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부동산
"이제는 남의 집에 살기가 싫어요. 나이도 있고, 애들도 크고.. 매번 화장실 변기, 주방 싱크대, 안방 문고리 같은 자잘한거 고칠 때마다 눈치 보이고 불편하고.. 집주인이 나보다도 어린데 자존심이 상해요. 여태 우리는
뭐 했나 몰라. 집 한 채도 못 사고. "
친하게 지내던 아는 엄마가 새롭게 살 전셋집을 찾느라 고생을 하면서 이야기하는 푸념이다. 2년마다 전세계약이 끝나고 갈 집을 찾아 헤맬 때면 이 생각이 절로 든다고 했다. 어느새 중년을 향해 가는 많은 나이, 결혼생활 한지도 10년이 훨씬 넘었고, 아이도 점점 커가는데 왜 우리는 집이 없는 걸까라는 생각이 전세계약이 끝날 때마다 들어서 그렇게 서글프다고 했다. 평소에는 남과 별로 비교하지 않고 내 형편에 자족하면서 열심히 잘 사는 편인데 이 시즌이 되면 내가 과연 잘 살아온 건가 라는 회의도 느껴진다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많은 부분이 공감이 갔다.
아이가 생기자, '집'은 단순히 '거주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아이가 지낼 만한 침실이나 거실, 아이방 등을 말하는 '물리적 공간' 뿐 아니라, 아이를 포함한 우리 가족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너무 확대해석하는 것이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겠지만, 실제로 어린아이를 데리고 구축과 신축 아파트 이곳저곳을 이사 다니면서 겪었던 경험들은 엄마인 나에게 그런 인상을 강하게 주었다. 어느 동네의 어느 집에 사느냐에 따라 처음 인사말과 대화의 내용이 달라졌고, 때로는 우리 아이가 그 대상이 아니더라도 특정 동네나 집에 따라 아이에 대한 선호 혹은 무시하는 말투들은 내 마음에 아리게 남아있다. 엄마가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고스란히 그 아이에게도 흘러가겠구나.. 내가 적응하고 이겨내지 못할 것 같다면 차라리 이사를 가야 하나 엄청 고민을 했었다.
물론 외적인 부분보다 성품과 인격을 중요시하고, 사람을 가장 귀히 여기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은 늘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들은 늘 즉각적이고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듯 보였고, 사람의 내면의 소중한 가치와 인품들은 알아가고 드러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의 말이나 생각이 의식 혹은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오고 언어와 행동을 보면, 내가 그 그룹에 끼지 않으면 내 아이가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걱정이 든 게 사실이다. 불안한 마음과 조바심에 내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이사를 가야겠다고 결심을 하기도 했다. 그 시절을 떠올려보면, 집은 집이고 나는 나인데.. 그런 외부 환경과 시선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나의 삶에 내 마음과 에너지를 좀 더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코로나 시절, 집을 가진 사람들은 한없이 매매가를 갱신하던 그 시절에도 그 화려한 축배(?)에 동참하지 못했을 때의 집 없는 자들의 아쉬움과 씁쓸함이란. 여전히 한국 사회의 서민들에게 있어서 몇 억의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분양에 당첨이 되어 유명 브랜드의 새 아파트에 입주하는 것이 최선으로 보였다. 그러나 어디 그게 쉬운가. 당첨되기도 어렵고, 당첨이 되어서도 몇억씩 돈을 척척 내기란 쉽지가 않으니 엄두를 못 내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열심히 성실하게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변변한 내 집 한 채'를 마련하지 못하는 '사연'이 수많은 집이 없는 사람들의 삶 속에 베여있다. 내가 좀 더 나은 동네혹은 집에 산다고 생각하며 상대방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판단해서도 안된다. 반대로, 내가 상대적으로 더 좋지 못한 동네나 집에 산다고 해도 그것이 나의 존재와 가치를 흔들지 않게 해야 한다.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사는 동네나 집이 내가 가진 소유와 계급을 상징하는 분위기와 풍조가 팽배할 때 '집'은 더 이상 우리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늘 비교하게 되고 내가 가지지 못한 남이 가진 것을 선망하며, 그 한계를 넘어가기 위해 애쓰는 대상이자 수단이 될 뿐.
한 해를 마칠 즈음, 같은 반 엄마가 감사하게도 자신의 새로 이사 간 집에 몇몇의 친한 엄마들을 초대해 주었다. 그동안 아껴두었던 그릇이며, 식기류며 다 꺼내서 맛있고 정성스러운 요리를 해서 대접을 한다. 어찌나 황송하던지.. 흡사 고급 레스토랑 못지않다며, 우리는 계속 감탄했고 감동했다.
" 우리 집에 초대할게요."라는 말은 마치 " 당신과 좀 더 친해지고 싶어요.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에요."라는 말처럼 들린다. 나의 시간과 공간을 당신을 위해 기꺼이 내어주며, 나의 삶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함께 하고 싶다는 사랑의 고백처럼 말이다. 아이든, 친구든, 가족이든. 공동체에서도 함께 서로의 집을 오픈하고 밥을 함께 먹는 것을 매우 강조한다. 집을 열어 서로를 환영하고 함께 밥을 먹어가며 쌓이는 정은 그 어느 것보다 강하고 친밀하다는 것을 알기에. 한국 사람들에게 '집'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나의 노력과 재산을 일군 결과물이기도 하며, 사랑하는 가족들과 나를 지켜줄 마지막 보루와 같은 공간이다. 그래서 내 가족이 살 '집'이 있다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목표이며, 안정감의 근원이 될 때가 많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는 그토록 '집'에 집착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에서 '집'의 의미가 서로를 구별 짓고 계급을 나누며 자신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수단이 되지 말고, 서로를 환대하고 위로하며 감싸주는 '집'의 의미가 더 확대되었으면 좋겠다. 그 사람이 돈이 많든 적든지, 많이 배웠든지 못하든지,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어느 동네, 어느 집에 살더라도 그 사람 자체로 수용하고 편견 없이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설령 지금의 현실이 그렇지 못할지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먼저 살고 집중하자. 가장 나다운 곳에 나답게 우리 각자의 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