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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나 Nov 30. 2022

앞니가 두 개입니까?

세상 평범한 남자를 만나기까지


주변에 괜찮은 사람 없어?
있으면 나 소개해주라



가깝게 지내던 사촌오빠에게 처음으로 소개팅을 부탁했다. 안 해줘도 괜찮다는 듯 농담 식으로 가볍게 던진 말이었다. 하지만 속 뜻은 분명히 오빠 주변에 나한테 소개해줄 만한 지인 한 명쯤은 있지 않냐고, 내놓아 보라고 조르다 시피한 부탁이었다. 친구들이 만들어준 소개팅 자리는 그녀들의 남자 친구보다 나은 사람이라곤 절대 나오질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20대 후반이었다.



며칠 뒤 사촌오빠에게 연락이 왔다.

“친한 형이 있긴 한데 네가 좋아할 스타일은 아닐 거 같거든? 근데 사람은 진짜 괜찮아. 한번 만나볼래?” 오빠도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아직 남자 외모를 따진다는 사실을. 그래서 한참 연애할 시기에 내 옆에 누군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사촌오빠는 내가 좋아할 스타일이 아닐 거 같다는 밑밥을 깔았다. 비주얼은 내 스타일이 아니라는 소리다. 대체 내 스타일이란 무엇인가.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저 175cm쯤 되는 키에 적당한 체격, 너무 멋 부리는 사람은 아니어도 본인에게 어울리는 코디는 할 줄 아는 사람. 유머 감각도 있으면 좋겠고 얼굴은 막 잘생기진 않아도 누가 봐도 호감형 정도면 되는 평범한 사람을 바랬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내 이상형은 천연기념물이었다.


그래도 남매처럼 자라온 오빠의 지인인데 나쁜 사람은 아니겠지 하는 믿음으로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제안이란다. 내가 먼저 구걸해서 받아낸 마당에.




그렇게 사촌오빠의 지인과 소개팅 자리가 성사되었고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 되었다. 밤공기 마저 싱그럽고 설레던 초여름 날 저녁이었다. 장소는 소개팅의 정석인 이탈리안 레스토랑. 서래마을에 있던 그곳은 입구부터 이국적인 느낌이 가득했고 넓지 않은 공간에 프라이빗한 곳이었다. 숱한 소개팅 경험치로 파스타 좀 말아본 입장에서 장소가 마음에 들었다. 이곳을 섭외한 그가 적지 않게 신경을 썼다는 것이 느껴졌다. 만나지도 않고 호감도가 생겼다. 이렇게나 쉬운 여자였다.

먼저 도착해 있는 그와 가볍게 인사를 했다.

3초 만에 스캔이 끝났다. 오빠 말대로 멀리 서봐도 가까이서 봐도 내가 좋아할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밥 한 끼 먹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 같았다. 누군가에겐 나의 이런 입장이 외모 지상주의로 가득 찬 여자 같겠지만 그렇게 보여도 어쩔 수 없다. 그때의 나는 비주얼로 먼저 스파크가 튀어야 호감이 샘솟는 평범한 20대 여자였기 때문이다.



마주 앉아 얼굴을 보며 대화를 시작하려는데 내가 본 그의 얼굴에서 어색한 부분이 보였다. 치아 앞니가 없는 것이다. 하나도 아니고 두 개가 없다.

시원하게 뚫려있다.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왜 시트콤이 펼쳐지는 것인지. 혹시 이거 몰래 카메라 아닌지. 내가 지금 웃음이 터져주면 되는것인가 고민이 됐다.

내 흔들리는 눈빛을 읽었을까, 궁금증을 해소해 주려는 배려심 있는 그가 말을 꺼냈다.


“아, 제가 며칠 전에 넘어져서요, 이가 이렇게 됐어요. 임플란트 해야 할거 같아서 치과 다니는 중이라 임시치아를 했었는데 며칠 전에 빼야한데서 잠깐 뺐네요. 허허”


‘넘어져 치아가 깨졌다고…?’


본능적으로 바로 물었다.

“어쩌다가 넘어지신 거예요?”

“술 먹고 집에 가다가요.”

“네… 큰일 날 뻔하셨네요.”


‘아, 깬다.’


그의 치아가 걱정되기는커녕 아니 내가 걱정해줄 사이는 아니지. 자주 과음하는 사람인가? 나이가 서른이 다 됐는데 술을 먹고 넘어진다고? 빙판이 난무하는 한겨울도 아닌 이 좋은 계절에? 눈곱만큼 생길 뻔한 호감도가 직 하강하여 바닥을 뚫고 내려갔다.

치아도 없이 그것도 중요한 앞니가 두 개나 없이 소개팅 나올 생각을 하다니 나를 뭘로 본 것인가 기분도 나빴다. 적지 않은 소개팅 경험이 있었지만 이런 남자는 처음이었다.



곧 우리 앞에 식사 메뉴가 놓였다. 파스타였다.

앞니 없는 사람이 파스타를 골랐다니. 그때부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표정 관리가 어려워 고개를 처박고 열심히 파스타를 집아 삼켰다.

앞니 두 개가 없는 사람이 파스타를 먹는다는 것은 가히 학대 수준에 준하는 것이었다. 앞니도 없어 불편할 텐데 수저에 돌돌 말아 한입에 쏙 넣어도 될 일을 평소 버릇인지 면치기를 한다.

이건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그와 두 번의 식사 자리를 가졌다. 소개해준 사촌 오빠를 봐서라도 단칼에 거절할 수 없었던 나는 착한 동생이었다.


두 번째 만남에 그의 앞니는 조금 채워져 있었다. 임시 치아를 다시 꼈다고 했다. 상황을 다 아는 내가 보기에 그의 앞니에서 ‘난 임시 치아예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호감도 없는 그와 두 번의 식사를 하고 솔직한 마음을 전한 후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

안타깝지만 그의 앞니 치료 과정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이다.


사촌오빠도 원망스러웠지만 앞니가 두 개나 없이 소개팅에 임한 그가 약속을 잘 지키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마 실제로 그럴 것이다. 오빠가 좋은 형이라고 몇 번을 강조했으니.


나였으면 그런 치아 상태로 새로운 이성을 소개받는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인데 참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그 소개팅이 나에게 충격이 컸는지 한동안 새로운 사람을 만나볼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한참 폭주하던 소개팅 러시도 자연스럽게 끊겼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아무 생각이 없던 찰나에 새로운 소개팅 제안을 받았다. 핑계지만 거절하기 힘든 분의 제안이었다.


상대방과 연락처를 주고받고 주말이 되어 얼굴을 보기로 했다. 약속 장소는 역시나 이탈리안 레스토랑. 강남역 일대 이탈리안 레스토랑 죽순이는 나였다. 지난번 앞니 없는 소개팅남이 떠올랐다. 언젠가 내가 그 서래마을 식당은 꼭 다시 가리 다짐을 하며 소개팅 장소로 향했다.


상대방에 대한 기대감은 없었다. ‘아니면 말지’ 하는 마음과는 다르게 나는 한껏 꾸미고 최대한 빼입고 나가는 중이었다. 상대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어색한 표정이지만 그가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한다. 내 시선은 다른 곳이 아닌 먼저 확인하고 싶은 곳이 있었다. 그의 입이었다. 앞니가 있다. 두 개 다 있다!!


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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