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 영주권, 이별.
해외 이민자로 살아가면서 익숙해지는 일 중 하나는 바로 '이별'이다. 헤어짐이야 살아가는 동안 늘 마주하는 것이라지만, 이민자가 되면 조금 더 잦게, 크고 작은 이별들을 맞는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친하게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곧 한국에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삼십 대 후반에 캐나다에 와서 워킹비자와 학생비자 등으로 지낸 지 7년 정도 된 그의 비자가 몇 달 안으로 만료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살고 싶지만 현재 이민 정책으로는 영주권을 신청할 조건이 되지 않고, 워크 퍼밋을 신청 조건도 맞지 않는단다.
우린 모두 제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절대 돌아가지 말라고, 어떻게든 길을 찾아보자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오히려 본인이 아닌 주변인들이었다. 그는 머쓱하게 웃었다. 10여 년 전 내가 미국에 있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 나를 두고도 모두 이런 반응이었다. 그땐 몰랐다. 정작 나는 '가면 가야지 뭐' 하고 맘을 먹었거늘 왜들 그렇게 호들갑인지. 신분 걱정 없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고 가끔은 약이 오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이런 걱정 안 해도 되는 내 나라로 '더럽고 치사해서' 갈거다, 했다. 그런데 내가 이제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니 알겠다. 타지에서 좋은 인연 한 사람 한 사람은 유독 귀해서, 떠나는 사람보다 보내는 사람이 힘들다는걸.
해외살이를 시작한 이후로는 매주말마다 송별회를 하던 때도 있었다. 조금 친해지고 정을 나누었다 싶으면 한국으로 돌아가버리는 일이 숱해서 아예 정을 주지 않는다는 사람도 흔했다. 그 나라에서 체류 신분이 끝나면 좋든 싫든 떠나야 한다. 떠나는 사람은 또다시 새로운 삶을 고대하며 떠나는 아쉬움을 삼키지만, 떠나보내는 입장은 영 아쉽기만 하다. 연고가 없는 곳에서 사람을 사귀는 일부터가 쉽지 않은 타국살이인데, 겨우 마음을 주고받은 사람을 만나도 그가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현실은 절망적이다. 그럴 때마다 정말로 이곳에선 혼자이구나 깨닫곤 했다.
어느새 주변 한국인들은 유학생이나 이민 1세대보다는 이곳에서 오래전부터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전보다는 이별하는 횟수가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소중한 사람을 한국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일들을 겪는다. 이제는 나 역시도 이민 정책과 상황에 밝지 않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하는 사람 앞에서 안타까움에 발만 동동 굴러야 하는 주변인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누구도 예상한 적 없었던 나의 이민. 얼렁뚱땅 해외에서 출근을 하고 운동을 하고 고지서들과 씨름하며 어설프게 삶을 계획하는 지금의 일상이 언제부터 당연하게 되었을까? 문득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지는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