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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snow Dec 18. 2022

우리들의 블루스

슬픔을 추는 사람들이여




드라마를 자주 보진 않지만 가끔 마음에 꽂히는 드라마가 있다

'우리들의 블루스'가 그중 하나다

사람들의 삶과 그 안에 공존하는 희로애락을 짙고 깊이 있게 녹여놓은 드라마였다.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주인공이었다.

주어진 매 순간을 붙들고 살아가는 그들의 사연 하나하나가 뜨거웠고 서글펐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애환을 소홀히 다루지 않았고 모든 아픔과 슬픔에는 이유가 있다고 해석해 주는 듯한 작가의 메시지가 느껴져 보는 이에게 잔잔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마지막 사연의 주인공 '동석'은 더욱 그랬다.

동석의 어머니는 일찍 남편을 잃고 어린 동석을 혼자 키우게 되자 동네에서 끼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넉넉한 집의 첩으로 들어가는 삶을 선택한다. 하필 동석이의 또래 친구 아버지였다.

동석은 의붓아버지의 아들들에게 끌려가 모질게 맞고 갖은 서러움을  당한다.

하지만 그러한 자신을 어루만져주기는 커녕 오히려 차갑게 고개를 돌리는 어머니.

동석은 사무치는 외로움을 넘어 어머니를 향한 분노에 치를 떠는 기나긴 시간을 홀로 견뎌야 했다.




그렇게도 동석이의 마음을 외면했던 어머니가 긴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말기암이라는 기가 막힌 이유를 대며 동석에게 의붓아버지의 제사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한다.

동석은 뼛속 깊게 박혀있는 원망으로 함께 길을 떠나며 이 여정의 끝에는 반드시 내가 평생토록 눌러왔던 한스러움을 퍼부어내리라 벼르며 길을 떠난다.

하지만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동석은 자신도 미처 알지 못했던 감정들이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매서운 바람에 딱딱하게 얼어버려 다시는 그 어느 틈도 허락지 않을 것 같은 땅에서도 따뜻한 볕이 스며들면 간절하게 때를 기다리며 숨여있던 여린 싹이 민낯을 내밀고 나오는 것처럼,

어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채워질수록 동석의 마음에도 왠지 모를 설렘과 따스함이 스며들고 있었다.


치유의 시간이었다.

평생 혼자서는 도저히 풀어낼 수 없었던 감정들을, 한없이 밉고 원망스럽기만 했던 그 대상에게 이제야

비로소 꺼내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동석의 가슴속 저 깊이 묻혀있던 감정의 덩어리는 동석이 익숙하게 알고 있던 미움과 원망이 아니었다.

그리움과 애틋함이었다.


기운 없이 흔들리는 어머니의 손을 붙들어주며 오히려 설레어하는 모습이 너무 절절해서 눈물이 났다.

그 사랑이 얼마나 받고 싶었을까, 얼마나 함께 하고 싶었을까

그리고 얼마나 느끼고 싶었을까,  '나의 엄마'라는 존재의 안정감과 따뜻함을.

처음 길을 떠날 때는 말 한마디 붙이기 어렵게 가시를 곧추 세우고 있었던 동석이었다. 

힘겹게 뒤따라오는 어머니에게 자신이 마시던 생수병을 직접 건네주지도 않고 추운 겨울 차가운 돌 위에

올려놓고 갈 만큼 동석은 매서운 겨울바람보다 더 시리고 냉정했다.  

하지만 이 여행의 끝자락에 모자는 서로를 향해 마주 보고 있었고, 동석은 따뜻한 차가 담긴 보온병을 어머니에게 먼저 건네주고 있었다.


긴 시간을 돌고 돌아 생의 마지막 여행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었지만,

그렇게나마 서로의 가슴에 평생 남아있던 숙제를 풀어주고 가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드라마에 너무 몰입을 했나 싶긴 하지만 이게 어디 그저 드라마에만 있을 법한 이야기이겠는가.


부모가 자녀에게 해주는 모든 것이 '부모의 사랑' 또는 '어쩔 수 없었다'는 일방적인 이름으로 아픔을 꽂아놓고

자식들은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여전히 어쩔 수 없다는 이유만 가진 채 그들의 삶을 살아간다.

그들에게 그런 아픔이 애초에 뿌려지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이미 그 출발이 지나가버렸다면

적어도 그들이 그런 아픔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결하고 정리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

어른이 되고 사회에 나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상처가 서서히 덮이기는 하겠으나

그 상처를 뿌린 이가 그 무게를 되찾아가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야 비로소 오랜 시간 가슴에 돌처럼 묶어놨던 덩어리를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다.




동석은 마지막으로 자신을 위해 된장 한 사발을 끓여놓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게 팔베개를 해주며

어머니를 끌어안고 아이처럼 울었다.

어린 아들의 가슴에 지지리도 모질었던, 억센 풀 같기만 했던 엄마는 꺾여있는 풀 한 포기만큼도 못한 모습이 되어 그렇게 힘없이 떠나갔다.  

동석은 한참 동안 어머니를 안고 서러운 눈물을 쏟아냈다.

그 순간 동석은 어린 시절, 냉정한 엄마의 치맛자락이라도 붙잡고 싶었던 어린아이였고, 이 세상 힘들어도 함께 손잡고 의지하며 살아가고 싶은 아들이었고, 이제는 다 늙어 힘없는 어머니를 한없이 감싸 안고 싶은 훌쩍 커버린 아들의 모습이었다.

어른이라는 허울 안에 혼자 서러움에 눈물 훔치고 외로움에 떨어야 했던 어린 동석이는 그렇게 한참 동안  어머니를 끌어안고 목놓아 울며 서서히 어른이 되어갔다.





슬픔을 허리에 두르고 거친 모래 위에 맨발로 춤을 추는 사람들이여,

이제는 고운 길 따라 평안히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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