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몽 박작까 Dec 09. 2024

나이가 뭣이 중헌디


(위에 글과 이어집니다 )



 엄마는 야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중 제일 나이가 많다고 했다. 나이는 가장 많은데 기초학력은 최고 골찌라고. 다들 공부에 뜻이 있어 모인 자리니 다른 데서 공부하다 온 분도 계시고. 맏이는 아니었는지 초등학교는 제대로 다녀 졸업하셨다고 한다.




  학교에 가면 뭘 배우느냐고 물어봤는데 정말 다양하게 배우고 계셨다. 노인분들 대상이라고 한글을 가르치고 가벼운 사칙연산을 배우는 게 아니었다. 정말 중학교처럼 국어, 수학, 사회, 과학, 한자, 미술, 컴퓨터 등 다양한 과목을 배우셨다. 국어는 문학, 글쓰기 등이었다. 평생 글쓰기라는 걸 해본 적 없다가 갑자기 난감하셨겠지. 엄마가 전화하며 물었다.


엄마 : "글쓰기가 뭐야? 어떻게 해야 돼? 엄마는 어릴 적에 동생들 돌보느라 학교도 제대로 못 갔는데. 맨날 밥하고 동생들 기저귀 갈고 농사만 했는데. 그래서 한글도 잘 모르고 맞춤법도 틀리고 그러는데. 큰일이야. "


나 : "엄마 지금 얘기하는걸 글로 쓰면 돼. 맞춤법 틀려도 괜찮으니까 그냥 써봐. 지금 말로 하는 걸 글로 적으면 그게 글쓰기야. "


 피식. 웃음이 나왔다. 글쓰기 나도 어려워하면서. 조금 일찍 써봤다고 이런 조언이 나온다. 엄마가 알겠다며 한번 써보겠다고 한다. 엄마는 다양한 주제의 글쓰기도 하고 단편소설 필사도 했다. 글을 읽고 줄거리 요약이나 감상문도 적고. 나보다 더 많이 하시는 것 같다. 나는 쓰고 싶은 주제만 적는데.


 엄마는 글을 빨리 읽지도 내 생각을 냉큼 적을 수도 없으니 글쓰기를 숙제로 미리 해갔다. 글도 눈이 침침해 돋보기를 쓰고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읽어가며. 문장이 이해가 되는 것도 되지 않는 것도 있는데 그냥 무조건 읽었다고 한다. 줄거리 요약도 해본 적 없으니 거의 문장을 베껴가며.




 어릴 적 엄마의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항상 삐뚤빼뚤 글씨도 예쁘지 않은데 맞춤법도 다 틀린 게 마음에 거슬렸다. 다른 엄마들처럼 우리 엄마도 글씨가 예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그래서 통지표를 받고 부모님 의견을 적는 칸에 항상 내가 적었다. 엄마도 글씨 못 쓴다며 나보고 적으라고 하셨다. 그랬던 엄마였기에 엄마가 더 대단해 보였다. 단순히 책을 읽는 것도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도 감상문을 쓰는 것도 엄마에게는 얼마나 어렵고 힘들지 잘 알았다. 여전히 글씨가 예쁘진 않지만 그래도 줄 맞춰 길게 써놓은 공책을 보니 마음이 몽글몽글하다. 엄마가 노력한 흔적이라서.


 

엄마가 쓴 소설 필사




 영어공부도 한창이라고 했다. 당연히 ABC부터 시작하셨다. 영어를 배워본 적 없기에 얼마나 어렵게 느껴졌을까? 그런데 어떻게든 외워야겠다고 생각하니 엄마는 몰입하셨다. 집에서도 외우고 버스 타고 가면서도. 학교 말고 다른 데 가더라도 계속. 앉아서 읽고 손가락으로 무릎에 쓰면서 외웠다고 하신다. 그렇게 대문자부터 외우고 소문자도 외우고. 처음에는 '내가 어떻게 다 외워. 못 외울 거야.' 생각했을 텐데. 자꾸 반복해서 보니 조금씩 외워지는 게 생기고 아는 게 많아지니 자신감이 생겨 결국 외웠다고.


 그렇게 엄마는 그토록 해보고 싶었던 공부를 하며 즐겁다고 했다. 다 외우고 나서는 버스 타고 지나갈 때 보이는 간판들 중에 영어가 있으면 '저거는 A고 저거는 M이고.' 하면서 영어 읽는 재미가 있었단다. (귀여운 우리 엄마^^) 그렇게 글자를 외우고 단어들을 적어가며 익히고 있다. 단어들은 외우기 힘들지만 그래도 열심히 공부하신다. 발음기호를 모르시니 한글로 소리 나는 발음까지 적으며 열심히 쓰고 계셨다.



 학창 시절에 이렇게 나도 열심히 했던가? 지금도 영어 공부가 필요하다 느끼지만 평생 초급을 못 벗어나고 있다. 빽빽하게 적혀있는 노트를 보며 뻔하지만 이유를 알겠다. '이렇게 열심히 하지 않으니까.'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엄마가 저렇게 열심히 쓰셔도 외운 건 별로 없을 수 있다. 그러기나 말기나 이거 저거 따지지 않고 이런저런 핑계 대지 않고 열심히 써보자고 생각하며 했을 거다. 그래서 더 놀라웠다.


 반면 나는 뭐 할 때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지금 내가 할 수 없는 이유만 찾았지. 옆에서 지켜보던 아빠도 한마디 하신다. "너희 엄마 진짜 대단해. 하루 종일 공부 한다니까~" 웬만해선 엄마에게 칭찬하지 않는 인색한 아빠까지 인정한다. 제일 놀랜 건 손주들이었다. 8살, 11살이 봐도 열심히 공부한 공책을 보며 자극받은 듯하다. 갑자기 종이와 펜을 가져와 예쁘게 글씨를 쓰며 외할머니에게 보여준다. (귀여운 녀석들)


아이들 : "외할머니 진짜 대단해요. 공부 파이팅하세요."

엄마 : "너희들은 더 잘하고 있어. 훨씬 더. 아이고 이뻐라~"



 둘째가 애교 섞인 한마디와 함께 따뜻하게 안아준다. 뭉클해졌다. 아이들의 마음속에도 어떤 일렁임이 있었나 보다. 잠깐 느낀 감정이 아닌 듯했다. 아이들은 집에 와서 영어를 쓸 때마다 외할머니 생각이 나나 보다. 평소보다 더 예쁘게 꾹꾹 눌러서 썼다. 그렇게 열심히 적고는 외할머니에게 사진 찍어 보내주라고 했다.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 그렇게 엄마의 공부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평생 공부하고 싶었던 꿈을 기회가 왔을 때 잡았고 여러 악조건 속에서 이어 가고 있다. 나이가 제일 많은 게 문제인가. 다리 아픈 게 문제인가. 왕복 3시간이 걸리는 통학시간이 문제인가. 주 5일이 무리인게 대수인가. 어려운 게 대수인가. 그 어떤 것도 엄마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 입학식 때 감동받고 축복받아서 못 그만둔다고 하셨지만 그게 다가 아닌 것 같다. 엄마가 2년 동안 별 일 없이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며 꿈을 펼치길 간절히 바라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