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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굵고크면볼드인가 Nov 26. 2022

굵고 크면 볼드인가

× 끔찍한 상상이고 소설이고 실재하는 인간을 묘사한 것이 아닌 허구에 허구를 더했을 뿐이다.


아래는 글자를 다루는 디자이너라면 업무 중 한 번은 상상해 볼 법한 일에 대한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투정이며 '엇, 나는 이런 상상 전혀 안 하는데'라고 생각한다면 그저 이 글을 쓸 수 있었던 (누구인지 모를) 저를 안타까이 여겨주시길 바란다. '앗, 그럼 허구가 아니고 실제로 겪은 일이냐' 묻는다면... 상상이라고 합시다.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상상.



볼드하고 대비가 미쳐버린 힙한 디자인을 위해서는 본문은 텍스트 프레임이 아주 작아 구석에 처박아둘 수 있게 잡아야 한다. 아주 작은 사이즈의 타이프에는 인쇄했을 때 다 뭉개질 정도의 굵은 웨이트를 적용시키고 행간을 좁히고 좁히고 좁혀서 쓰는 한편 타이틀은 가장 크고 굵고 진한 글씨로 마진을 제외한 영역 안에서 가로폭이 가장 넓게 되도록 크기를 키워 쓰면 된다. 참 쉽죠?


본문의 덩어리감


모름지기 디자이너라면 글줄이 한줄한줄 흩어져 팔랑거리지 않도록 본문이 하나의 글 덩어리로 보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미감을 떠나 읽기라는 행위에 도움이 되고 또, 경제성을 높이는데도 적당한 방법이라 수십, 수백 글자가 늘어선 글줄을 적당한 가로폭을 가진 텍스트 프레임 안에 넣어 행갈이도 하고 장평과 자간을 조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대단한 의도를 갖고 있지 않는 이상 본문 텍스트에 행간을 150% 이상으로 가져가는 것은 디자이너라면 이유를 알더라도, 알지 못하더라도 지양하는 바일 것이다.


예뻐 보이는 덩어리감을 위해 폰트를 작은 사이즈로 적용하는 것은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폰트 사이즈를 작게 적용하면 글자가 눈에 띄게 작아지면서 글자 하나하나가 갖는 형태나 글자가 차지하는 공간에 채워진 공간과 빈 공간이 적당히 보이지 않게 감춰진다. 동시에 한 줄 안에 보다 많은 수의 글자들을 꽉꽉 채워 넣을 수 있어 다닥다닥 붙어있는 자그마한 글자들이 모여 들쭉날쭉하지 않은 미려한 직선을 만든다. 거기에 행간을 줄이고 줄이면 또 줄이면 화이트 리버가 획기적으로 줄어들면서 디자인 안에 네모나게 딱 떨어지는 한 덩어리로 보이는 텍스트 프레임을 쉽게 만들 수 있게 된다.


(읽기라는 행위가 좀 더 어려워지는 것이라던가 읽는 사람의 나이나 시력과 같은 부분에 있어 유니버설함을 약간 포기하는 것은 볼드함을 위해 당연히 포기해야 한다.)


'너도 만들 수 있어!, 쉬운 레이아웃 디자인!' 손에 잡히는 책에 쓰이는 정도의 본문 사이즈를 A1사이즈 포스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하지 않으면 일을 도무지 할 줄 모르는 디자이너로 낙인찍히니 조심해야 한다.



타이틀은 크고! 강력하고! 볼드 하게!

타이틀을 좌우 여백 안쪽 공간을 최대치로 써 꽉 채워야만 강력해 보인다.


당신은 거대한 간판이나 옥외 광고 작업을 할 일이 없었던 디자이너라 써볼 일조차 극히 드물었던 블랙 웨이트를 타이틀 텍스트에 적용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아. A4 사이즈 대지에요? 간판에나 아니면 디자인 요소로나 쓸 생각을 했던 웨이트인데'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볼드를 몰라. 당신이 이전 디자인을 할 때도 나는 여러 번 타이틀과 서브 타이틀에 엑스트라 볼드를 적용하도록 강요했음에도 자꾸 당신은 밸런스니 뭐니 하는 같잖은 이유를 연거푸 대었다. 밸런스 이유를 갖다 붙이기에 한참을 참고 참아줘 엑스트라 볼드 선에서 양보하였어쩐일로 이번에는 처음부터 엑스트라 볼드 웨이트를 적용해서 가져왔다. 볼드함은 엑스트라 볼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것을 몸소 보여줘야겠다. 당신의 랩탑을 낚아채 블랙 웨이트로 적용시키고 텍스트 프레임 전체를 잡아 코맨드와 쉬프트를 누른 채 대각선 우측 아래 방향으로 쭉 당겨 여백 바로 전까지 가로폭을 꽉 채운다. 하. 이게 볼드지, 볼드야!


블랙 웨이트로 적용시키는데 드는 노력은 클릭 한 번이고 그 클릭 한 번이면 근사한 볼드한 디자인이 완성되는데 그걸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안 쓰면 덜 떨어진, 이렇게나 쉬운 것도 못하는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니 조심해야 한다. 클릭 단 한 번이면 되는 일이다. 단 한 번! 디자이너의 자존심은 볼드에서 오는 것이다. 당신은 볼드한 디자인을 싫어하는 사람을 본 적 있는가? 미니멀해도 볼드 해야 하고 화려해도 볼드 해야 하며 라이트 하더라도 볼드 해야 한다. 그것이 디자인이다! 몰랐다면 알아두길!


이 위에 쓴 두 가지 규칙을 지키면 강력한 대비가 이루어지며 엄청나게 볼드한 디자인이 만들어진다. 이렇게도 쉬운 볼드한 디자인 만들기를 밸런스니 가독성이니 하는 이유를 앞세워 못하고 있는 당신은 바보다. 하. 거참 디자인을 좀 더 배워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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