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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Jun 23. 2023

또 다른 걱정

내려놓기

둘째가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콧물이 줄줄 흐르면서도 코가 막혀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아이를 보니 대신 아파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이런 내 마음이 하늘에 닿았을까? 평소에는 내 마음도 몰라주더니 또 요런 건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얼른 감기를 안겨주셨다. 덕분에 한 달 가까이 해온 운동을 잠시 멈추고 약을 먹기 위해 밥까지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다. 그래서 슬프게도 3주 동안 뺀 몸무게가 3일 만에 제자리를 찾는 중이다. 아휴.. 설상가상으로 어젯밤부터 첫째가 목이 아프다고 했다. 음.. 그러면 이번에는 아빠..? 아니다. 온 식구가 아프면 안 되지.



나는 이제 물약병의 눈금이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창문에 비친 햇볕이나 거실천장의 조명등만으로도 눈금을 비춰서 맞출 수 있었지만 이제는 물약병의 눈금이 보이지 않아서 아이들의 약을 챙겨주기가 어려워졌다. 이런 날이 올 거라 예상을 했고 그래서 많은 걱정을 했었다.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면 약을 어떻게 챙겨줘야 할지 캄캄했다. 그런데 정말 다행이게도 초등학교 2학년과 4학년이 된 아이들은 이제 약은 스스로 챙겨서 먹는다. 작은 물약병에 항생제시럽과 콧물시럽을 용량에 맞춰서 넣어주고 가루약까지 야무지게 넣어서 흔들고는 사탕이나 젤리 하나 준비해서 꼴깍꼴깍 잘도 먹는다



그러고 보면 항상 걱정과는 다르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제 글자가 안 보이게 되면 나에게 휴대폰은 무용지물이겠구나 싶었다. 첫째의 휴대폰을 사주던 날, 제일 먼저 아이와 카톡을 주고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보이스오버라는 화면을 읽어주는 기능을 알지 못했으니까. 아이와 카톡을 하는 게 소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걱정과는 달리 보이스오버기능 덕분에 나는 카톡은 물론 브런치에 글도 쓰고 뉴스기사도 읽고 쇼핑까지도 어렵지 않게 하고 있다.



눈에 관련한 걱정뿐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수많은 걱정과 고민이 꼬리의 꼬리를 문다. 우리 집에는 작은집에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어항이 하나 있다. 이 어항을 볼 때마다 저 유리가 깨져서 유리파편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물이 흘러서 전기콘센트에 들어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된다. 또 아이들이 단것을 많이 먹거나 밀가루 음식을 심하게 찾는 날이면 괜스레 걱정이 되고 가끔 아토피가 있는 둘째가 몸을 벅벅 긁기라도 하면 걱정을 넘어서 화가 나기도 한다. 가끔은 지난 일을 후회하고 고민하느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낚시를 즐기는 남편의 안전이 걱정이 되고 아이들의 등하굣길, 대구에 계신 엄마의 모든 것이 걱정이 된다. 그러고 보면 내 하루가 걱정으로 시작을 해서 걱정으로 끝나는 듯싶다.



과연.. 내가 정말 걱정하고 고민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을 내려놓는 것보다 걱정과 고민을 내려놓는 것이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닐 때가 더 많지 않은가. 걱정을 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것이고 걱정을 하지 않아도 일어나지 않을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인데 말이다. 하루하루를 좀 먹듯 내 삶과 시간을 갉아먹는 걱정과 고민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결국은 걱정과 고민을 어떻게 내려놓을 것인지가 오늘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

걱정 - 마음이 놓이지 않아 애를 태움

고민 -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애를 태움

(네이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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