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 어린이 대공원 축구장에서 축구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름하여 서울 장수 축구대회. 의외의 사태에 대비하고자 준비된 한 귀퉁이의 앰뷸런스! 장수가 붙었으니 선수들은 모두 나이 지긋한 중장년이다. 머리카락이 제법 희끗희끗한 장년의 선수들이라고 한여름의 뙤약볕은 봐주지 않는다. 빨갛고 노란 원색의 유니폼에 태양은 불화살을 마구마구 쏘아대는데,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선수들이 안쓰러워 지나다가도 파이팅을 절로 외쳐 본다. 모두가 마음은 손흥민인데 몸은 그에 따라주질 않는, 몸과 마음이 따로인 형국 같다.
잠시 지켜보다 흥미가 일어 조금만 구경하다 가기로 하였다.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간식 냄새에 이끌려온 개미들이 한 입만 달라는 듯 다가와 얼쩡거린다. 저만치 가서 먹거라. 개미들의 영역에 침입한 우리가 내는 세금이라 치고는 빵조각을 조금 떼어 던져 주었다. 그래도 개미들은 우리를 향한 경계심을 풀지 않고 신발 속으로, 옷자락 위로 자꾸만자꾸만 기어오른다. 어쩌면, 거대한 침입자들을 탐색해 내고 자신을 방어하려는 개미들의 이런 움직임은 칭찬받아 마땅한 피조물의 본능일 것이다. 잠시만 관람하다 갈 거야. 염치없는 침입자가 되기 싫어 조심스레 그들을 떨궈내며 경기를 관람해야 했다.
대회는 제법 여러 팀들이 참가를 한 모양으로, 쉬는 타임엔 다음팀의 선수들이 나와 볼을 돌리며 몸을 푼다. 경기장의 울타리를 따라 뛰며 몸을 푸는 선수도 보였다. 힘을 아끼는 게 나을 성싶은데, 뙤약볕에서 뛰는 게 몸을 푸는 데 도움이 될까. 경기는 중단되지 않고 쉬는 시간이 지나면 곧바로 이어졌는데, 점심시간은 따로 없고 각 팀마다 빈 시간에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듯했다. 심판들도 모두가 까무잡잡한 피부였는데, 청일점 여자 부심에게 유독 존경의 눈길이 갔다. 거친 운동경기의 부심으로 뛸 정도면 축구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남달랐을까.체력을 기르는 일 못지않게 수많은 편견의 벽을 부수는 데도 엄청난 노력이 들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경기가 무르익을수록 관전하는 어르신들의 훈수 소리는 하늘을 뚫고도 남을 지경.
그렇지! 그래, 좋아. 그러면 되나, 아이 참나.
함성, 귀청이 떨어질 듯한 고함 소리!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 또한 외치고 부르고 신호하느라 시끌시끌...... 지방방송이 원래 이래 많은 건가? TV에서 보면 관람객들이 응원하는 함성소리만 세찬 울림처럼 느껴지던데. 그래도 축구 경기 관전은 처음이라 은근히 재미있다. 골키퍼는 골키퍼에 그치는 게 아니라 거의 감독 수준이다. 누구야 올라가! 누구야, 너는 그냥 여기 있어. 가지 마. 이쪽으로 내려가, 등등. 꿀성대를 지닌 듯 골키퍼의 음성이 우렁차다.
한낮의 대회는 끝날 기미가 안 보이고, 발끝에서 퉁퉁 튕겨나가는 골맛에 젊은(?) 선수들은 헤어나지를 못하는 것 같다. 헤딩으로 햇빛 차단용 두건이 벗어지는 선수, 듬성듬성한 반백의 머리 위에 뙤약볕은 가차 없이 내리쬐고, 대부분의 선수들은 기운이 달리는지 움직임이 후반으로 갈수록 굼떠진다. 골이 들어가는데, 들어가도 다 골인은 아니란다. 친절한 그가 업사이드를 설명해 주지만 잘 이해가 안 간다. 차라리 수학 공식이, 영어 단어가 외우기 쉽겠다. 체육 이론 시간에도 그렇게 헤맸는데, 그 바탕이 어디 가겠냐고..... 당신은 어찌 그리 모르는 게 없냐고 칭찬의 화살을 날려 보내는 걸로 은근슬쩍 넘어가버린다.
볼을 패스하면 걸핏하면 상대팀에게 가버리고 조금만 부딪쳐도 휘슬을 부는 심판. 큰 부상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리라. 슈팅은 골대를 맞기 일쑤이고, 골키퍼가 쉬이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속력이 나지 않는다. 점수는 나지 않아도, 실력이 우위에 있는 팀이 축구에 문외한인 내게도 조금씩 보인다. 볼 점유율이 높고 슈팅이 많고 패스가 능숙하다. 상대팀의 공 가로채기도 잘한다. 공격수들이 제일 힘들어 보인다. 점수가 나면 경기가 활기를 띠고 수비수는 수비수대로 공격수는 공격수대로 움직임에 관성이 붙는 것 같다.
그래도 대단한 체력이다. 한 바퀴 구르는 모양새에 감탄! 운동으로 다져진 몸 아니면 그렇게 구를 수는 없을 것이다.
파울을 당해 누운 선수가 일어나지 않아, 어떡해 많이 다쳤나 봐 하니, 창피하니까 마냥 누워 있고 보는 거야, 이러고 넘겨짚는 그. 등짝을 한 대 맞고도 히죽거린다. 그런 게 어딨어. 저기 들것이 들어오네.
다행히, 선수는 일어나고 들것에 실려가는 불상사까지는 일어나지 않고 경기가 재개된다. 참말 다행이다.
몇 게임이 남았는지 모르고, 더위도 절정에 이르렀기에 개미들에게 영역을 돌려주고 툴툴 털고 일어났다. 어느 팀이 이겼는지 부상은 무엇인지 알지는 못한다. 그저 지나가다 함성에 이끌려 잠시 관람한 게 다인 장수 축구대회지만, 그 열기와 선수들의 열정만은 기억하련다. 아마도 해가 기울기 전에 경기는 끝났을 게고, 대회가 끝나고 나서는 다 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노고를 기렸을 것이다. 아침마다 조기축구로 다져온 실력을 그렇게 한바탕 분출하고 속시원히 일상으로 복귀할 그들. 젊은이들 못지않은 패기와 축구 사랑의 열정이 그들의 삶에 생기이자 횃불이 되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라버님들, 파이팅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