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과 돈키호테의 정원-2

by 이든

더위가 기승을 부릴 무렵 오크라에 꽃망울이 맺혔다. 금화규도 그랬다. 며칠 뒤 꽃송이가 터졌다. 둘 다 연노랑 빛 꽃이었다. 오크라 이름표를 쑥 뽑아버렸다. 별 모양 열매를 기다린 시간이 허탈했다. 금화규는 접시만 한 연노랑 꽃을 매달고 있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정원은 전철역에서 가까운 주택가에 있다. 골목을 지나가는 주민들이 꽃향기를 맡고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건 꽃 이름이다. 그래서 이름표를 꽂아두는 데 가끔 뽑힐 때가 있다. 마을 주민들과 치매예방 정원프로그램을 시작한 날 정원 식물 중에서 자기 별칭을 정하게 했다. 한 분이 꽃색깔에 매료되었다며 자신을 블랙 앤 블루세이지라고 소개했다. 세이지가 몇 종류 있긴 한데 그런 세이지가 있는지는 몰랐다.

나중에 꽃 이름표가 잘못 붙어있는 것을 알았다. 그분이 매료된 꽃은 허밍버드세이지였다. 벌새(Hummingbird)가 좋아해서 붙은 이름이었다.

이 정원은 회원들의 실습공간이자 마을공동체 정원이다. A와 이 정원을 만들었다. 1톤 트럭 두 대로 쓰레기를 치우고 언 땅을 곡괭이질 해서 비닐하우스를 설치했다. 그러느라 둘 다 허리 병을 얻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회원들이 모였고 주민들이 찾아오고 정원은 푸르러졌다. 누군가 대청도에서나 볼 수 있다는 대청부채를 가져와 심었는데 두 해째 피고 있고 천사의 나팔인 줄 알았던 꽃이 악마의 나팔인 게 밝혀져 정원 구석으로 옮겨졌다. 분꽃을 좋아한다며 씨앗을 뿌린 회원은 나타나지 않는데 색색 분꽃은 개화시기에 맞춰 꼭꼭 꽃을 피운다. 오색버들은 회원들의 수형 관리를 받으며 부쩍 자랐고 덕분에 우리들도 정원사로 커간다.

A는 돈키호테다. 나는 햄릿. 이렇게나 다른 두 유형이 호흡을 맞추자니 얼마나 서걱거릴까. 그래도 우리는 식물을 돌보는 정원활동가. 묵묵히 꽃 피우는 생명들처럼 우리도 어울렁 더울렁 꽃 피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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