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가꾸기

by 이든

후글컬쳐(hugelkultur)라는 농법이 있다. 통나무, 가지치기한 나뭇가지들, 낙엽과 마른풀들을 언덕 모양으로 쌓아 유기물이 풍부한 흙을 만드는 농업 방법이다.


작년 가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벌채목, 잔 가지들, 땔감용으로 얻어온 폐목재들을 정원 한 귀퉁이에 쌓아 썩혔다. 여름내 잡초 덤불이 무성해 발길 하지 않다가 며칠 전 들여다보았다. 단단하던 목재들이 툭툭 바스러지며 잘 분해되고 있었다. 퉁실퉁실 살찐 지렁이도 몇 마리 보였다. 촉촉한 숲 향기가 났다. 좋은 퇴비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아직 형체가 남아있는 것들을 펼쳐놓고 더 잘 쪼개져서 더 잘 썩으라고 꾹꾹 밟아주었다. 밟을 때마다 빠지직 빠지직 경쾌한 소리가 났다. 가을 햇살이 따스해서 한참 밟기놀이를 했다. 어서 빨리 봄이 와서 시금치 씨를 뿌리고 싶었다.


씨앗을 품고 길러내는 기름진 흙을 만들고 싶은 강한 열망이 있다. 딱 봐도 건강해 보이는 흙에서 우람하게 잘 자라는 식물들을 보면 부럽다. 숲에서 부엽토를 걷어다 이 정원을 싹 덮고 싶을 때가 있다. 정원 흙과 그 흙이 키우는 작물들과 정원사는 서로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정원은 쪼금 어눌하고 낙천적인 것 같다.

낚싯대나 운동 도구처럼 삽도 손맛이 있다. 흙 속에 삽머리를 쿡 박아 땅을 파고 거기에 식물을 심고 땅을 고를 때, 퇴비를 뒤엎어 흙과 섞을 때 삽은 그냥 농기구가 아니다. 밥 떠먹는 숟가락 같다.

좋은 흙은 삽질이 잘된다. 흙에 푹 삽을 꽂을 때 나는 정원사로서 효능감을 느낀다. 그런데 돌이 많은 흙은 삽이 들어가지 않는다. 삽질하는 손맛을 느끼고 싶어서 땅에서 돌 캐는 일을 열심히 한다. 쭈그려 앉아 한참 돌을 모은다. 돌멍이라고 할 수 있다. 큰 돌은 돌무더기 속으로 집어던진다. 탁, 소리를 내며 제자리로 떨어질 때 기분이 끝내준다. 자잘한 돌들은 손가락을 구부려 긁어모은다. 모은 돌들을 날라 돌무더기 속에 부으면 돌담이 만들어진다.


정원가들이 첫 손에 꼽는 책이라는『정원가의 열두 달』을 아주 좋아한다. 거기서 카렐차페크는 정원사는 꽃을 가꾸는 사람이 아니라 흙을 가꾸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 말이 딱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흙 가꾸는 정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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