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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초 Jun 04. 2023

엄마의 병을 알게 되다.

나의 지속 가능한 식문화 시작에는 엄마가 있었다.

 ‘먹고 산다.’ 사람들은 흔히 살아가는 것을 표현할 때 이런 말을 쓴다. ‘먹고살기 힘들다.’ 또는 ‘돈을 벌어야 먹고살지.’와 같은 표현으로. 인간의 생활에는 기본적으로 의(입는 것), 식(먹는 것), 주(사는 곳)가 필요하다. 세 가지 모두 필수적이라고 하지만 ‘먹고 산다.’는 표현에서 의(입는 것)과 주(사는 곳)는 ‘산다’라는 문장 안에 함축되는 반면에, 식(먹는 것)은 ‘먹고’라는 표현으로 따로 분리된다. 그렇다면 먹는 것이야 말로 인간에게 있어 기본이 되는 아주 중요한 것이 아닐까? 입을 것과 사는 곳보다 우선시 되는 기본 중의 기본말이다.


 하지만 먹는다는 것은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라서 인지 사람들에게서 자주 잊힌다. 특히나 하루의 24시간을 초단위로 사용하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더 자주 잊힌다. 밥보다는 일이 우선이어서 바쁠 때는 쉽게 끼니를 거른다. 그리고 끼니를 거른 만큼 다음 식사 때는 최대한 맛있고 배부르게 먹으려고 한다.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이 음식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를 생각하기보다는 일단 맛있고 배부른 것이 중요하다.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신경 쓰고 싶지 않을 것일 뿐. 맛있는 것을 배부르게 먹는 그 행복한 순간에 걱정을 더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걱정할 것이 산더미 같은 이 각박한 사회에서 맛있는 것을 먹는 즐거움마저 포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 또한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같은 방식으로 생활했었다.


 인생을 뒤흔들 엄청난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사람의 가치관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먹을 것에 대한 나의 가치관을 바꾼 사건은 2019년 12월의 어느 날에 일어났다. 그날 나는 회사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아빠의 전화였다.


“오늘 저녁에 일찍 와라.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아빠는 평소에 내가 회사에 있을 때는 전화를 거의 하지 않는다. 전화를 해서 할 이야기가 있으니 일찍 오라는 말까지 했다면 보통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엄마가 장이 좋지 않다고 해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그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다른 날보다 집중해서 빨리 일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와 아빠가 무거운 표정으로 거실 소파에 앉아있었다. 가방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거실에 앉으니 잠시 머뭇거리던 아빠가 입을 열었다. 이야기를 요약해 보자면 이랬다. 엄마가 얼마 전에 받은 대장 내시경 검사에서 직장 쪽에 암을 발견했고, 이미 진행이 많이 되어 폐 부근에도 전이가 발견되었으며, 진행 정도로 보자면 4기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4기라면 말기라는 것인데. 믿을 수가 없어 슬픔을 느낄 새도 없었다. 이게 진짜라고? 이런 드라마 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난다고?


 그다음 주에 엄마는 바로 치료에 들어갔다. 수술 전에 항암치료를 먼저 해서 종양의 크기를 줄인 뒤 수술에 들어갈 거라고 의사가 말했다. 어두운 표정의 엄마에게 의사는 이어서 말했다.


“요즘 치료기술이 상당히 발전해서 4기라고 해도 치료와 수술을 잘 받으면 충분히 완치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심각한 상황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잠시나마 위안이 되는 말이었으나, 아직 암이라는 위협적인 존재와 맞서 본 적이 없는 우리에게 와닿는 말은 아니었다.


 항암치료를 시작하며 우리 가족의 생활은 크게 달라졌다. 그리고 건강을 잃는다는 것과 먹지 못한다는 것의 무서움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항암치료는 2주에 한 번씩 진행되었다. 주사를 이용해 항암 약물을 몸속에 투입하는데, 약물을 투입하고 거의 4~5일 정도는 음식을 먹지 못한다. 먹기는커녕 음식을 입에 대지도 못하고 냄새만 맡아도 다 토해버린다.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것들은 오이나 토마토, 귤과 같이 상큼한 것들인데, 그것들조차 겨우 한두 입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상태가 좋지 않은 날에는 물조차 입에 대지 못한다. 나는 마시는 물에서도 비린내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때 처음 알았다.


 2주에 한 번씩 그것도 4~5일 동안 먹지 못하는 날들이 지속되니 엄마는 눈에 띄게 야위어 갔다. 하루에 3kg이 빠진 적도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항암치료로 인한 각종 부작용들도 엄마를 괴롭혔다. 말초신경이 둔해져 손가락 발가락의 감각을 잘 느끼지 못했고, 이유 없이 발톱이 빠졌다. 갑자기 코피가 날 때도 있었다. 또 입안이 헐고 잇몸이 약해졌다. 살이 빠지고 부작용에 시달리면서 체력도 약해져 걷기도 어려워했다.


 다행히 치료의 경과가 좋아서 몇 차례의 항암치료 후 수술을 받게 되었다. 치료의 경과가 좋은 만큼 수술의 결과도 좋았다. 의사는 수술이 아주 성공적으로 끝났다며, 앞으로 항암치료를 조금 더 하면 완치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수술 후의 항암치료였다. 이미 앞선 몇 차례의 항암치료로 체력이 약해져 있는 상태에서 수술까지 했고, 수술 후 체력이 더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또다시 항암치료를 해야 했다. 치료를 버틸 수 있는 체력을 기르는 것이 시급한 문제였다. 그때부터 우리는 몸에 좋다는 음식은 다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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