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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술꾼도시워킹맘 Dec 22. 2022

시작하기 좋은 나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너무 열심히 살았다.


재수도 안 했다. 어학연수도 다녀오지 않았다. 휴학도 없었다. 초등학교 6년, 중 고등학교 3년씩, 그리고 대학 4년을 마칠 때까지 숨 가쁘게 달렸다. 졸업하며 스물넷에 입사해 지금까지 6,500일 넘게 회사에 다니고 있다. 이직도 안 했으니 신입으로 입사해서 18년 차 직장인이 될 때까지 주구장창. 미취학아동 시기를 제외하고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제외하곤 공부를 하던지, 일을 하던지, 아무튼 무언가는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말이 출산휴가, 육아휴직이지. 절대 휴가가 아님을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은 알 거다)

 


살아오며 지금껏 나를 돌아볼 생각을 못했다. 쫓아오는 이도 없는데 뭐가 그리 바빴는지 모를 일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깊게 사유할 시간이 없었달까. 때가 되어 졸업을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갔다. 운 좋게 입사도 어렵지 않았고 20대의 끝자락에서 결혼도 남들과 비슷하게, 이때쯤은 아이도 낳아야지 했다. 비교적 순탄했던 인생. 문득 40대가 되고 나니 궁금해졌다. 절반 남짓 남은 인생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을지. 20년이 될지, 30년이 될지, 40년이 될지 모를 남은 인생을 지금까지처럼 순탄하게만 살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 들었다.

  


24살 입사 후 나보다 여덟 살 많았던 사수가 물었다.

"원래 공대 가고 싶었어? 꿈이 뭐니?"

이건 무슨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대학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나름의 결과에 취해있던 나에게 뜬금없이 또 새로운 꿈이라니. (대기업 입사가 꿈은 아니었지만 당시 부모님의 자랑이 되었고 뭔가 해냈다는 생각에 더 이상의 꿈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던 것 같다) 진짜 어른이 되어 ID카드 휘날리며 식사 후 스타벅스 커피도 사 마시며 돈도 벌고 신나게 살아갈 일만 남았는데 꿈이라니.  

"엄마는 제가 교대 가길 바라셨어요. 선생님만 한 직업도 없다고. 그래볼까 하긴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공대에 갔는데 그럭저럭 잘 맞는 거 같기도 하고. 가끔 교대 갔으면 어땠을까 생각 정도만 하죠.”

"그래? 수능 다시 봐. 수능 보고 교대 가고 임용도 보고.”

“하하하…” 웃어넘겼지만 속으로 미친놈이 남일이라고 쉽게 얘기하나, 뭐 이런 시답잖은 조언을 하고 있나 싶었다. 이후로 같이 일하는 몇 년 동안 그는 만나는 후배들마다 꿈에 대해 물었고, 공부가 더 하고 싶었던 후배 하나는 진짜 박사과정을 들어갔다. 또 다른 동료는 퇴사하고 벤처도 차리고 말이다.

왜 뭔가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까. 그 말을 들었던 스물넷의 나는 진짜 말도 안 되는 얘기라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스물넷은 그냥 애기다. 교대, 두 번도 갔겠단 말이다. 꼭 교대가 아니었어도 뭐라도 했으면 뭐라도 됐겠다 싶다.




같은 학교를 졸업하고 S사에 입사한 선배. 회사 몇 년 잘 다니며 결혼하더니 와이프 등살에 떠밀려 의대 준비를 시작했단다. 동기들이 비웃었다. 나이가 몇인데 이제 와서 의대를 준비하냐고. 의대 가기도 쉽지 않거니와 졸업하고 의사 되면 몇 살이냐고. 공부를 몇 년이나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결국 의대 대신 약대에 갔다. 그리고 그는 자기를 비웃었던 동기들이 50대가 되어 회사 잘린 뒤에도 할아버지 약사가 되어 오래오래 일도 하고 돈도 벌며 대접받는 노년으로 살아갈 테다.


생각을 하며 살자



재수하면 뒤쳐진다, 취직이 늦어서 어쩌나. 결혼이 왜 이리 늦니, 아이도 얼른 낳아야지.

왜 들 그리 남 걱정이 많으신지. 왜 그렇게 빨리 가라 재촉인지. 언제 죽을지 모르니 인생을 절반쯤 살았다 치고, 이제는 숨 고르기 한 번 하고 생각을 하며 살아가야겠다. (21년 기준 대한민국 평균 기대수명은 83.6세. 여자는 86.6세이다. 이런, 아직 절반도 안 살았네)

늦었다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특히 4~50대에게는 정말 그렇다. 나이 40쯤이면 대부분은 직업이 있거나, 누군가의 엄마이며 아내이고 가족이거나 각자 나름의 꽉 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시기인 듯하다. 삶의 뿌리는 이미 든든히 있으니 어설프고 무모한 도전 한 번쯤 한다고 인생이 망가지랴. 털고 일어날 힘이 아직은 남아 있는 나이이다. 더구나 지금 시작이라도 하지 않으면 체력도, 열정도 중년을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다.




내 인생은 내가 살아내는 것. 누가 대신 살아주지 않음은 물론 책임져주지도 않는다. 남들이 하는 싫은 소리 한 두 마디쯤 들으면 어떠랴.



박완서도 마흔이 되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다. 무엇인가를 시도함에 늦은 나이는 없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고 브런치 작가로, 작가를 넘어 저자의 삶을 꿈꾼다. 꿈꾸는 건 자유이니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 보려 한다. 내친김에 하나 더. ‘사’자 달린 전문직을 꿈꾸며, 5년 안에 변리사 시험을 치러볼까 한다.





이미지출처 : 픽사베이

블로그 : https://m.blog.naver.com/1012w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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