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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봄 Jun 1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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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함에서 한걸음 물러나

어제 저녁 3호가 먼저 교회를 가겠다고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쌩하니 달리는 아이의 모습이 활기차 부러웠다. 뭐가 저 아이를 저렇게 신나게 만들었을까 뭐가 저 아이를 설레게 만들었을까 

시간이 좀 흘러 교회에 도착한 아이가 검정봉지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면서 속삭였다.

"엄마 힘들 때 이거 먹어."

아이가 건내준 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커피우유였다. 세상엔 유명한 커피가 많지만 그 어떤 커피보다 대학시절 처음 먹은 커피우유 맛을 잊지 못해 커피우유를 좋아한다. 

 

3호가 사준 커피우유

혼자 먼저 교회로 향하면서 편의점을 갈 생각을 했다는 점.

편의점에서 자신의 음료수나 주점부리 없이 커피우유만을 샀다는 점.

계산대 점원이 "너 먹을려고?"라고 물었는데 "우리 엄마 줄려고요."라고 대답했다는 점.

검정봉지까지 하나 얻어 커피우유의 시원함을 잃지 않겠다는 당찬 소신을 부렸다는 점. 

검정봉지를 자전거 손잡이에 걸고 설레임과 기대감을 안고 교회로 향했다는 점.




평상시 아이의 모습과 비교해 본다면 10살 아이에게서 이런 생각이 어떻게 나왔을까를 되뇌어 본다. 


아이는 바쁘고 힘든 엄마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는 엄마가 어떤 걸 좋아할까

아이는 지금 해 줄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

엄마에게 위로와 웃음을 주고 싶은 '방향성'이었지 않았을까 한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 몸이 좀 자유롭다. 

더이상 씻겨 주지 않아도 되고

더이상 먹여 주지 않아도 되고

더이상 매끼니를 챙겨 주지 않아도 되고

더이상 책을 읽어주지 않아도 되고

더이상 밤에 깨지 않아도 되고

더이상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지 않아도 되고

참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 왔다. 

이 시점에서 난 고민을 한다. 

육아가 자녀양육이 내 인생의 목표가 아니였고 잠시 거쳐가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여유가 생겼으니 이제 어떤 방향으로 걸어야 하나. 

과거에 했던 일들을 습관처럼 그냥 다시 잡아야 하나 그러고 싶진 않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이런 저런 크고 작은 일들로 마음에 분주함이 내려 앉았다. 

이 분주함이란 녀석으로 나보다 먼저 빨리 달려가는 사람들 속에서 속도를 맞추지 못하는 나를 자책했다.

이 분주함이란 녀석으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자신이 무능력해 보이거나 게을러 보인다고 느꼈다.

이 분주함이란 녀석으로 가치 있는 일보다 욕심에 마음을 빼았긴 적도 있다.

이 분주함이란 녀석으로 '빠르고 신속한 삶'이 정답이라고 결론 내려 버렸다.





'빠름'이 아닌 '바름'으로 기본값을 설정해 보려 한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산에서 한발짝 물러나 느긋하게 보려 한다.

무언가를 이루기에 급급해 하지 않고 어떤 사람으로 되려는 가에 집중 해 보려 한다.

현재의 나의 민낯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차곡차곡 나를 쌓아 가보려 한다.

거창한 일을 계획하기 보다 소소하지만 가치 있는 일을 잡아 보려 한다.

주변도 잘 돌보며 '같이'의 '가치'를 살아보려 한다.


요즘엔 결혼식이나 돌잔치보다 장례식장을 많이 가게 된다.

장례식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고인은 살아 계셨을 때 어떤 분이셨습니까'이다.

나에게 묻는다.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너의 아내는, 너의 엄마는 살아 있을 때 어떤 분이셨니?"라는 질문에 뭐라고 답할까

그 질문에 걸맞게 오늘을 일주일을 한달을 일년을 십년을 살아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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