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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든 Nov 17. 2022

둘이서 라라라

 부평 깡시장에 한부모가족지원센터가 있다. 그 센터 합창단에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단박에 거절했다. 악보를 읽지도 못하지만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서는 게 몸서리치게 싫었다. 


 여성합창단원들은 대개 롱드레스를 입었다. 천은 반짝거렸고 민소매이거나 가슴과 등이 파진 모양이 많았다. 실크나 시폰 소재의 스카프나 숄더를 두르기도 했다. 드레스가 길다 보니 신발도 굽이 높았다. 노래 부르기에 편할리 없었다. 


 한부모가족합창단이 오늘 무대에 오른다. 3일 동안 열리는 큰 합창대회다. 종일 여러 일정을 소화하느라 몸이 녹초가 되었지만 응원하는 마음으로 일찌감치 공연장으로 갔다. 

 기다리던 합창단이 소개되었다. 하얀색 롱드레스를 입은 한부모 여성들이 차례차례 나타났다. 드레스 자락을 살짝 말아 쥐고 조심조심 계단형 무대에 올랐다. 턱시도 차림의 남성 단원 몇 명이 맨 뒷자리에 섰다. 대중가요 ‘라라라’를 불렀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내가 그대에게 부족한 걸 알지만 

   세월을 걷다 보면 지칠 때도 있지만 그대의 쉴 곳이 되리라 

   사랑해요 고마운 내 사랑 평생 그대만을 위해 부를 이 노래 

   사랑 노래 함께 불러요 둘이서 라라라     


 지금까지 들었던 ‘라라라’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이 합창만 듣고 빠져나갈 생각이었는데 쉽게 일어나 지지 않았다. 2대, 3대가 모인 가족 합창단, 장애인 합창단, 친구의 지휘에 맞춰서 노래하는 초등 합창단, 동네 주부 합창단, 마지막으로 전문합창단이 노래했다. 모든 발표가 끝나고 12개 팀 오백여명이 함께 부르는 연합 합창까지 끝까지 다 들었다. 음악의 감동은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합창하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뭉클해서 손바닥에 불이 나게 박수를 쳤다. 미얀마 난민 학생들의 율동은 귀여웠고 가족합창단의 수화는 아름다웠다. 한부모들은 무대에서 노래한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웠다.


 동행한 친구가 자신은 테너나 베이스 목소리가 좋은데 남성단원들은 왜 앞줄에 서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 친구의 말이 신선하게 들렸다. 무대 대열을 바꿔서 여성단원들을 맨 뒤에 세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무 곡이 넘는 합창곡을 듣다 보니 소프라노의 고음이 피로감을 주었다. 


 ‘군화와 고무신의 차이’라는 글이 있다. 군화를 신고 산길을 걸으면 발치에 걸리는 것들을 우지끈 밟고 거침없이 나아가는데 고무신을 신고 걸으면 밟히는 것, 차이는 것들 때문에 발이 아파서 땅을 살펴 딛는다는 이야기였다. 군화와 고무신은 걸음의 속도에서, 발의 힘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데 자연생태적인 삶을 추구하던 작가는 고무신을 신고 걸어보라고 제안했다.   


 그 글을 읽을 때 강렬한 감동을 받았다. 군화 걸음을 묘사한 부분이 고무장갑을 꼈을 때의 느낌을 떠오르게 했다. 고무장갑만 끼면 나는 용감해졌다. 과감해졌다. 더러운 것도 징그러운 것도 뜨거운 것도 독성이 있는 것도 만질 수 있었고 손은 빠르게 움직였다. 손에 더 많은 힘이 실려야 할 때는 고무장갑 안에 면장갑을 꼈다. 


 발에 무엇을 신기고 손에 무엇을 끼우고 몸에 무엇을 걸치는가는 사소하지 않다. 신겨지는 것, 끼워지는 것, 걸쳐지는 것에 따라 사람들은 달라진다.  

 오늘 합창 공연을 한 여성들의 의복은 모두 롱드레스였다. 무대에 섰을 때 통일감이나 장중함은 있었지만 여성들의 다양한 체형에 어울리지는 않았다. 드레스라는 의복이 키가 크고 살집이 없는 소수 여성들을 위한 디자인 같다. 


 어떤 사람이 우리 사회가 여성들에게 근육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여성의 팔뚝에, 종아리에, 어깨에 근육이 붙으면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사실이다. 여성들에게 소프라노와 알토의 목소리를, 드레스가 잘 어울리는 몸을 규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들도 테너나 베이스의 음역을 노래하고 롱드레스 대신 턱시도를 입는 합창단이 있다면 나도 합창을 배울 수 있겠다. 그런 합창단에서 라라라를 부르고 싶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그대 자신보다 나를 아껴준 사랑

   세상이 등 돌려도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그대 지켜줄게요

   사랑해요 소중한 내 사랑 평생 그대만을 위해 부를 이 노래 

   사랑노래 함께 불러요 둘이서 라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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