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이제야 합니다.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아니 솔직히 고백하면 글은 거의 하루도 안 빠지고 썼어요. 발행이 오랜만인 거네요.
그렇지만 그간 썼던 것은 글이라기보다는 마음의 소리 혹은 내면의 절규 정도였습니다. 몇 달 전 인생 처음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어서 혼자 눈물 나게 앓았습니다. 이제와 돌아보니 니 인생 지금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왜 똑바로 안 보고 계속 모른 체 살고 있냐고 정신 좀 차리라는 메시지였습니다. 해서 4개월 이상 지난 지금 그 일이 살면서 가장 고마운 일 중 하나입니다만 그간 지옥이 있다면 이런 곳일지도 모르겠구나 싶을 정도로 아픈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사실 반백년 가까이 살면서 한 번도 제가 저를 만나는 시간을 가져 본 적이 없어요. 내가 나를 알아야 블라블라블라..... 이런 얘기 지겹도록 아니 정말 지겹다 보다 더 지겹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가 있다면 그 단어를 쓸 수 있을 만큼 많이 들었는데 대체 내가 나를 만난다는 게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좋다는 책 읽어보고 강의도 듣고 글을 써봐도 '나'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고 아는 방법도 모르겠고 '나'를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나'를 안다는 것은 커피 마시는 것을 좋아하고 라디오 듣기를 즐기고 브런치에 글을 쓰지만 부엌에 들어가는 일은 죽기보다 싫고 집안에 먼지나 머리카락이 있는 것은 참을 수 없고 고요한게 좋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말이 되는지 안되는지 모르겠는 조용한 관종처럼 보이는 '나'를 아는 것이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거 말고 대체 뭐가 있는지도 모르겠었거든요.
근데 요 몇 달 아주 얄팍하게나마 알게 된 사실은 나를 아는 것은 내가 하는 생각, 내가 드는 감정, 내가 느끼는 느낌 이 모든 것을 인정하는 일이더라고요.
연락도 안되고 남편이 늦으면 '이 인간이 혹시,,,,'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근데 현실에서 정말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도 '아유,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이야. 괜히 이런 생각하면 진짜 이런 일 일어나니까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워이. 일하고 술 마시다 보면 연락 안 되고 늦을 수도 있지.'라고 괜히 관대한 아내가 된 척을 하더란 말이죠. 물론, 생각으로만요.
그런데 연락 없이 남편이 늦는다고 해서 전국에 있는 모든 아내들이 같은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여기서 시작하는 거죠.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그렇게 저의 두려움이나 초라함이나 생각의 원인이나 혹은 결말을 계속 끄집어내는 겁니다. 살면서 처음 해봐서 그런지 처음에는 이게 안되더라고요. 그렇게 두 달 세 달 마음의 방황을 하다 보니 조금씩 제 안에 있는 저를 마주하게 되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내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아닌 척 하지만 왜 타인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건지.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데 왜 아무렇지 않은 척 더없이 행복한 척하고 있는 건지. 그렇게 조금씩 저를 마주하는 중이고 아주 얄팍하게나마 마주한 저는 너무나도 초라하고 볼품없고 대체 이 세상에 왜 존재하는지 조차 모를 정도의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을 겁니다. 얼마나 작고 초라한지. 그래서 더욱 알고 싶지 않았던 거 같아요. 그런데 큰일이 눈앞에 벌어지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더라고요. 그렇게 저를 알아가는 중이라 글은 쓸 수가 없었어요.
글 속에 저의 초라하고 볼품없는 모습이 다 드러나는 게 너무 창피했거든요. 아닌 척 행복한 척 쓴 글이어도 다 보인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예전 글에도 "쓰는 인간이 되고 힘들었던 것이 많이 좋아졌어요"라고 쓴 적 있는데요. 지금 보면 그때 단 1%도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도 있는 거지만요. 근데 그렇게 좋아지는지 더 나빠지는지 모르고 매일같이 쏟아낸 마음의 소리 덕분에 저를 만났고 하루하루 울며 웃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연의 굳어버린 돌덩이를 이제 마주한 거라 돌덩이가 모래가 되어 훨훨 날아가려면 글쎄요. 정말 반백년을 살았을 때쯤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근데 제가 이걸 몰랐으면 앞으로의 제 인생이 얼마나 암흑이었을지 상상도 안 돼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전글에 손가락이 열개인 것에 감사해서 오열한 적 있다고 했는데 살면서 손가락이 아홉 개도 열한 개도 아니고 열개여서 오열해 보신 적 있으세요??
진행형입니다만 그 정도로 너무나 많이 힘들었습니다.
숨죽이고 있는 동안 열심히 읽고 써서 작든 크든 결실을 맺는 작가님들 보면 질투가 나고 부럽고 뭐 그렇게 잘 쓴 거 같지도 않은데 이게 무슨,,, 이런 마음도 들고 정말 오만가지 생각과 마음이 드는데 그걸 그냥 인정하는 일. 그래, 나 이 만큼밖에 안 되는 인간이야. 정말 작고 초라하고 와 나 정말 좀팽이구나 하는 마음을 인정하는 일. 어, 나 원래 겁나게 좀팽이야. 모른 척하고 싶었을 뿐. 그래서 뭐. 이게 저를 만나는 일이라고 결론 지었습니다. 근데요,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게요. 정말 정말 저엉말 초라하고 볼품없는 저를 제가 인정하는 그 일. 이제 시작이라 앞으로 얼마나 많은 만나고 싶지 않은 저를 만나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시작을 했기에 멈추지는 못할 거 같아요.
숨 죽였던 시간들이 약이 되었다고 믿으며 오랜만에 발행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