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운좋은그녀 Nov 04. 2023

유전

대체 니가 뭔데 날 울려.

엄빠 독자님들은 요즘 아이들 특히 여자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성조숙증 치료를 받고 있는지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저희 아이(10살)는 모유 외에는 먹으면 큰일 나는 병에라도 걸렸는지 이유식이고 밥이고 흔히 말하는 징그럽게 안 먹는다 에 해당하는 아이라 성조숙증이랑은 매우 거리가 멀어서 정말 친한 친구들 모두가 주사를 맞고 있는 것을 알지만 관심 없을 무였어요. 친구들이랑 머리 하나 차이가 나거든요. 몸무게야 뭐 말할 것도 없고요. 속으로 차라리 작은 게 낫다 싶을 정도로 지금 아이반에 아이 말고 주사 맞지 않는 친구가 없으니까요. 


그런데 얼마 전 남편이 친구들을 만나고 와서는 아이도 뼈나이를 측정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왜 그러냐 물었더니 친구 아이들 중에 아이와 동갑인 아이가 둘 있는데 한 친구는 이미 키가 150cm가 넘었는데 (여자 아이고요, 농구학원에서 엄청나게 눈독 들인다고 합니다.) 다른 친구는 저희 아이만 하거든요. 작은 이 아이도 어렸을 때부터 봤지만 정말 입에 음식이 들어가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아이라서 저희 아이만큼 작은 거죠. 근데 이 작은 아이 아빠가 병원 다니면서 주사를 맞히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나중에 키 때문에 속상해하지 않게 검사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참으로 유난이구나 싶었지만 그 마음이 고맙고 사실 남편은 키가 큰 편이지만 제 키가 작거든요. 괜히 미안한 마음에 병원을 예약하고 검사를 했습니다. 네, 예상하셨겠지만 정말 대체 유전이 아닌 게 뭔가 싶을 정도로 정확히 예상키는 제 키 +3 cm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뼈 나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어리게 나왔고 그렇다면 다른 아이들보다 클 수 있는 기간이 더 있다는 얘기니까 주사 맞지 말고 밥 잘 먹고 운동하고 잠 푹 자라고 하셨어요. 

감사했지만 괜히 남편과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거예요. 내 키가 컸으면 이런 걱정 안 했을까 싶으면서요. 

근데 그 순간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아니, 대체 내 키가 어떤데.' 이 마음이 들더라고요. 

'아니 키가 작아서 돈을 못 버냐 결혼을 못하냐 지도 나랑 결혼해 놓고는' 하면서 화가 치미는 거죠. 그때 알았습니다. 키는 사실 어떻게 할 도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키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클 수 있는 만큼은 키워주고 싶어서 한약이라도 먹여야 되나 키 큰다는 영양제를 먹여야 되나 별 생각이 다 들고 괜한 죄책감에 고기를 더 굽고 했는데요. 저도 그랬지만 입에 음식 들어가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사람들은 도리가 없더라고요. 

분명 알고 있었거든요. 근데 성장판 검사가 한번 훅 치고 들어오니까 마음이 너덜너덜 해지더라고요. 

유전 이 친구덕에 정말 발가벗겨진 느낌 이랄까요. 

어디선가 유전이 아닌 게 없다는 얘기를 보고 웃고 넘겼는데 아이가 조금 크니까 하나도 안 웃기고 너무 무력해지더라고요. 

어떻게 할 수 없는 건데 삽질하는 느낌이고 내 마음만 편하자고 이러고 있나 싶어 자괴감이 세게 올 때가 있는데 어쩌겠어요. 이게 저인걸. 

남편과 저의 최대 조합이 아이인걸 어쩌겠어요. 


양가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줄 알았지만 키는 작아도 된다고 똑똑한 게 중요하다고 하시는데 정말 저 어떻게 하죠. 

세상 사는 게 이렇게나 고됩니다. 게다가 이 글을 발행하고 아침밥을 해야 합니다. 

어른이 된다는 게 이런 거였다고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을까요. 



작가의 이전글 인생 개 쓰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