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소개를 통해 처음 접해본 커뮤니티 매니저 수행, 내 첫 블록체인 행사 'KBW2022', 회사의 부도, 불분명한 R&R 및 업무과중으로 인한 자발적 퇴사, 블록체인 학회 운영 및 관리 등 슬프고 화나는 경험도 해보고, 즐겁고 행복한 경험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내 나이 벌써 30살 (윤석열 정부의 만 나이 제도 덕에 다시 아홉수가 되긴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블록체인 시장에 조금 더 몸을 담가볼까? 아니면 내가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는 시장, 기업을 다녀야 할까?
블록체인 시장을 입문하게 된 계기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마케팅 분야로 커리어를 쌓고 싶었던 나는 다양한 회사와 시장을 찾아봤지만 개인적으로 끌리는 기업이 보이지 않았다. 젊음의 패기였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의 한낱 객기였을 수도 있지만, 당시의 나는 심장을 뛰게 해줄 수 있는 시장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친구의 소개를 통해 '크립토'에 입문하게 됐고, 이를 통해 블록체인이라는 새롭고 흥미롭고 아직 탐구할 공간이 많이 남은 신규 시장을 찾게 됐다.
기술적인 변화도 빠르고, 트렌드의 변화도 빠른 블록체인 시장에서 새로운 용어들을 배우고, 기존 시장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사업 구조가 블록체인을 통해 새로이 구현될 수 있음을 보며 블록체인 시장이 인류의 미래라고 생각했었다. 스타트업을 다니는 나를 못마땅해하는 부모님 눈치 속에서도 나는 블록체인이 앞으로의 먹거리라는 생각을 당시에는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회초년생 1년만에 회사 부도라는 참으로 혹독한 경험을 겪게 됐다. 최저 월급에 마땅한 사업 모델도 없었지만 나에게 배움의 기회를 많이 제공하고 블록체인 시장의 흥미로운 면모를 많이 보여준, 참으로 애증이 깊은 내 첫 회사가 자금 부족이라는 이유로 9월에 갑자기 나를 내쫓았다. 갑작스레 있을 곳을 잃었지만 당시의 나는 아직 희망찬 전망을 갖고 있었다. 블록체인이 신규 시장인 만큼 사업 구조가 불명확한 스타트업들도 많을 것이고, 회사랑 같이 성장할 수 있기 위해선 나의 역량 강화가 중요하다 생각했고, 그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버틸 줄만 알면 된다 생각했다.
그렇게 블록체인 학회에 지원해 들어왔고, 학회 활동을 병행하며 열심히 여러 블록체인 기업에 지원했다. 아예 경력이 없는 편은 아니니 어딘가는 붙을 것이라는 생각이 컸지만, 당시 테라-루나 사태 및 FTX 파산으로 인해 크립토 시장 전반적으로 하락세가 오래 유지됐다. 그러다 보니 잘 나간다 하는 블록체인 회사들도 사람을 덜 뽑기 시작했고, 뽑더라도 엄격하고 깐깐하게 사람을 뽑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내 역량, 태도가 부족했을 수도 있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첫 회사에서 내쫓긴 이후 반 년을 넘도록 취직이 되지 않았다).
혹독하게도 구직이 안되는 현실 속에서 그나마 블록체인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학회 친구들 덕에 겨우 공백기 동안 버틸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학회 친구의 소개를 통해 거래소를 출시하려는 회사에 이직할 수 있게 됐다. 반 년 이상이나 취직이 안되던 나에겐 단비 같은 소식이었고, 새로운 회사에서는 잘 적응하여 나의 역량도 인정받고 같이 성장해나가리라 굳게 다짐했었다.
그렇게 2개월 인턴 계약을 체결하고 일을 시작했지만, 자사 및 경쟁사 간 분석에서 마땅히 자사만의 USP가 안 보였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불리한 사업구조를 밀어붙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됐다. 어느 회사든 순풍만 있을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회사가 사업을 출시하기도 전에 너무 분리한 조건에서 시작한다는 생각을 잊을 수 없었다. 물론 제대로 된 일머리가 박힌 사람이라면 그런 와중에도 스스로 회사 내 입지를 다질 수 있기 위해 사업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더 리서치를 해보고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회사에 전망이 없다 확신했고, 이로 인해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가 사라졌다. 결국 인턴 계약이 만료된 후 재계약은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차라리 첫 회사처럼 내가 어쩔 수 없는 외부적 요인으로 내쫓긴 거면 모를까, 2번째 회사에서 본인의 의지로 회사를 더 다니지 않기로 마음먹은 순간은 특히나 나에게 가혹한 순간이었다. 물론 돈 떼먹힌 순간도 쉽지는 않았다 (다행히 지금은 돌려받을 돈은 다 받았다). 그러나 2번째 회사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즐거움을 주고, 배움의 기회를 줄 것만 같은 블록체인 시장이 더 이상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게 해줬다. 나의 갈 길이라고 굳게 믿었었는데, 일련의 경험으로 인해 나의 길이 크게 흔들려버린 것이다.
그렇게 지금 나는 인생의 갈림길에 놓인 상황이다.
첫 번째는 계속 스스로 레벨업을 하고 언젠가 올지 모를 시장의 부흥을 기다리는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2021년과 마찬가지로 시장은 다시 부흥할 계기가 생길 것이고, 이 때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열심히 역량을 갈고 닦으면 언젠가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언제 올지 모를, 게다가 온다 하더라도 내가 성장할 수 있을지 모를 불확실한 상황이 계속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두 번째는 블록체인 시장은 잠깐 버리고, 안정적인 생활을 도모하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안정적인 방향성이라 함은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다. 그나마 학력이 나쁘지 않은 편이고, 나름 이전의 경력도 살릴 수 있으니, 30살을 넘기기 전에 할 수 있는 내 마지막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지원하고자 하는 대기업들은 블록체인 시장과는 무관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즉, 블록체인 시장에서의 지식이 (장기적으로 언젠가 쓰일 지는 몰라도) 당장 필요없다는 것이며, 결국 대기업을 지원함에 있어 나는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해도 다양한 형태로 성장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에 대한 깊은 관찰력을 얻거나, 대기업 생활을 통한 다른 통찰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쪽도 쉽지 않은 길이다. 시장이 다시 괜찮아지기를 기다리며 블록체인 회사에 문을 두드려봐도 이직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도전해보지 않은 대기업에 부랴부랴 지원한다고 해서 신입으로 취직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깔끔하게 글의 마무리로 나는 어떤 선택을 했고, 좋고 나쁜 결과를 얻었다는 내용으로 결론을 내고 싶지만,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아직 고민 중이다. 나이가 들면서 쉬운 선택지는 없고, 무슨 선택을 하든 그 결과는 내가 온전히 담당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