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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 Dec 08. 2022

아프면서 큰다. (feat. 성장통)


다섯 살 아들이 콧물을 흘린다. 예비 경보 발령이다.

돌쟁이 딸을 급히 대피시켜 보지만 틀려먹었다. 아들이 먹다 남긴 사과를 맛있게도 주워 먹는다.

그 모습에 비장한 마음의 준비를 한다.


아이가 둘 이상 있는 집에선 늘 상 겪는 일인 듯싶다. 첫째가 감기에 걸리면 집안 분위기는 서늘하다. 곧 둘째도 옮을 거 란 소리다. 역시나. 둘째가 콧물을 흘리고 기침까지 한다. 올 것이 왔다.

아직은 어린 둘째에겐 가벼운 감기도 큰 병마였다. 입원만은 피해야 했다.

서둘렀다.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하는 소아과엔 아침 일찍 도착해야 그나마 긴 대기 없이 진료를 볼 수 있다.



“폐렴이네요, 숨소리도 안 좋고 가래도 많아서 입원 치료하면서 지켜봅시다.

 재윤이는 콧물 약만 처방해 드릴게요. 입원 준비해서 오세요."



이골이 나게 들은 그 소리는 언제 들어도 가슴 철렁한다. 진료를 잘 받아 의젓하다며 받은 사탕을 까달라고

 내 손을 흔드는 첫째가 얄미웠다. 아니. 더 잘 대피시키지 못한 내가 미웠다.

 머리를 굴려본다. 둘째의 입원기간 동안 첫째를 맡아줄 곳을 빠르게 찾아야 한다.

서둘러 사탕을 까 아이 입에 물리고 핸드폰 연락처를 뒤져본다.

바삐 움직인 엄지손가락의 수고가 머쓱할 정도로 늘 그렇듯 맡길 곳을 찾지 못했다.

그런 곳은 없었다. 그 당시 남편은 잦은 야근과 회사 업무가 너무 바빠 정신이 없었고, 양가 어른들도 돌봐 줄 형편이 못 되었다. 체념한 듯 익숙하게 두 아이들 짐을 꾸려 소아과 입원병동으로 향했다. 언제나 친절한 간호사님을 따라 뽀로로와 타요로 가득 꾸며진 복도를 지나 우리가 지낼 병실을 안내받았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재윤이 엄마예요. 동생이 입원을 하게 돼서 퇴원 때까지 병원에서 등 하원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내일부터 차량 병원으로 부탁드릴게요. 죄송합니다. 번거롭게.”



통화를 끝내자마자 서러웠던 마음을 대변한 눈물이 터졌다. 감기에 걸려온 첫째도 밉고, 가벼운 감기를 이기지 못해 늘 상 입원으로 끝을 내는 둘째도 밉고, 이 모든 것을 내 몫으로 넘겨두고 회사 일에 몰두하는 남편도 미웠다. 도움이 되지 못한 양가 어른들까지 야속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한동안 잠잠했던 성장통의 시작이었다.



이번엔 얼마큼 힘들고 아플까, 언제까지 아플까.




거추장스러운 링거 줄을 잡아 뜯으며 떼쓰는 둘째와 심심하다고 보채는 첫째의 왕왕거림에 곪아서 욱신거리던 통증이 터져버렸다.

조용히 하고 낮잠이나 자라며 매섭고 차갑게 쏘아붙이고 억지로 잠을 재웠다.

곧 고요해졌지만 속은 시끄러웠다.

아파서 치료받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 둘과 씨름하는 나를 보고 ‘고생해요, 애기 엄마’라는 말과 눈빛을 받는 기분 또한 시궁창 같았다.

‘빨리 벗어나고 싶어’만 되뇌며 읊조렸다.





육아가 할 만하다 느껴지고 두 아이가 사무치게 사랑스러울 때 나타난다. 그 녀석.

약도 없다는 지독한 그 녀석.

엄마 사람에게 찾아오는 성장통은 누군가에겐 엄살이고 꾀병처럼 보인다.

뭐 그깟 일로 힘들어하냐, 나약해서 쓰겠냐 하겠지만 지금 난 너무 아프다.  

억울하다. 너무 아픈데. 어느 병원을 찾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프고 힘들어서 눕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참아야 하는.

나만 아는 아픔은 기댈 곳 없어 한없이 외롭기만 하다.

엄마 사람은 아파도 혼자서 치료하고 회복해야 한다. 아프다고 말하면 안 될지도.




빗장처럼 굳게 닫힌 두 아이 입속으로 어렵사리 밥 한술씩을 떠먹이고 보니 해가 저물었다.

카톡-

지금껏 연락한 통 없던 남편에게 메시지가 왔다.     


‘애기들 챙기느라 아무것도 못 먹었지? 자기 좋아하는 햄버거 사서 가고 있어.

 병실이 몇 호랬지?‘



입으론 꼴도 보기 싫으니 오지 말라고 거짓말하고 눈으론 언제 오나 병실 문만 봤다.

남편 손엔 꼬깃해진 맥도널드 햄버거 봉투와 아이들 간식이 들려 있었다.

이걸로 퉁 칠 생각 말라며 상하이 버거 한입을 베어 물며 미움 한입도 사라졌다.




4박 5일. 둘째의 퇴원 소식과 함께 유치원 버스의 행선지도 제자리를 찾았다.

여리고 작던 딸은 아프고 난 뒤 훌쩍 커서 몇 번의 감기쯤은 거뜬히 넘겨주었다.

엄마 사람도 무던하게 간호할 거뜬함의 여유가 조금은 생겼다.

언제 아팠냐는 듯 시큰함은 남겨두고 훌쩍 사라지는 성장통.

아파야 자라고 아프고 나야 또 한 번 성장함을 깨닫는다.




정체를 숨긴 채  불쑥 찾아올 수많은 성장통을 맞이 할 준비는 어렵겠지만,

아픈 뒤 쑥 커 있을 모습은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사진출처: 픽사 베이(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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