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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컬러스 Jan 22. 2023

아이와 대중목욕탕에 갑니다.

"엄마는 짠순이야"

아이들이 원하는 물건을 잘 사주지 않고,

그 이유로 물건의 가치나 가격을 비교하며 거절하는 나에게 첫째가  자주 하는 말이다.


나는 비싼 스타벅스던 저렴한 메가커피던 커피매장에 가서 돈을 쓰지 않는다.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지만 한잔에 4~5천원 남짓 하는 그 돈이 아깝기 때문이다.


아이들 학원을 많이 보내지 않는 이유도, 엄마표 영어를 하는 이유도 학원비로 쓰는 돈이 아깝기 때문이다.


명품백보다 캔버스백이 편하고,

백화점은 강연이나 영화관을 이용하러 가는 곳일 뿐이다.


화장대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샤워 후 아이들 로션을 함께 사용한다.




이런 내가 돈을 쓰는 몇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세신이다.

(그렇다. 바로 목욕탕의 때밀이 비용이다)


내 세신 역사의 처음은

결혼 준비 중 엄마와 함께 간 목욕탕에서였다.


(그때도 나는 돈을 쓰는 것보다 모으는 게 재미있던 시기여서 돈을 주고 때를 민다는 건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엄마는 결혼을 앞둔 막내딸에게

세신을 시켜주셨다.


처음은 남에게 몸을 맡긴다는 게

부끄러워 어색했지만

잠시 뒤 나는 '와~ 이게 이렇게 편하고 좋다고?'

이렇게 나는 세신의 매력에 빠져버렸고


그 뒤로 지금까지 십여 년간 내 손으로 때를 밀어본적이 없다.


아니 그 뒤로 나는 스스로 때를 미는 능력을 상실해 버렸다.




매일의 샤워로 일상을 보내다

몇 주, 혹은 몇 달에 한번 찾는 대중목욕탕에서의 세신은

그동안 일상을 잘 버텨온 나에게 주는 보상이자

작은 사치였다.



어릴 적 마른 인형을 들고 목욕탕을 다녔던 나는

요즘 내 두 딸아이와 대중목욕탕을 간다.


평소엔 내가 세신을 받는 동안

옆에서 얌전히 놀며 기다리던 아이들이었는데

너무 피곤했던 명절연휴

나는 아이들도 세신이모님께 맡겼다.


'이야~ 엄마는 결혼 전에 처음으로 돈 주고 때를 밀었는데

너희는 벌써 그 나이에 돈 주고 때를 밀다니...

참 좋은 세상이야'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그.런.데


아차.


아이들이 이 좋은 세신 손맛을 알아버린 모양이다.




아이들 때 밀어주려고 이태리타월도 챙겨

대중목욕탕을 찾았는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 엄마 나도 때 밀고 싶어요"


락커에서 돈을 더 꺼내와

(하필 오늘따라 지갑에 현금은 왜 이렇게 많이 들고 나온 건지...)

떨리는 손으로 세신 대기줄

락커 키 아래에 현금을 넣어둔다.




요즘

세신의 기본비용은  25,000원

얼굴에 오이라도 붙이려면 30,000원

마사지까지 추가하려면 60,000원이 넘어간다.


몸이 작은 아이라고 더 저렴하지 않다.

(살찐 나를 추가요금 받지 않으니 손해는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아 본다)


보통 세신 시간은 30분.

돈은 어른과 같은 비용인데 빨리 끝낼까 봐

벽에 붙은 시계를 매의 눈초리로 지켜본다.


25분의 시간이 지나고 아이의 세신이 끝났다.

보통 어른은 샴푸 비용은 별도인데

아이들은 머리까지 감겨 트리트먼트까지 해주셨다.


빨리 끝낼까 봐 매서운 눈으로 시간체크하던

나의 뽀족했던 마음이

잠시 부끄러웠다.


매점에 가 이모님들이 좋아하는 음료수를 한 병씩 사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건네어드리고 목욕탕을 나선다.




우리 세 모녀는

들어간 지 2시간 30분이 지나서 목욕탕을 나왔다.


(함께 간 신랑은 차에서 2시간 가까이 기다렸다고 한다)


'샤워하려고 목욕탕까지 오신 거예요?'

라고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아이들도 같이 세신을 했다고 하자


신랑 : " 목욕탕에서 뭘 한 거야?"


나: "FLEX?"


신랑 : "목욕탕에서 한 십만원 썼나?"

(사투리 나오는 걸 보니 저기... 당황하셨나 봐요?)


나 : 입장료 28,000원

세신 75,000원

음료 10,300원

113,300원 썼네.


그 뒤로 신랑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음부터 목욕탕은 아이들 학교 보내고 혼자 다녀와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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