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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몽 박작까 Nov 17. 2023

업그레이드 삼겹살 덮밥

특명. 먹다 남은 삼겹살을 요리하라.


요즘 첫째가 합기도 심사준비로 바쁘다. 매일 저녁 2시간 동안 심사훈련을 하느라 기진맥진한 아들을 생각하며 고기를 먹이고 싶었다. 전날에 삼겹살을 시켜줬다. 그런데 삼겹살은 안 먹고 같이 시킨 비빔면만 먹는 바람에 삼겹살이 많이 남았다. 이대로 냉장고에 두었다가는 결국 음식물쓰레기가 될게 뻔했다. 어떻게든 소생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나만의 특명을 만들었다.


'먹다 남은 삼겹살을 요리하라.' 





삼겹살을 그냥 데워 먹을까? 삼겹살과 김치를 넣고 김치볶음밥을 해볼까? 찌개에 넣어 먹어야 하나? 요리도 잘 못하면서 머릿속에서 짱구를 굴려댔다. 요리를 못하니 아들이 만족할 수밖에 없는 메뉴를 하고 싶었다. 요리해야 될 때 종종 이용하는 앱 '만개의 레시피'를 검색했다. 여러 가지 삼겹살 활용요리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이걸 선택했다.


'업그레이드 삼겹살 덮밥'


계란노른자의 고소함과 고급짐을 더한 삼겹살 덮밥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니. '업그레이드'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내 요리도 '업그레이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래서 이 요리가 든든한 한 그릇 요리로 제격이라 생각했다. 체력적으로 힘들어 보이는 첫째가 맛나게 먹어줄 것만 같은 비주얼이었다. 첫째는 계란 반숙도 좋아하고 단짠단짠의 간장맛도 좋아하니 딱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15분 이내에 시간으로 '초급'요리고 후기도 268개나 달리고 평점도 5.0 만점에 4.9점이었다.


그렇게 해서 내 요리는 시작되었다. (요리라고 하기엔 거창하지 않지만, 요알못에게는 이런 요리도 요리다. 비장한 각오를 다져야 한다) 나도 요리에 성공해서 별 5개 달며 요리후기를 달고 싶었다.

"요알못이지만 요리 대 성공이에요. 아이들이 너무 맛있대요. 좋은 레시피 감사합니다."라고.




먼저, 양배추와 양파를 각각 채 썰어 준다. 깻잎도 채 썰어 주라고 했는데 없으니 패스. 팬에 기름을 두르고 양배추와 양파를 볶는다. 볶은 양배추와 양파는 접시에 잘 보관해 둔다. 걱정과 달리 술술 진행되고 있다. 이제 분량의 양념장을 만든다. 간장 3T, 물엿 3T, 다진 마늘 1T, 후추 조금, 소금 조금.


간장은 잘 부었는데 물엿이 문제다. 물엿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안 그래도 딱딱한 물엿이라 나오지 않길래 뒤집어 놨는데 물엿이 뚜껑 주변에서 굳어버렸다. 조청쌀엿을 넣어볼까 했는데 마찬가지다.


요알못은 이럴 때 난감하다. 분명 레시피에서 물엿을 3T 넣으라고 했는데, 물엿이 굳어버렸으니까 어쩌지? 다른 거 대체했다가 맛없으면 어쩌지? 지금이라도 마트에 가서 물엿을 사 와야 하나? 굳어버린 물엿 하나로 난관에 봉착해 버린다. 딱딱하게 굳어 나올 생각이 없는 물엿처럼 내 머릿속에 회로도 멈추어버린다.


그러다 이내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내 요리가 망하면 저 굳어버린 물엿 때문 일거야. 내가 요리를 못해서가 아니라 물엿을 제대로 안 넣어서 일거야.'라는 얄팍하고 간사한 핑계가 생긴다. 이런 핑계가 생기니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지금껏 요리를 못하는 게 흔히 말하는 그 '손 맛'이란 게 없어서라고 생각하며 좌절했다.

요리 고수들은 그야말로 '대~충 팍팍' 넣은 양념들이 손 맛과 함께 어우러져 맛깔난 음식으로 바뀐다.

어찌 됐든 이 요리가 망해도 물엿 때문일 거야라고 생각하며 물엿을 대체할 재료를 찾아본다.


알룰로스 가 보인다. 단맛을 내지만 1/10칼로리라고 쓰여있는 글씨가 눈에 뜨인다. 어쩌면 '이 재료를 써서 더 건강한 요리를 만들지도 몰라'라는 생각과 함께 갑자기 씽긋 미소가 지어진다.


물엿 때문에 울상이었다 알룰로스 때문에 웃는

요알못의 요리세계.  




남편은 노른자 떨어진 삼겹살덮밥

우여곡절 끝에 분량의 양념장에 먹다 남은 삼겹살을 같이 넣고 졸여준다. 이쁜 그릇에 밥을 담고 그 위에 볶아놓은 양배추와 양파를 넣고 졸여놓은 삼겹살을 담는다. 마지막으로 화룡점정인 계란 노른자를 올린다. 예쁘게 가운데에 올리고 싶은데 '노른자야 어디 가니? ' 또르르 굴러 밑으로 떨어진다. 노른자가 떨어진 삼겹살덮밥은 이해해 줄 것 같은 (이게 중요! 절대 미워서 그런 것 아님) 남편 것으로 당첨. (그래도 미안한 마음에 참깨는 팍팍 뿌린다)


두 번째, 세 번째는 열심히 노른자를 올려 예쁘게 담는다.

아들들건 그래도 예쁘게


그렇게 완성된 세 그릇의 삼겹살 덮밥. 과연 그 맛은?



남편이 한입 먹자마자 김치를 요청한다. 부족한 요리 먹어주는 게 고마워 얼른 김치를 대령한다. 그런데 남편은 그 이후로도 자꾸 냉장고를 뒤적인다. 무말랭이를 꺼내고, 슬라이스 햄을 꺼내고, 치즈를 꺼내고...


2시간 합기도 훈련뒤에, 1시간 더 공복시간을 갖은 첫째는 맛있게 먹어주겠지? 


좀처럼 먹지 않는다. (분명히 배고프다고 했는데. 배고플 땐 아무거나 다 맛있지 않나? 나는 그런데)


아이도 치즈 한 장만 달라고 요청한다. 치즈 한 장을 주니, 치즈를 삼겹살 덮밥 위에 올려놓고 전자레인지에 돌려달라고 한다. 



나: "왜? 맛이 없어?"

첫째 : 응. 쪼끔 그랬어. 




p.s 요리 레시피에 후기 달려고 했는데. 흠. 뭐라고 하지? 

     물엿을 못 넣어 그런 걸 거야. 암. 그렇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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