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린이 엄마가 요리를 하게 된 2가지 이유
밤 10시 47분 국 끓일 결심을 했다. 국을 끓이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결심까지 필요하다. 요리를 뚝딱 잘하는 분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겠지.
요리를 못한다. 아니 안 한다. 요리를 못해서 안 한 건데 안 하니까 더 못하겠다. 어느 순간부터 인지 모르겠다. 사실 요리를 안 하게 됐다고 얘기할 수도 없이 요리를 많이 안 해봤다. 결혼한 지 딱 11년 차인데. 11 년이라는 세월 동안 몇 번이나 했을까. 1년에 365일이니 11년이면 4,015일인데 100 일은 했으려나. 거창한 거 아니고 간단한 국이나 반찬 같은 요리도 왜 그리 어렵고 하기 싫은지. 혹시 이유식도 요리라고 얘기한다면?(이건 너무 했다 싶지만) 그럼 아이 둘이니 12개월 정도는 추가되려나. 갑자기 남편과 두 아들에게 급 미안하네. ("여보~ 얘들아~ 미안해~.")
요리에 흥미도 없고 소질도 없으니 요리가 그렇게 어렵고 힘들다. 엄마표 집밥하시는 주부님이 제일 존경스럽다. 나는 왜 그렇게 요리를 못하고 하기 싫은 걸까.
"그럴 거면 결혼은 왜 했니?"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한다. 요리뿐만 아니라 살림이랑 청소도 잘하진 못하니. 그렇지만 다정한 아내이자 엄마다.(우리 집 남자 셋 의견은 아니지만) 남편과 아이들에게 자주 웃어주고 칭찬하고 다정하지만 요리 못하는 아내와 엄마라는 생각에 늘 미안하다. 미안해서 더 자주 웃어주고 다정한지도 모르겠다.
요리는 항상 부족한 영역이라 생각하고 반찬가게를 애용했다. 아니면 배달. 그럼 식비로 지출되는 금액이 커지는 것도 문제지만 결국 돌고 돌아 먹을 게 없는 느낌이다. 살찌는 건 덤. 악순환의 반복이라는 걸 알면서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리고 못한다는 변명으로. 그러다 갑자기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이 덕분이고 다른 하나는 강의 후기 덕분이다. 아이가 학원에서 '엄마 도감'이라는 책을 만들어 왔다. 엄마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세하게 관찰하고 쓰는 것이었다. 정말 자세하고 예리하게 써놓아서 깜짝 놀랐다.
평소 엄마를 좋아하고 예뻐하는 아들이었는데 여기에는 아주 솔직하게 평가했다.
'얼굴이 동그랗고 머리가 길고 키가 크고 잘 먹어서 조금 통통하다.'
신체활동에는 안아주기, 도서관 가기, 스트레칭하기, 아빠랑 달리기와 누워 있기도 있다
아이의 눈으로 보는 엄마가 새삼 신기하다. 그런데 신체활동에 '요리'가 눈에 띈다. 요리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 적이 없는데 써놓아서 양심적으로 찔린다.
점심에는 볶음밥, 저녁에는 된장찌개 같은 요리를 잘한다고 쓰여있었다. 아이의 바람인 거 같다. 평소 아이는 음식이 맛날 때 하는 말이 있다.
"역시 엄마가 '산'게 제일 맛있다니까!"
학교에서 부모 참관 수업에 간 적이 있다. 엄마가 어떻게 해줄 때 제일 행복한지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아이는 자신 있게 손을 들고 말했다.
"엄마가 맛있는 요리를 해주실 때 제일 행복하고 기뻐요."
그때도 뜨끔했는데 엄마도감 책에도 이렇게 적혀 있으니 자극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리는 실천에 옮기기 쉽지 않았다. 최근 후방 추돌 사고도 당해 몸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다 결정적인 계기는 적나라한 강의 평가였다. 대부분 좋은 의견이었는데 딱 한 분이 냉철한 시선으로 비판을 하셨다. 너무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도 없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속상하기도 했지만 의견을 반영해 강의하면 발전된 강의를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렇게 마음을 다독였다. 그리고 요리할 결심을 했다. 요리에 소질 없다며 미루던 일을 요리라도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구겨진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어서. 밖에서도 안에서도 부족한 사람이기 싫어서.
마트에 가서 얼갈이배추를 샀다. 사실 처음 사봤다. 알배기배추나 봄동은 사봤는데 얼갈이배추는 한 단으로 묶여있으니 사기 부담스러웠다. 한우 설도도 샀다. 설도를 사는 것도 처음이었다. 원래 같으면 국을 끓일 거니 국거리를 살 텐데 설도가 세일해서 샀다. 다행히 설도도 국을 끓일 수 있다고 네이버에서 알려줬다. 국에 넣으면 맛이 좋은 표고버섯도 샀다.
마트에 돌아오자마자 끓이고 싶었는데 애들 챙기고 재우느라 시간이 늦었다. 밤 10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하기 싫은 시간. 그래도 마음먹었으니 부엌으로 갔다. 재료를 샀어도 냉장고로 들어가면 요리하지 않을 걸 잘 알기에. 얼갈이배추를 다듬고 소금 넣은 끓은 물에 데친다. 요린이는 양조절을 못한다. 어느 정도 넣는지
모르고 데치면 양이 줄어들 줄 알고 많이 넣는다. 어찌어찌 굴려가며 데치고 찬물에 헹궈 손으로 꼭 짜고 양념을 한다.
레시피대로 고기를 참기름에 볶고 핏기가 없어질 즈음 물을 붓는다. 국물을 좋아하니 많이 붓는다. 코인육수는 4개나 넣었다. 맛나기를 기대하면서. 양념이 되어있는 얼갈이배추니 어느 정도 간이 맞다. 표고버섯도 듬성듬성 썰어 넣고 파도 송송 썰어 넣는다.
그렇게 얼갈이배추 된장국 완성. 국하나 끓이는데 1시간이 걸린다. 요린이는 요리를 후다닥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고춧가루가 굳어 새 고춧가루 꺼내느라. 시들은 파는 골라내고 싱싱한 거 찾느라 등등.
다음날 아침 국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너무 좋다며 둘째가 방긋 웃는다.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 보니 역시 기분이 좋다. 요리 못해 미안한 마음에 나오는 다정함이 아니라 그냥 다정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이제 다시 아이가 이렇게 얘기해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엄마가 해 준 요리가 역시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