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고로 삼시 세끼의 시작. 돌밥의 시작. 학교 다닐 때 아침 대충 주고 점심은 한 끼 먹고 오니 저녁 대충 줄때와 차원이 다르다. 돌밥을 해야 하는데 걸림돌이 있다. 요린이 엄마는 요리시간이 매우 길다는 것.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의 할 요리를 생각해 본다. 오늘의 메뉴는 '김치 콩나물국'과 '오리고기 야채볶음'과 '계란말이'이다. 어릴 적엔 김치콩나물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린 입맛에는 김치콩나물국이 김치를 먹는 느낌이었다랄까. 나이가 들고 나니 개운한 맛이 좋다. 며칠 전 식당에서 치즈 닭갈비와 김치콩나물국을 먹었는데 닭갈비보다 김치콩나물국을 리필하고 싶었다. 그래서 직접 끓여보자 마음먹었다. 어제 미리 사둔 콩나물이 빨간빛이 돌기 전 싱싱할 때 해보자 싶었다. 그렇게 오전 9시 요리가 시작되었다.
육수로 국물을 내고 김치 넣고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을 넣고 콩나물 넣고 간장이나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말로는 이 쉬운 요리도 요린이 엄마는 레시피를 보고 또 본다. 혹시나 작은 문구 하나 놓쳐 맛없는 요리가 될까 봐 빠트린 게 없나 수시로 확인하면서. 그래서 요린이는 레시피에 나온 시간을 절대 믿어선 안된다. 분명 30분 이내 간단한 요리라고 했는데. 콩나물을 씻어야 하지. 김치를 썰어야 하지. 파를 썰어야 하지. 다진 마늘을 냉장고에서 꺼내야 하지. 거품을 걷어 내야 하지. 그러면서도 다음 요리 재료를 뭐 할지 생각해 재료를 꺼내야 하지 등등. 결국 김치 콩나물 국을 완성하니 거의 1시간이 걸린다. 간단한 요리도 오래 걸리는 마법에라도 걸린 거처럼.
애초에 요리가 쉽게 빨리 될 거라 생각하지 못해 중간에 책 읽고 있는 애들에게 귤을 가져다주었다. 귤 먹으며 밥을 기다려 달라는 의미로. 밥을 맛나게 먹지 않을까 봐 밥 먹기 전 뭘 주지 않는 여느 엄마와 다르다. 요리를 해야 하는데 손이 느린 엄마는 뭐라도 먹여 놓아야 한다. 아침을 주고 싶지만 아점이 될 수도 있고 점심이 될 수도 있으니까. 애들은 배고플 텐데 밥 빨리 안주는 엄마에게 익숙해졌는지 밥 달라고 말을 하지 않는다. 엄마가 무언가 하고 있으니 언젠가 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국 하나 완성했는데 국에 말아 줄까 잠시 고민한다. 그렇지만 냉장고에 오래 있던 오리고기를 얼른 요리해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오리고기 야채볶음을 시도한다. 오리고기와 야채 넣고 볶기만 하는 거지만 아무것도 안 넣으면 싱거웠던 거 같은데. (언제 했는지 기억도 못하는 오래 전의 기억) 빠르게 레시피를 찾아본다. 최대한 리뷰가 많이 달린 레시피를 골라 보니 양념으로 굴소스와 간장, 맛술, 올리고당과 후추를 쓰라고 한다. 계량하지 않고 대충 넣어 본다. 야채는 냉장고 털이. 양파, 당근, 느타리버섯을 넣고 휘리릭휘리릭 볶아 본다.
훈제오리라 많이 익힐 필요 없으니 간단한 요리여도 시간은 역시 꽤 걸린다. 결국 완성한 시간은 10시 47분. 그래도 이거도 30분 이내 요리인데 오버타임 17분이 걸렸네 한다. 이제 남은 메뉴는 계란말이지만 그거까지 하면 진짜 점심이 되어 버리므로 깨끗이 포기.
거의 2시간이 걸려 요리 2가지를 만들었는데 밥상이 초라하다. 오리고기야채볶음은 반찬으로 주려고 했던 건데 국물이 흥건해 덮밥으로 담았다. 그리고 김치콩나물 국 한 그릇. 다른 반찬 꺼낼 생각도 못하고 어차피 먹을 거 같지도 않고 있지도 않아서 안 꺼냈다.
이렇게 담아내었더니 둘째가 하는 말.
둘째 : "한 시간 넘게 했는데 이거밖에 없어?"
엄마 : "어... 그러게. 그래도 엄마가 열심히 정성껏 만들었어~ 어서 먹자. "
팩트 폭격을 날리는 둘째 때문에 머리가 살짝 빙빙 돌지만 당황하지 않고 어서 먹자며 달랬다. 대신 밥 다 먹고 딸기 먹자며 우쭈쭈. 말은 안 했지만 배가 많이 고팠나 보다. 나중에 안 사실이 더 놀라웠다. 내가 요리한 지 1시간 반이 흐른 뒤에 아빠에게 문자를 보냈었다. 문자의 내용은 간결했다. 이 세 글자.
바로 앞에 있는 엄마에게 말을 안 하고 방에서 자고 있던 아빠에게 문자 보내는 둘째. 말은 안 했지만 엄청 배고팠구나. 밥을 빨리 주길 기다렸구나.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초라한 밥상'에 많이 실망했구나 싶다. 오전 11시가 다 되어 식탁에 앉아 다 같이 밥을 먹었다. 오래 기다렸는데 메뉴도 별로 없고 맛도 없어 보이니 애들이 열심히 먹어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도 잘 달래 보며 먹으라고 하니 한입 두 입 먹어본다. 먹다 보니 직설&독설가 둘째가 반응을 보인다.
"음~ 국물이 얼큰하네. 조개탕 맛이 나는 거 같아. 오리고기도 맛있네. 특히 양파가 맛나. "
휴ㅡ
요린이 엄마는 이제 아침에 밥을 9시에 주려면 7시부터 요리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아침 일찍 요리는 힘든데. 아침은 배고프니 더 간단한 메뉴로 준비하고 전날 요리한 거를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올해 간절히 이루고 싶은 소망 3가지 중 하나인 '집밥 신경 쓰기'를 노력하고 있어서 기분이 좋다. 항상 요리에 소질이 없고 재능이 없다며 멀리 하고 싶었는데. 오늘은 둘째가 참다 참다 폭발까지 했지만. 그래도 안 하고 계속 신경 쓰고 자책하는 엄마 말고 노력하며 욕(?)은 조금 먹더라도 발전하는 엄마가 되어야지.
그건 그렇고 이제 점심때는 뭐 줘야 하지? 아흐. 돌밥의 운명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