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난 시각장애인이지만 웬만한 건 스스로 이겨내려는 버릇이 있다. 어릴 적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고, 내 자존심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다가가지 못하는 소소한 일상들이 발목을 잡는다. 그런 나는 두려움보다 “어떻게 하면 나도 할 수 있을까?”라며 마음을 먹게 된다. 우리 세대라면 아마 공감되는 말 아닐까 싶다. 나의 어린 시절엔 장애가 있는 자식을 세상에 내보내기보다 집안에서 끌어안고 잔잔한 일을 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스스로 해결하려는 마음이 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세월 때문일까? 아니면 당장의 환경 때문일까? 시각도 청각도 점점 약해지면서 시각 3급에서 1급으로 재판정 받게 되고, 청각 장애도 경증 판정을 받았다. 이후 가장 크게 온 변화는 활동지원서비스를 지원받게 된 것이다. 현재 담당 활동지원사 선생님이 처음 오셨을 때 내게 고백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생각난다. 시각장애인을 담당하는 것은 처음이라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당황했지만, 선생님도 나도 조금씩 적응해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시각장애는 크게 전맹과 약시가 있지만 그 안에서도 어떻게 보이는지, 어느정도 보이는지 무궁무진하다. 그렇다 보니 시각장애인을 도와주려 할 때 무작정 도와주기 보다 천천히 앞으로 다가가 “도와드릴까요?”, “어떻게 도와드리면 될까요?”라며 먼저 불어봐 주셨으면 좋겠다. 아무 말 없이 무작정 도와 주시면 잘 보이지 않는 나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고, 누구에게 어디로 끌려가는 거지? 싶은 혼란과 공포감이 들기 때문이다. 턱이나 계단을 오르내릴 땐 도와 주시는 분이 한 계단 먼저 천천히 오르내리며 인식시켜주면 쉽게 따라갈 수 있다.
나는 활동지원사 선생님과 화요일이 되면 강원도장애인종합복지관 프로그램으로 이동하고, 수요일이면 교회 오전예배를 간다. 이후 선생님께서 퇴근 하시면 내게 가끔 전화 하시는 이웃이 계시다.
이웃) 커피?
나) 네, 놀러 갈까요?
이웃) 응
우리는 늘 짧은 대화로 소통을 이어간다. 나의 속상한 사정도 잘 들어 주시고, 조언도 해 주시는 이 분은 언어장애와 오른쪽 팔 다리에 마비가 있으신 여성분이시다. 그 분은 항상 부지런하시다. 운동을 꾸준히 하실 뿐 아니라 스스로 주거환경도 깨끗이 관리하신다. 그러한 모습을 바라보며 매번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짧은 단어로 조금씩 이야기 하거나, 전하고자 하는 단어를 그대로 표현하기 어려워 하시다 보니 가끔 소통에 어려움이 생길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손바닥 위에 한 글자 씩 써 주시면 금방 대화가 이어진다.
이렇게 금방 소통이 되는 건 오랜 세월 간 함께한 시간 때문이 아닐까?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마주보며 우리들만의 대화를 할 수 있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