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한 취미

엄마의 문화생활 2: 예술의 세계

by 수아

먹고살기 바쁜 사람이 예술은 무슨. 내가 딱 그 생각이었다. 집안에 예술 쪽으로 전공을 한 사람도 없었고 딱히 다양한 문화예술을 성장기에 접해본 적도 없었다. 그 시절 많은 학생들이 그랬듯이 입시를 위한 공부를 제외한 다른 영역에 대한 관심은 사치이자 시간낭비인 줄 알았다. 예술에 대한 관심은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즐기고 공부하는 뭔가 나와는 다른 세계인 것 같았다. 클래식에 대한 조예도, 그림에 대한 관심도 없었던 나는 다소 밋밋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큰 불편함 없이 나의 삶을 살았다.


아이가 생기니 달라졌다. 무언가를 더 보여주고 싶었고, 경험해 보게 해 주고 싶었다. 그 경험이 이 아이의 삶의 연결고리가 되어 나와는 다른 좀 더 풍요롭고 많은 것을 정신적, 감성적으로 누리는 삶을 산다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아이를 낳고서는 평소 가보지 않았던 미술관이나 전시도 몇 번 데리고 다녔던 것 같다. 이런 거창하고 고상한 의도와는 달리 아이는 기껏 비싼 입장료를 내고 전시를 가면 5분 만에 휙 보고 자기는 다 봤다고 하면서 기념품 가게와 간식에 훨씬 많은 시간을 보냈다. 괜히 왔나란 생각이 든 적도 많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크고 작은 전시나 박물관(혹 미술관)을 가끔씩은 데리고 다녔다. 이런 아이와 나에게도 조금은 예술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 뉴욕현대미술관(뉴욕):

아이가 일 학년 때 뉴욕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과 뉴욕현대미술관(MOMA)을 가게 될 기회가 있었다. MET는 그 규모와 방대함에 아이는 내심 놀라고 재미있어했다. 가기 전에 관련된 책을 몇 권 사주기는 했는데 자세히는 모르고 갔던 박물관이었다. 아이는 앤디워홀의 캠벨수프캔 모양의 작품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 작품만 하나만 알았던 것이라 그럴 수도 있다. MOMA는 개성적인 현대미술의 특이함을 우리 모녀가 잘 소화하지 못해서 엄청 지루해하기도 했다. 그래도 로비 앞에 몽환적인 느낌과 색으로 시시때때로 변하는 로비의 그림, 예술작품과 멋진 소품이 가득한 기념품샵, 현대미술의 세련됨을 느끼게 된 시간이었다. 좀 더 공부를 해 보고 갔으면 더 보였을까 싶어 아쉬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때는 우리에게 그것이 최선이었다.



# 루브르 박물관/오르세 미술관(프랑스 파리):

와 이것이 진짜 박물관이구나, 미술책에서 봤던 작품들이 여기 다 있구나 싶었던 것이 바로 루브르 미술관이었다. 사람들도 무척이나 많았고, 입장료도 비쌌지만 삼각형 모양의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무언가가 느껴졌었다. 예전에 궁전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그만큼 아름답고 화려한 내부들도 있었다. 모나리자를 실제로 봤을 때는 생각보다 작았지만, 미술책에서만 봤던 작품을 실제로 보았다는 사실 자체가 감격이었다.


예전에는 기차역으로 사용했던 공간을 미술관으로 개조해서 만든 오르세 미술관도 감동과 아쉬움이 남는 곳이었다. 아는 작가들의 그림이 많아서 하나하나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아이는 지루하다면서 쓰윽 둘러보고는 기념품가게와 카페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쉽고 아까웠지만 아이가 관심을 갖고 열리는 때가 오겠지 싶어서 더 이상 강요하지는 않았다. 보여주고 가르쳐주고 싶은 내 욕심보다 아이의 상태와 속도에 내가 맞췄다. 어쨌든 오르세 미술관은 대중에게 보다 익숙하고 편안한 그림들이 많아서 보기가 좋았고, 다음에 다시 또 가보고 싶은 곳이다. 내부에 있는 식당이 맛있고 가격대도 괜찮은 편이라고 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공사 중이라 이용하지 못한 게 아쉽다.(아이랑 내가 비록 가보지는 못했지만, 오랑주리 미술관도 추천한다. 모네의 수련을 위한 전시로 만들어진 공간이라고 하는데 평이 좋다. 파리 근교 지베르니 투어로 묶어서 가면 그 감동이 배가 된다고 하니 참고하시길.)



# 내셔널 갤러리/ 대영박물관/ 테이트모던(영국 런던):

영국 런던에서 크고 작은 다양한 박물관(미술관)들을 보면서 와 이곳은 마음만 먹으면 매일매일도 박물관을 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 모든 박물관들이 거의 무료인데다가 자유롭게 다양한 선택지 속에서 보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정말 다양한 자극과 경험, 배움이 가능한 예술작품들이 온 도시를 뒤덮고 있었다. 말도 탈도 많은 영국이지만 이래서 전 세계의 문화산업을 이끌어나가는 힘이 있는 것인가 싶었다. 봐도봐도 끝이 없는 다양한 그림 작품이 가득한 내셔널 갤러리, 눈이 휘둥그레지는 규모의 유물과 조각상들이 가득한 대영박물관, 세련되고 추상적이며 매력이 있는 테이트모던까지. 물가가 비싸고 날씨가 우중충한 날이 많은 이토록 힘든 런던땅을 왜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그 이유가 있겠다 싶었던 곳.


# 예술의 전당/ 판교현대 어린이 미술관(국내):

국내에서는 아이가 방학이 되었을 때 친구엄마들이랑 종종 갔던 곳들이다. 예술의 전당은 워낙 크고 유명하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전시가 열리니 언제든 추천! 다만, 전시 종류와 특징에 따라 전시 규모가 작을 때도 있고 아이의 성향이나 배경지식에 맞는 전시로 선택했을 때 만족도가 더 높아 보인다.

판교에 있는 현대어린이미술관도 미취학 혹은 저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부담 없이 가보기 좋은 곳이다.

근처 백화점을 구경하고 시간을 보내면서 가볍게 전시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분기별로 주제도 바뀌어서 좋다. 아이들은 전시 자체보다도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체험과 활동들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 국립중앙박물관/ 각 지방별 국립박물관들(국내):

케데헌의 인기 때문인지 최근 국중박의 인기는 엄청나다고 한다. 한꺼번에 하루 동안 다 보려고 하기보다는 아이가 소화할 수 있고 관심이 있는 만큼만 보는 것을 추천한다. 아이엄마가 되고 나서 가본 국중박은 학창 시절 억지로 끌려온 소풍때와는 완전 다른 곳이었다. 전시의 질과 구성, 공간 기획력이 너무나 뛰어나서 유물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하고 인상적으로 기억되었다. 또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게다가, 굿즈샵의 다양한 기념품들은 뛰어난 감각과 세련미로 우리의 문화재들을 일상 용품 속에 녹여서 외국인 친구가 있다면 정말 선물하고 싶었다.


지방에서 운영되고 있는 크고 작은 국립박물관들도 서울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지역별 특성과 특유의 문화재를 볼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라 생각한다. 유튜브 채널들을 통해 전문가들의 해설과 배경지식을 한번 살펴보고 들어가 보면 더 재미있게 보인다.



내 경우에는 박물관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곳이라는 편견을 혹시라도 줄까 봐 늘 조심스레 아이의 컨디션을 살핀다. 정말 힘들고 어렵게 와도 아이가 힘들어하면 과감히 노선을 바꾸거나 중단한다. 최대한 흥미를 끌 수 있는 다양한 시도와 노력들을 해 보려고 한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사전에 미리 관련된 영화나 책을 보고 온다던지, 기념품 가게를 보면서 관련 작품을 이야기를 한다던지, 근처 맛집이나 아이가 좋아하는 곳들과 연관 지어 가본다던지 등등.. 엄마로서 알려주고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아이 내면 속에 스스로 생기는 호기심과 흥미를 차단해 버리고 싶지 않아서.


예술이 주는 매력이 있구나. 분명 가만히 존재하고 있을 뿐인데 내게 말을 하고 있구나. 나를 위로해 주고, 설레게 하는구나. 내 마음을 움직이고 있구나. 많은 예술작품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과 느낌들을 받았다.

예술작품이 주는 힘은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적이구나. 예전엔 미처 몰랐다. 이걸 아이에게 느끼고 알게 해주고 싶다. 엄마인 나는 너무 나이가 들어서 이런 것을 알게 된 이전의 시간이 아쉬워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사실이지만 잘 몰라도 느껴지긴 하더라. 그러면서 더 알고 싶어 지더라.

그러면서 나도 점점 배우고 더 많이 보이고, 더 많이 알게 되겠지.



매거진의 이전글'멋'과 '맛'이 있는 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