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꾸민다는 것

엄마의 외모

by 수아

" 아니, 이게 정말 지호 엄마 사진이야? 어머나! 다른 사람 아니고?"

" 와! 완전 연예인 같다. 언제 찍은 사진이에요?"

" 아니, 완전 다른 사람 같네. 정말 너무 예쁘다!"

" 와, 지호 엄마! 우리 살 빼자! 살 빼고 화장하면 이런 느낌으로 더 예쁠 거 같은데?"


아줌마들 특유의 호들갑과 수다로 난리가 났다. 지난달 이사 갔던 지호 엄마가 집들이 겸 친한 엄마 몇 명을 초대해서 그 집에 갔다가 거실에 걸려있던 결혼사진을 보고 다들 놀라서 한 마디씩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우리가 아는 지호엄마는 키도 크고 살집도 있어서 꽤 통통하신 편인데 결혼사진 액자 속 지호 엄마는 정말 너무나 가냘프고 야리야리해 보여서 정말 딴 사람 같았다. 지금의 지호 엄마의 모습을 보면 상상이 안될 정도로 엄청 마르고 연약해 보이는 한 여인이 그 액자 속에 있었다. 무엇이 지호 엄마를 이토록 다른 사람으로 만든 걸까? 여자가 결혼하고 애 낳고 키우다 보면 살도 찌고 나이도 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너무 예쁘고 보호해주고 싶었던 저 여자는 과연 어디로 간 것인가? 지호 엄마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이며, 우리 엄마들의 이야기이다.


결혼 전에는 화려하게 꾸미지는 못해도 옷을 사는 것을 좋아하고, 나름 관심도 있었다. 아이를 낳고 육아를 시작하니 아이옷은 사더라도 엄마옷은 안 사게 된다. 기껏해야 계절에 따라 등하교할 때 편한 보세 운동복 세트를 사는 정도이니 나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잘 꾸밀 틈이 없었다. 돈도, 시간도, 체력도. 가끔 직장 다니시는 워킹맘들이 깔끔하게 정장과 구두를 신고 하교 때 오시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정장 입고 싶어서라도 직장에 다니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우습지만 정말 그랬다.


하긴, 아이가 너무 어릴 때면 툭하면 아이 간식이나 이유식을 흘리고 안고 있거나 업고 있어야 하니 비싸고 좋은 옷을 입을 수가 없고, 아이가 좀 커도 어린 자녀를 돌보는 일은 늘 상시 대기조처럼 활동이 편하고 긴급 상황에 대처가 가능한 편한 옷이 최고였다. 아이가 커가면서 화장도 조금씩 하게 되지만, 나에게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는 점차 줄여가게 되었다. 크고 작은 엄마들과의 모임이 있거나, 외부 결혼식이나 주요한 행사가 있으면 그때서야 입을 옷이 없다는 걸 깨닫고 급하게 사거나 결국 고르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거나 한다. 쇼핑을 안 해본지도 오래라서 뭘 어떻게 사야 할지, 좀 더 나은 가격에 좋은 옷은 없는지 한참 고민하다가 또 시간만 간다.





합리적이고 최신 유행템 화장품들이 많은 OO가게에서 연간 세일 행사를 한다고 톡이 온다. 결혼 전에야 백화점 브랜드 화장품에 구경이라도 갔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는 언감생심 꿈에도 못 꾼다. 가끔 절친들이 생일을 맞아서 카톡으로 명품 브랜드 립 제품이라도 주면 고이고이 간직하면서 특별한 날에만 쓰기도 한다. 젊은 손님들과 함께 어깨를 부딪히면서 그 가게에 가서 가성비 좋고 평 좋은 행사제품을 찾기에 여념이 없다. 선크림도 기초제품도 색조제품도 다 떨어졌다. 꼭 돈이 들어가는 달에 한꺼번에 가지고 있었던 화장품들도 똑 떨어진다. 그래, 피부과도 못 가는데 이거라도 사서 잘 써보자. 괜히 허한 마음에 세일을 핑계 삼아 이것저것 화장품들을 바구니에 담아본다.


나이가 드니, 흰머리가 스멀스멀 나온다. 젊었을 때처럼 염색을 멋을 위해서 한다기보다 흰머리를 가리기 위해 하게 된다. 두어 달만 염색을 하지 않아도 흰머리가 꽤 보여서 염색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셈. 염색만 하고 가려고 하면 영양추가와 모발관리, 두피관리 등등 한없는 추가비용을 소개해 주신다. 참, 머리 하나에 관리할 게 많기도 하다 싶다. 또 설명을 들으면 안 하긴 찜찜하고 하기엔 부담스럽다. 결국 고민 끝에 유난히 머릿결이 뻣뻣한 듯해서 이번 달만 영양추가를 해 달라고 한다. 말하고 나서도 괜히 했나 싶어 또 고민한다.


다음 달에 작년에 아이 담임 선생님이셨던 분께서 결혼식을 하신다고 한다. 아이는 벌써부터 들떠서 자기도 꼭 가서 선생님을 축하해 드리고 싶다고 난리다. 여자애들 몇 명이서 함께 선생님의 결혼식에 가기로 꼭 약속을 했다고. 가면 좋지만 막상 가려니 이래저래 신경이 쓰인다. 옷은 대강 아는 엄마가 일하는 보세 옷가게에서 사기로 하는데 이럴 때면 나의 명품백 타령은 또다시 시작된다. 아, 정말 이럴 때 가지고 다닐 명품백은 하나 진작에 살 걸. 아무도 내가 들고 가는 명품백에 대해 관심이 없을 텐데도 나 혼자 하는 고민이 시작된다. 한번 알아나 볼까 했더니 왠 걸. 원래도 이렇게 비쌌나 싶게 다른 세상 가격이다. 어후 저 돈이면 학원비가 일 년 치이겠다. 명품백의 가격은 빠르게 아이의 학원비와 생활비로 치환되면서 이건 아니다 싶어 마음을 접는다. 그러나 다음번 결혼식이 생기면 나는 또 이 모든 프로세스를 반복할 듯하다.


같은 반 친한 엄마가 출산 후 힘들어서 1:1 필라테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효과가 좋아서 부기도 많이 빠지고 건강과 몸매 교정에도 효과가 좋다고 추천을 해 준다. 요새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탄탄한 몸매 자체가 명품 옷이나 가방보다 더 선호되고 있는 추세라서 자신의 몸을가꾸고 단련하는 데 더 노력을 기울인다. 운동에 젬병인 나도 혹해서 가격을 물어봤다가 역시나 높은 가격에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여자가 꾸민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 꼭 돈을 안 들이고도 꾸밀 수 있겠지만, 왜지간히 부지런하지 않고서는 쉽지가 않다. 내 경우에는 그랬다. 주변 엄마들을 보면 알뜰살뜰하게 자신을 잘 돌보고 센스 있게 가꾸어 나가는 분들도 있어서 닮고 싶지만, 난 아직 못한다. 꼭 돈을 써서 꾸미는 방법만 아는가 보다.


여자가 꾸민다는 것은 시간이 있다는 뜻이다. 자신을 돌보고, 살필 수 있는, 관리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자신을 챙길 수 있다.


여자가 꾸민다는 것은 정신적, 신체적으로 건강하다는 뜻이다. 자신을 챙기고 상태를 돌아볼 마음의 여유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여자가 꾸민다는 것은 아직 삶의 활기가 있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보다 좋은 인상을 주고 싶은 열의와 내면의 동기가 있다는 것이므로.


잦은 부부의 불화와 관계의 위기 앞에서 어떤 여자가 아름다운 인상과 분위기를 줄 수 있겠는가?

매달의 생활비를 걱정하면서 불안정한 가정의 경제 앞에서 어떤 여자가 편히 치장을 하겠는가?

몸이 아프고 심리적인 문제로 힘들어하는 여자가 자신을 어찌 생기 있게 가꾸어 나갈 의지가 있겠는가?

하루종일 어린아이들과 씨름하며 독박 육아를 감당하는 여자가 자신을 꾸밀 힘과 시간이 있겠는가?

삶의 이런저런 부침들과 어려움에 처해있는 사람에게 자신을 가꾼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육아의 삶 속에서 엄마들은 크고 작은 위기들을 겪고 그 단계를 잘 지내지 못하거나, 주변의 도움이 없다면 자신을 잘 돌아보지 못한다. (워낙 천성 자체가 자신의 겉모습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내는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만)


엄마들도 꾸미면 좋겠다. 꾸미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꼭 값비싼 물건들로 자신을 휘감지 않아도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면 좋겠다. 필요하면 돈도 나를 위해서만도 쓰자. 시간도 나를 위해서만 쓰자.

나 스스로에 대해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세상을 향해 나아갔으면 한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를 의식하는 시선이 아니라, 아름답고 생기있는 나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소극적이고, 감추고, 움츠리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나의 모습들을 가꾸어 갔으면 한다.


주변 사람들도 그 엄마에게 그 '여유'를 찾을 수 있게 함께 도와주자. 만들어주자. 그게 돈이든, 시간이든, 따뜻한 말 한마디이든.


그러면 혹시 아는가? 결혼식 액자에서 보았던 그 걸그룹 같은 소녀를 다시 만나게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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