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일하기 싫은 이유
내 직장 인생 중 지금만큼이나 평화로운 시기는 없었다.
지난해 상사가 바뀌고 모든 게 바뀌었다. 한 발짝 멀리서 바라본 지금의 상사는 소위 말하는 'MZ팀장'이다. 술을 안 좋아하는 팀장 덕에 쓸데없는 회식이 줄었고, 2주 연달아 연차를 쓴 팀장 덕에 눈치 보지 않고 연차를 쓸 수 있게 됐다. 팀장은 워라밸을 중시하는 데다 부당한 일이 있으면 우리를 대신해서 목소리를 내준다. 든든한 팀장 밑에 있으면서 직장 스트레스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특히 우리 팀 최고의 복지는 뭐니 뭐니 해도 '재택근무'다. 직장과 거리가 먼 직원들을 배려해 내린 결정인데, 거리가 가까운 나 또한 혜택을 받게 됐다.
처음에는 정말 좋았다. 출퇴근 시간이 없다니! 모든 직장인이 가장 아깝게 생각하는 시간이 출퇴근 시간 아닌가! 숨 막히는 '지옥철'에서 드디어 벗어나다니... 난 정말 복 받은 직장인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재택근무가 지속될수록 되레 무기력해졌다. 그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 봤는데, 우선 주거공간과 업무공간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컸다. 우리 집은 원룸이다. 책상 바로 뒤에 침대가 있는 협소한 공간이다 보니 근무할 때는 일에 집중하지 못했고, 쉴 때는 휴식에 집중하지 못했다. 또 퇴근시간도 모호해졌다. 재택인데 칼퇴를 하기에는 눈치가 보여 퇴근을 미루고 미루게 됐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사람과의 교류가 없다 보니 외로웠다. 내 인맥이라고는 고등학교·대학교 친구들, 직장 사람들이 끝이다. 지방에 사는 고등학교 친구들은 내가 서울에 오면서 보기가 힘들어졌고, 대학교 친구들은 모두 직장에 다녀 평일에는 만나기가 힘들어졌다.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그런지 재택근무를 할 때면 늘 외딴섬에 덩그러니 놓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또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힌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여유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자기 계발에 대한 욕구가 높아진다는 점은 큰 장점이다. 덕분에 실제로 상반기에 자격증 2개를 딸 수 있었다. 하지만 계속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생긴다고 해야 할까. 남들은 열심히 사는데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하게 살지 하는 회의감이 자꾸 든다.
세월이 조금 더 흘렀다면 지금 직장을 신의 직장으로 추켜세웠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0대 후반인 내가 이런 편안함에 계속 안주해도 될지 여러 고민이 든다. 재택근무를 효율적으로 잘 활용하는 이들도 있지만, 내게는 여러모로 맞지 않는 업무 방식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