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학년 망가진 장난감
“양아치 같은 놈”
“야 이 도둑놈아”
“도둑놈 새끼가 지나가네.”
윤재는 활발하고 적극적인 아이다. 그렇다고 예의 없는 아이도 아니다. 그런데 쉬는 시간만 되면 한영이를 따라다니며 욕을 한다. 다른 아이들이 들릴락 말락한 소리로 읊조린다. 이 도둑놈 새끼. 비겁한 새끼.
자세히 관찰해야만 눈치챌 정도로 윤재의 괴롭힘은 은밀했다. 그리고 무서울만치 집요했다. 한영이는 고양이 피해 달아나는 닭처럼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윤재를 피해 3 분단에서 복도로 복도에서 화장실로 옮겨 다녔다.
아이들 놀이 관찰이 취미인 나에게 이 장면이 잡히지 않을 리가 없다. 둘을 불렀다.
“무슨 일이야? 말해 줄 수 있어?
아무리 그래도 친구한테 욕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저 새끼가 도둑놈이니까 도둑이라고 하는 거예요.”
“뭘 훔쳤는데?”
“아니, 훔친 게 아니라 내 걸 고장 내고도 말이 없잖아요”
윤재는 억울하다는 듯. 정말로 저 아이가 자기 것을 훔친 양 한영이를 몰아붙였다. 그 와중에도 한영이는 말이 없다. 눈을 끔뻑이며 윤재의 억울함과 분노를 지켜 보고만 있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자율 활동 중 장난감을 가져와서 놀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윤재는 가장 아끼는 장난감을 가져왔다. 그 장난감은 버튼을 세게 눌러 농구 선수가 높게 점프하는 장난감이었다. 4학년 남자아이들이 돌아가며 주먹으로 버튼을 누르는데 장난감이 견뎌낼 리 만무했고 하필 한영이가 누르는 타임에 장난감은 운명을 달리했다. 윤재는 한영이에게 물어내라고 소리를 질렀고 한영이는 도망을 갔다. 그 후 둘은 한 달 넘게 실랑이 중이었다.
한영이를 따로 불렀다.
“한영아, 하필 네 차례에 고장이 나서 당황스러웠겠어. 부모님께 말씀은 드려봤니?”
“같이 놀다 그런 건데 왜 네가 다 물어내냐고 엄마가 못 물어준대요”
한영이는 참으로 곤란해졌다.
담임 선생님은 병가로 사라지셨고 엄마는 새 장난감은 못 사주겠다고 하고 매일 마주치는 아이는 자신을 도둑놈으로 몰아세운다.
나도 곤란해졌다.
운동도 잘하고 씩씩한 윤재가 하루 종일 목소리 한 번 들을 일 없는 한영이를 괴롭힌다. 곧 학급 안에서 사고가 날 것만 같다. 담임 대신 있는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그것이 최상의 목표인 프로 대체 강사의 입장에서 이런 징조는 참으로 곤란하다.
하루를 고민하고 한영이를 불렀다.
“한영아. 너 용돈 얼마나 있어? 선생님이랑 같이 물어주자”
한영이의 로봇 같던 얼굴에 놀라는 표정이 보인다.
“네?”
“그거 2만원 정도 한대. 교실에서 놀다 그런 거니까 선생님이 보태줄게”
사실 저렇게 불편한 관계를 두고 보는 내가 힘들고 괴로워서였다. 그러나 덥석 내가 다 사줄 수는 없는 노릇. 한영이의 미안함도 한 스푼 추가해야 할 것 같아 용돈 이야기를 꺼냈다.
“ 저 만원 정도 있어요. 쓸 수 있는 돈이에요”
한발 물러서만 있던 한영이가 적극적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결론이 난 우리는 당당하게 윤재를 불러 상황을 설명하고 변상 계획을 알렸다.
“ 안 물어줘도 돼요. 괜찮아요”
한영이랑 나는 멍해졌다.
“아. 그냥 사과했으니 됐어요.”
머슴애들의 뚝뚝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대화.
윤재는 변상하겠다는 말과 사과를 동의어로 여겼다. 물어내라는 말은 속상하니 사과하라는 말이었고 변상 계획이 곧 사과였다. 윤재는 계획을 듣고 마음이 풀렸다. 변상 계획은 실현되지 않아도 되었다. 억울한 아이와 두려운 아이는 한 달간의 실랑이를 금세 지워버렸다. 복도에서 한동안 이야길 나누더니 웃으며 들어갔다. 그 날 둘은 같이 축구를 했다.
한달간의 실랑이와 사과를 통해
한영이는 피하지 않고 문제를 맞서는 법에 한 걸음 다가갔고 윤재는 다그치치 않아야 하는 이유를 배웠다.
오늘도 아이들은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