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었어.
네이버 국어사전을 검색해보면 나오는 사전적 의미이다. 뜻을 잘 알기에 사전을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세상의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들.
당연하다 생각했던 일이 그렇지 않음을 깨닫게 된 어느 날의 일이다.
첫째가 초등학생이 되어 처음 맞는 여름방학식이었다.
“엄마, 엄마, 나 상장받았어.”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보다 더 크게 더 먼저 들리는 아이의 쩌렁쩌렁한 목소리.
문을 열고 어서 빨리 엄마에게 보여 줘야겠다 하나만으로 가득 찬 아이의 눈빛과 거친 숨소리, 허둥거리는
모습까지 생생한 그 장면에서 잊고 있었던 ‘어린 날의 소녀’를 보았다.
행여 구겨질까 소중하게 품에 안고 있던 상장을 엄마에게 건네주며 칭찬을 기대하는 눈과
먹고픈 간식을 말할 준비를 하고 있는 아이의 입을 보고
눈물이 팡 터져버렸다.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식, 땡볕이 내리쬐는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여 각종 대회들의 상장 수여식을 하며 의미 없는 박수를 치고 있던 중
스피커 너머로 소녀의 이름이 들려왔다.
기대조차 하지 않아 더 어리둥절한 소녀는 운동장 가장
높은 단상에서 대표로 상장을 받았다.
이 세상 좋은 기분이란 기분은 모두 그날의 소녀 것이었다. 그 기분 중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아 꽁꽁 감싸서 집을 향해 뛰어온 소녀는 엄마 앞에 와르르 풀어놓으며
하나하나 자랑하기 바빴다.
그러나 소녀의 엄마는 그 자랑이 당연한 결과라는 듯
무심하게 설거지에 집중했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는 엄마가 야속했지만 소녀는 이에 지지 않고 자랑을 늘어놓느라 부단히 애를 썼다.
그날 소녀의 엄마는 왜 ‘애썼다’ 이 한마디를 해주지 않았을까. 어째서 당연한 결과라 여겼을까.
주인공인 줄 알았던 소녀의 하루는 편집되어 삭제돼 버린 단역배우의 모습으로 끝났다.
후에도 소녀는 백과사전처럼 모든 것을 알아야 했고 재주꾼처럼 모든 것을 다 잘 해내야만 했다.
엄마에게 소녀는 자랑이자 자신이었으니까. 엄마에겐
그게 당연하니까. 소녀는 이 세상에 못할 것은 없어야 했다.
소녀도 엄마의 자랑이 돼주고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고생했다. 잘했다. 고맙구나.' 따뜻하고 포근한 이 한마디를. 당연하지 않은 노력하는 나를 인정받는 이 한마디를.
하지만 그 기다림은 너무나도 춥고 외로웠다. 소녀의 노력은 늘 부족하고 초라해져 갔다.
잊고 살았던 어린 날 소녀의 모습이 엄마가 되어 아이가 전해준 상장으로 팡하고 터져버린 눈물과 함께 불현듯 떠올랐다.
소매로 재빨리 눈물을 닦고 온 마음을 다해 말해줬다.
“재윤아, 고마워. 한 학기 동안 애쓰느라 고생했겠다. 축하한다 아들아.”
부모가 되고 보니 아이가 하는 일들을 당연하게 여기 는 게 생각보다 많았다.
걸음마를 하게 된 첫 발, 우리와 함께한 첫 식사, 엄마 아빠라고 불러준 첫 말, 학생이란 긴 여정을 맞이할 첫 용기.
처음을 잘 해냈기에 다음도 잘하겠지 하고 새로 하게 될 처음에만 온 신경을 다했다. 처음만 있고
다음은 없었다. 다음은 당연히 잘하겠지가 되어버렸다. 나는 아닐 거라 했는데 나 역시도 그런 부모가 되고 있었다.
어쩌면 내 노력의 값이라 생각하고 아이가 해내 준 고마운 일들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소녀의 엄마도 그러했던 걸까.
그러나 그날 아이가 전해 준 상장은 아이의 땀이자 잘해보려 애쓴 수고이며 도전이고 용기였다. 당연한 것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날 소녀의 상장도 그러했다. 엄마에게 꼭 듣고 싶었을 그 말을 엄마가 되어 내 아이를 통해 전했다. 당연한 일이 아닌 대견한 일을 한 내 아이와 소녀에게.
처음으로 받은 상장의 보상으로 아이는 자신이 가장 비싸다 생각한 월드콘을 골랐다.
맛있게 먹는 모습이 고마웠다. 그리고 새겨본다. 적어도 육아에서 만큼은 당연한 일들은 없다고. 결과 뒤편에 가려진 노력과 애씀을 더 귀하게 여기자고.
불 꺼진 그날의 소녀가 듣고 싶었을 말을 지금이라도 전하며 불을 밝혀본다.
"열심히 노력한 보람이 있어서 얼마나 기쁘니. 오늘을 맘껏 기뻐하렴. 자랑스러운 내 딸, 고맙다."
(애쓰며 어여쁘게 자랐을 또 다른 딸들에게도)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