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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Dec 06. 2022

누구에게나 빈칸은 있다

- 6학년 수학여행

 


“선생님 수학여행 조 언제 짜요? 다른 반 다 짰대요”

수학여행이 3일 남았다. 내가 누구인가? 프로 강사답게 담임쌤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게 최대한 만족스러운 조를 짜주겠어.      


 “놀이 기구를 큰 뼈대로 짤게요. 의견 안 맞아 놀이 기구 못 타면 서로 기분 나쁘니까요.  티익스프레스 가능한 사람 손들어 보세요.” 놀이 기구 탑승력과 교우 관계까지 고려한 완벽한 조별 편성이 이루어졌고 아이들은 감동의 눈빛을 보내왔다.     



 그러나 수학여행을 떠나려면 아직 멀었다. 버스 좌석 배치, 조장 뽑기, 비상 연락망 작성, 에버랜드 앱 사용법 등등 사소하지만 중요한 절차는 계속 이어진다. 만난 지 일주일도 안 된 아이들 이름도 다 못 외운 채 각종 미션을 하나씩 클리어해 나가자니 최고의 여행으로 모시겠다는 나의 열정은 서서히 식어갔다.



이튿날 아이들은 간식과 용돈을 더 허용해달라고 집요하게 졸랐고 복도는 들뜬 마음을 주체 못 하고 뛰어다니는 아이들로 넘쳐났다. 정신이 학교 밖으로 탈출할 때쯤 전담 선생님께 메시지가 왔다.『선생님. 학부모님 비상 연락처도 필요합니다』     


쉬는 시간 급하게 학생 명부를 뽑아 게시판에 붙였다.

 “얘들아, 부모님 연락처 빠르게 확인 부탁할게요”

 “선생님 이거 개인 정보 아니에요?

이렇게 함부로 공개하시면 어떻게 해요?”     



우리 반 최고 똑똑이, 전교 임원과 방송부원을 겸하며 출석 번호마저 1번인 가은이가 학생 명부를 붙인 지 1초 만에 날카롭게 말했다. 빈정이 확 상했다. 내가 이틀간 이렇게나 배려하고 머리 싸매가며 정성껏 준비하는데 정보 공개를 운운하며 나를 몰아붙이다니.      



 “어. 미안해요. 선생님이 실수했네요. 뗄게요”

어린 민원인들이 따지고 들 때 으레 나오는 영혼 없는 목소리로 건조한 사과를 했다. 서운함과 기분 나쁨, 부끄러움이 스멀스멀 밀려오지만 민원인이 따질 때 감정을 보이는 건 프로 강사가 아니다. 나의 차가운 사과가 기분 나빠서인지 민원인은 친한 친구 무리를 이끌고 화장실로 가버렸다. 경우 없는 내 일처리에 대해 욕을 하고 있겠지.          



  “여러분. 오늘 당장 확인이 끝나야 수학여행을 가는지라 선생님 마음이 급했어요. 다시 한번 미안해요. 개인 정보를 지켜가며 꼼꼼하게 확인하느라 귀한 수업 시간 10분을 빼먹었네요. 학습권도 중요하니 우리 어서 진도 나가볼까요?”  아직 마음이 상한 나의 딱딱한 멘트에 아이들은 조용히 논설문을 써 나갔다. 교실은 고요해졌고 사그락 사그락 연필 소리만 들린다.     


휴~ 한숨 돌리며 책상에 앉는 순간.

나는 어? 하며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가은아, 잠깐만”




 가은이를 복도 끝으로 불렀다.     

 “혹시 명부에 비어 있는 칸 선생님이 짐작하는 거니?”     

가은이가 울기 시작했다.

가은이가 빨간 눈을 하고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학생명부 ‘1번 강가은’ 학부모님 칸에는 어머니의 성함이 없었다.

가은이의 아픈 빈칸을 이제야 본 것이다.     



“가은아. 선생님이 서툴렀어.

 내가 마음이 바빠서 생각이 짧았어.

 진심으로 사과할게.”      


가은이를 부둥켜안았다. 내 딸과 똑같은 어깨 높이.

6학년 딸을 둔 엄마의 마음이 가은이를 감쌌다.


가은이는 교실 학습 진도 체크부터  조원의 역할극 대사 외우기까지 챙기는 꼼꼼한 아이다. 규칙에 맞고 완벽한 것을 좋아하는,  그러기 위해 뭐든 열심히 하는 아이,  그런 가은이에게 저 빈칸은 얼마나 아픈 칸일까? 자신이 노력해도 채울 수 없는 칸.  그 칸을 몰라주었던 것이다.   


미안함에 가슴이 시렸다. 시린 마음으로 아이를 안고 있으니 심장이 아파 온다. 나의 이 미안한 마음이 너의 심장에 전해졌으면 좋겠다.

온몸으로 사과를 했다.      


“엄마 아빠가 응석 다 받아주는 부잣집 막내딸인 줄 알았어. 정말 티가 하나도 안 나더라. 가은아. 이렇게 잘 커줘서 내가 다 고맙다. 지금처럼 훌륭하게 잘 자라자."

우리는 한동안 꼭 껴안고  울었다.               





그 후 나는 깐깐한 어린 민원인을 만나면 가은이의 빈칸을 생각한다.

나의 사정만을 앞세우지 않기를.

그 아이의 빈칸이 놓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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