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엄마가 돼보려 한 노력.
"엄마도 오마이걸 누나들처럼 예뻐질 순 없어?
엄마도 저 누나들처럼 날씬하고 예쁘면 좋겠다."
여름방학을 유유자적 즐기던 여덟 살 아들의 핵폭탄급
팩폭이 날아왔다. 내 귀로 내 심장으로.
모든 전쟁의 시작은 이러한가.
조용하게 다가와 뒤통수치는.
점심밥을 먹으며 보던 티브이를 미처 끄지 못한 내 손가락을 원망해야 했던 걸까.
왜 하필 그날 <오마이걸의 DUN DUN DANCE> 영상이 나와서는 후식으로 먹으려 아껴뒀던 바밤바를 꺼내먹지 못하게 하다니.
얼굴이 달아올랐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댔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이것은 창피함이었다. 엄마가 제일 예쁘다 말하던 꼬꼬마 아들은 예쁜 게 뭔지 알게 된
능청스러운 초등학생이 되었던 것이다.
한동안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 놈 시키야, 엄마가 뭐 어때서. 엄마 아직 35살밖에
안 먹은 젊은 엄마다 너?
너희 키우느라 그렇지 엄마도 꾸미고 하면 어? 예쁘다 너?
아빠는 엄마가 제일 이쁘다던데 이놈 시키!!!!!!!!!!!!!!!!!!!!!!‘
정신 차리고 한소리 쏘아붙여야겠다 열을 올리려는 그때 아들은 태권도 학원으로 꽁무니를 뺄 채비를 마쳤다.
홀로 남겨진 집에서 내 몰골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아이 방학을 핑계로 나갈 곳 없어 씻지 않은 기름진 머리, 왕눈이도 좁쌀 눈으로 만들어버리는 도수 높은 뱅뱅이
안경을 쓴 눈, 십여 년 전 엄마손에 이끌려 뭣도 모르고 했던 반영구 눈썹 문신의 희미한 흔적, 남편이 버리려고 처박아둔 목 늘어난 뱃살 가리기 좋은 펑퍼짐한 티셔츠를 입고 서있는 내 모습.
내가 이리 생겼던가. 이게 나인가. 세수하고 샤워할 때마다 욕실 거울로 보던 나는 이정돈 아니었는데.
오늘만 이러한가. 아님 이렇게 변해버린 건가. 변했다면 언제부터일까.
꼬리를 무는 생각을 간신히 끊어내고 들이마신 호흡을 멈춘 채 두 발을 조심스레 올렸다.
변함을 확인할 종지부. 체. 중. 계.
와-씨. 이것은 갑작스레 맞닥뜨린 바퀴벌레를 봤을 때
느꼈던 소름과 같았다. 오늘만 못나 보이는 게 아니다.
변했다. 아주 많이. 조금씩 천천히 차곡차곡 쌓이고 변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꽃다운 나를 변하게 만든 범인을 소년탐정 김전일처럼 뒤지고 뒤졌지만 실은 알고 있었다.
모른 척 눈감으며 지낸 내가 범인임을. 코로나 탓도 해보지만 코로나는 잘못이 없다.
미루기 끝장판이던 내게 오마이걸을 꿀 떨어지게 바라보던 아들의 눈빛은 더는 시간이 없음을 알리는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줄넘기, 등산, 만보 걷기, 각종 홈트 유튜브 영상(그중 땅끄 부부는 가히 최고), 필라테스 영상 , 걸그룹 메이크업하는 법 등 닥치는 대로 따라 했다. 떡순이 빵순이 생활도
청산이요, 영혼의 단짝인 과자를 단칼에 끊어냄에 나란 사람의 잔인함도 보게 되었다.
(과자를 목숨처럼 사랑해 시중 모든 과자를 섭렵한 사람입니다.)
성공을 위해선 물불 안 가리는 아침드라마 실장님처럼
지독하게 앞만 보고 달렸다.
7월에 날벼락 맞고 시작한 나만 아는 [오마이걸 되기 프로젝트]는 12월에 10kg을 덜어내고야 잠시 숨 고르기를 할 수 있었다.
어떠한 모습이어도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말했던 남편의 말은 살아남기 위한 필살기였고,
남의 이목이 중요해 내 딸은 늘 예뻐야 한다며 가꾸고 살아라 귀에 못 박히게 말했던 친정엄마는 대쪽 같던 늬 엄마를 움직이게 한 비결이 뭐냐며 손자에게 고마워 몸 둘 바를 몰라했다.
나 또한 아들에겐 고마웠고 나에겐 미안했다. 그동안 모른 척하고 살아서.
다시 반짝이고 예뻐질 날들이 주어졌으니 잘 다듬으며 살아보겠노라고.
자자, 그래서 자칭[오마이걸 되기 프로젝트] 는 성공이었을까?
훗- 아직 5kg남았다. 그거마저 덜어내면 오마이걸 처럼 될 수 있냐고?
글쎄올시다-
근데 말이다 아들아, 이 엄마 말이야. 왕년에는
쫌 잘 나갔다? (믿거나 말거나)
*사진출처:Instagram@wm_ohmygirl , 구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