드 내의 스타벅스로 향했다.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 디카페인 아이스 바닐라라테를 주문했다.

오후 2시 이후엔 항상 , 디카페인을 찾는다. 오후시간에는 카페인에도 제법 취약한 편이기 때문이다.


들고 간 책을 펼쳐 스무 페이지 정도 읽을 무렵이었다. 노란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 베이지색 모자를 쓴 낯선 여자가 내 앞에 바짝 다가와 섰다. 무언가 이야기를 건네는데 매장 내가 소란스러웠던 탓에 또렷이 들리진 않았다. 하나  눈빛과 손짓으로 그녀가 건네고자 하는 이야기를 어느 정도 이해할  있었다.


내가 커피를 올려둔 작은 테이블 앞. 낯그녀 . 비어있는 내 테이블 앞  의자에 조심스레 앉더니, 이내 들고 온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아까보다 조금 더  조심스럽게  내려놓는다. 그러다  쓰고 있던 베이지색 모자를 벗어 내려두고 , 핸드폰든 채. 얼굴을 비춰보며 송골송골 맺힌  땀을 훔쳐낸다. 그때  짧게 눈이 마주쳤다.


순간, 어쩔 수 없었다. 서먹한 웃음이 피식  나왔다. 그녀도 나도.

커피숍을  빙 둘러보니 비어있는 자리 없이 , 영 복잡하기만 했다.  내 마음처럼.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제 앞자리에 잘 앉으셨어요. 날도 더운데 목좀 축이고 땀도 식히실 겸   천천히 드시고 일어서세요.라는 말쯤이라도 건네야 해야 하는 걸까,  


조금 고민이 되었으나 , 그만두기로 했다.

아무래도 더욱 어색해지면 , 소름이 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반팔을 입고 있기 때문에 그랬다가는 , 무방비로 드러난 내 팔뚝돋아 닭살이 무척 볼썽사나워    염려되기도  했으니.

역시 다시 생각해 봐도 그러지 않았던 건 , 탁월했던듯 싶다.


책을 한 장쯤 넘길 즈음이었던가. 두장쯤 넘길 즈음 이던가, 갑자기 그녀는 주섬주섬 짐들을 챙기더니  아까와는 다르게 무서운 속도로 일어서 떠나갔다. 굳이 뒤를 돌아 쳐다보지는 않았다. 갑자기 인사도 없이 떠나간 그녀에게 혹, 미련이라도 남은 사람처럼 보일까 봐였을는지.

어쨌든 그녀가 왜 그렇게 급히 자리를 떠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다른 빈자리가 눈에 띄어 작별인사도 건넬 여유조차 없었을 테지,라는 짐작만 해볼 뿐.


잘 가세요. 반가웠어요. 다음에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또 뵙겠습니다. .  무척 아쉽지만 , 다시 스치더라도 나는 당신을 쉽게 기억해내지는 못할 겁니다. 어쩐지 몹시 당하긴 했으나,   덕분에 모처럼 재미있는 생각을 실컷  할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문득 찾아왔다  갑자기 버린 쩐지 조금 문스러운 자. 녀를 떠나보내며  꺼내지도 못할 말들을 굳이 겁게 떠올려 본다. 뜨악하게도.


나는 가끔 이럴 때마다 , 엉뚱하기도 하여 털털한 내가 소름 끼치도록 놀랍기도. 세심낯을 가려 숨 막히게 어색 하기도 한 내가 어이없 애처롭기도. 밀하지 못하여 느슨하고 어설픈 나라서 애써 사랑스럽기도 하다.

아무튼 재미있는 세상에 살고 있여러모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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