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굵고크면볼드인가 Mar 06. 2023

나 홀로 브랜드 디자이너

~ 23.02.26

지난 글 이후 한참이 지났다. 회고를 그대로 건너뛰려다 이러면 어떤 업무를 했는지 기억도 안나는 시기가 될 때까지 방치될게 뻔하다.


그 사이에 심하게 빡치는 일이 있었다면 또 재깍 일러바치듯이 글을 써재꼈겠지만 요새 출근해서 5분, 자기 전 1분 30초 호흡 명상을 하고 빡치는 일이 현저히 줄었고 빡치는 강도 또한 줄어 일름보처럼 글 쓸 일도 생기지 않았다. 좀 더 관망하게 된 것 같다. 어차피 지나갈 일이고 해야 할 일이다.


업무 스콥은 그대로인데 수정과 재작업이 계속 들어와 정신이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웹사이트와 프로덕트는 론칭이 되는 듯싶다. 내 손을 떠났고 해당 업무 때문에 우선순위가 뒤로 밀려 한 달 넘게 진행해주지 못하고 있던 것들을 처리하느라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기웃거릴 여력이 없다.


날짜별로는 업무용 다이어리를 쳐다봐도 도무지 뭘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간단한 회고만 하려 한다.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굉장히 세세하게 디렉팅을 해줘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진행하였고 전체 리뷰 들어가기 전 이미 세 차례 톤과 내용을 뒤집어엎은 상태였다. 처음부터 디렉팅을 했던 것이 아니고 이러이러한걸 "똑같이" 원한다고 전달받지 못해서. 이걸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게 맞는 것인지 좀 의아했지만 글로 적기 어려운 이러저러한 내 추측으로 그러려니 했다.


전체 리뷰를 진행하는데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것이 아무리 비주얼로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텍스트를 대체하는 것이라고는 하더라도 텍스트의 1부터 100까지를 설명하는 내용을 나타내주길 원해서 '아, 쉽지 않다'라고 생각했다. 은유와 축약, 느낌적인 느낌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애초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작업을 하면 안 되었던 것 같지만 그 역시 내 선택은 아니었기에 이렇게 마음속으로는 책임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있다. 겉으로 보여 평가받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겠지만 딱히 알 바 아니다. 왜냐면 그럭저럭 나는 내 작업에 큰 불만이 있던 것이 아니라.(그래서 발전이 없나)


한차례 퀄리티에 대한 지적이 있었는데 세부 묘사를 올려달라는 이야기인지 스타일을 바꿔달라는 얘기인지 텍스트가 말하고 있는 내용을 더 삽입해 달라는 얘기인지 질문을 해봐도 명확하지 않고 퀄리티를 올려줄 수 있겠냐는 질문의 반복이었다.


아무튼 나는 그 시점에서는 명상...(이라고 쓰고 심호흡이라고 읽는) 행위를 하고 있던 터라 큰 타격이 없고 단지 뭘 어떻게 해줄지가 걱정이었는데 PO가 멘탈 나갔을까 봐 이런저런 다독이는 이야기를 해주고 일단 반영해 주는 액션을 하고 주말을 편하게 보내자고 했다. 나 대신 중간중간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해줬는데 이런 짜친 수정 사항을 말해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한 백만 번 했다. 짜치다고 일이 아닌 것은 아니고 일은 일입니다.


전 회사에서도 그랬지만 짜친 일을 유독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난 짜친 일이 오히려 해결방법이 직관적이라 거대한 일보다 더 좋고 일의 경중이 있다고 생각을 안 하는 야망 0에 수렴하는 인간이라 괜찮다. 일은 일이고 일은 한다. 뭐 내가 짜친 일을 하는 것이 배 아플 사람은 급여를 지급하는 사람이었다면 그 사람이었을 테지 내가 아쉽거나 힘든 것은 아니다. PO가 스스로 말한 대로 그냥 잘 액션하고 월급 받아가면 되는 위치라서.


아무튼 주말을 편하게 보내자는 위로와는 달리 주말에도 일을 했고...!


이런 내가 마음에 안 들면 어쩔 텐가. 눈먼 회사를 찾아 이직하려던 나를 채용한 눈먼 회사인 것을 후회해야겠지.


+

안타깝게도 나 홀로 브랜드 디자이너는 당분간 이 것으로 끝이다. 회고가 끝이라는 얘기가 아니라 조만간 브랜드 디자이너가 나 홀로가 아니라서!

작가의 이전글 야근은 성실인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