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지기와의 대화
얼마 전 10년 지기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소담을 나눴다. 이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내 고등학교 시절 첫 짝지다.
첫인상만 보고 깍쟁이 같은 것이 ‘얘랑은 절대 못 친해질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말을 트고 보니 웃음포인트가 잘 맞아 10년을 넘는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편의상 이 친구를 ‘마니’라고 하겠다. 실제로 내가 친구를 부르는 애칭인데, 최근 이름을 바꿔서 이 애칭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새로운 이름에 어떤 애칭을 붙일지 고민 중이다.
마니와 만나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과거 이야기라 함은 주로 학창 시절 이야기다. 우리는 남녀공학이지만, 남녀분반인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 시절 마니와 나는 함께 ‘인서울’이라는 목표를 안고 있었다. 남녀공학임에도 여고 같은 삶을 살았던 우리는 꾸미는 것에는 하등 관심이 없었고, 항상 어른이 된 우리를 상상하며 얘기했다.
사실 마니는 항상 전교권에 들던 친구라 교내에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반면 난 평범하디 평범한 성적을 가졌다. 어느 정도였냐면 당시 내가 담임선생님께 “인서울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라고 하면, 선생님께선 “그냥 지방국립대를 넣어보는 건 어떠니?”라고 나의 기대를 무참히 깰 정도였다.
그러나 내가 대입을 준비할 때, 운 좋게도 '학생부종합전형' 붐이 일었고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교내 대회를 모두 나갔다. 심지어 나의 진로와는 전혀 상관없는 요리대회, 게임대회를 나가기도 했다(물론 두 대회에서 난 예선 탈락했다.). 그렇게 교내에서 했던 여러 활동과 자기소개서를 합쳐 간신히 서울 끄트머리에 있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마니와 만나면 ‘그때 우리 참 독했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심지어 나는 고등학교 1학년 생활기록부에 ‘독하다’는 말이 실제로 써져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독하다’는 말은 부정적인 어감이 강했기 때문에, 난 "생기부에 어떻게 독하다는 말을 쓸 수 있냐"며 속으로 노발대발했다. 그러나 지금은 “뭐든 독하게 해야 성공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으니,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이런 나의 모습을 미리 예견한걸 수도 있다.
마니와 이런저런 과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점은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그래서 우린 그때보다 지금 더 행복한가’, ‘그때에 비해 우리가 달라진 점은 무엇일까’ 등 건설적인 얘기를 많이 하는데, 마니와 나는 공통적인 의견을 보일 때가 많다.
특히 과거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는 점에서 결이 같다. 학생 시절에는 똑같은 옷에 비슷한 헤어스타일은 물론 거의 동일한 하루일과를 보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삶을 꾸릴 수 있다. 직장에 허덕일 때가 많긴 하지만, 어찌 됐든 내가 자유로이 쓸 수 있는 ‘내 돈’이 있고, 내가 원하는 대로 나 자신을 가꿀 수 있다는 게 큰 메리트다.
또 나도 몰랐던 내 취향이나 성격을 알아갈 때 즐거움을 느낀다. 고등학생 때는 내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줄로만 알았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생각보다 틀에 박힌 일을 좋아했고, 액티비티 한 활동보다 전시회 관람을 더 즐겨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에 대해 알지 못했던 점들을 새삼 깨닫는데, 몇 년 후의 나는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좋아하지 않는지 더 명확한 기준을 세울 수 있겠지.
고등학생 때는 시간이 그렇게 안 흐르더니 어느덧 28살이 됐다. 슬슬 결혼하는 친구들도 보이고, 심지어 아기까지 낳은 친구들도 있다. 세월이 참 빠르다. 이 얘기를 엄마한테 하면 ‘너도 세월이 그렇게 빨리 흐르는데, 엄마는 얼마나 빨리 느껴지겠니.’라는 말씀을 하신다. 25살 때까지만 해도 30살이 된다는 게 참 무서웠는데, 이제는 30살이 기다려지기도 한다. 그때는 얼마나 더 내 취향에 맞게 내 삶을 꾸려갈까.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을 영위하는 내 모습을 기대하며 살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