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발적 식집사로 살아갑니다만.

by 이다

엄마는 하늘의 꽃밭을 망친 죄를 지어 여자로 태어났다고 했다. 이 업보가 이어지는 건지, 나는 10년 넘게 화분에 물을 주고 있다. 간절히 원하지 않았지만 우연히 나에게 온 식물들에게 매주 주말이면 물을 주어야 하는 것이다. 한 번도 화분을 산 적이 없는 내게 왜 이렇게 많은 식물들이 모여드는 것일까. 이건 분명 업보다.






무언가를 사기 좋아하는 엄마의 취미는 실로 다양했지만, 그중 나를 괴롭히는 취미는 화분수집(?)이었다. 미니미니 작은 것부터 내 키를 훌쩍 뛰어넘어 버리는 거대한 나무사이즈까지, 그 사이에서 삐죽삐죽 솟아올라 손가락에 박힐 것만 같은 무서운 선인장까지. 식물의 범위는 여기서부터 여기라고 말하기도 힘들 만큼 다양했다. 다행히 집 한편에 온실 기능을 하던 테라스가 있어, 그 많은 화분들은 잠자코 한 곳에 모여있을 수 있었다.


20년도 더 된 우리 집의 거실 풍경은 이랬다. 겨울이면 추위를 피해 집안 구석구석을 점령해 버렸던 나무들, 그 아래 물받이로 받혀진 커다란 플라스틱 대야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키가 큰 나무들은 모두 대야에 박혀 꼿꼿하게 서있었는데, 언뜻 보면 커다란 그림자 같기도 한 그 모습은 언제나 나를 압도하곤 했다.


공식적인 식집사는 엄마였지만 나는 식집사의 작은 하인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수십 번씩 물통에 물을 나르며 식물들에게 물을 주어야 했는데 그 과정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식집사는 내가 떠온 물통을 받아 들고 고고하게 물을 준다. 이백여 개가 넘는 화분에 흘러들어간 물은 이내 흙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뿌리를 타고 내려가 어느새 움푹한 물받이를 흥건하게 만든다. 주말이면 이 과정이 몇십 번이고 반복되는 것이다.


겨울 내내 집으로 들여온 커다란 화분에선 쉴 새 없이 나뭇잎이 떨어졌다. 보일러의 후끈한 기운에 고동색으로 까맣게 말라버린 잎사귀가 각질이라도 된 양 마룻바닥에 흩어져 있으면 언제나 그것을 치워야 하는 몫은 식집사의 하녀다. 그러나 하녀는 식물들에게 관심이 없다. 물통을 수십 번씩 나르게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떨어지는 나뭇잎을 치우게 하는 그것들이 영 탐탁지 않은 것이다.


가끔은 소파에 앉아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평온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각종 사이즈의 대야에 몸을 푹 담그고 서있는 그것들은 아름답다기보다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었다. 이따금 고인 물에서는 하루살이 같은 벌레들이 날아다녔다. 자세히 보면 끈적한 이끼가 끼어있는 것 같기도 했다. 보기만 해도 속이 메슥거리던 대야를 보면 그것들을 좋아하는 마음이 영 생기지 않았다.


그중 식집사의 하인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입춘이 지나고 날이 푸근해졌을 즈음 대대적으로 화분을 집 밖으로 이동시켜야 하는 일이었다. 허리가 아픈 식집사를 대신해 화분 하나하나를 손수 집 앞으로 날라 본격적으로 여름 내 해를 맞게 할 작정이었다. 작은 다육이나 꽃화분은 그렇다 쳐도, 대형화분과 가시천지인 선인장은 흙의 무게만 해도 상당해서 옮기는 내내 시불시불한 마음이 들었다.


'어휴. 이런 걸 왜 키우는 거야 도대체...'


이런 말이 목구멍까지 뻗쳐 나왔지만, 하인은 그저 콧잔등의 땀을 장갑으로 슥슥 닦아내며 임무를 완수해야 했다. 그래야 여름 한 철이라도 노동이 필요 없는 시원한 샤워줄기로 물을 줄 수 있었다. 겨울이 돌아오면 영락없이 집으로 들여오는 대이동을 해야 했지만, 한 철이라도 일감이 줄어 좋았다. 힘들었던 기억은 여름 내 잊혔고 찬바람이 불 때쯤엔 묵묵히 화분 나르는 일을 반복했다. 화원이라도 하나 하시죠. 힘든 노동 뒤에는 언제나 이런 우스갯소리만 뒤따랐다.


이랬던 내가 본격적으로 의무감을 가지고 화분에 물을 주기 시작한 것은 결혼 이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