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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탈리 Jul 17. 2024

구름의 정수리를 보다니!



"승객 여러분 이제부터 이륙하겠습니다."

안내멘트와 함께 동체가 기울며 상승을 시작한다. 순식간에 구름 사이로 장난감처럼 작아지는 건물들, 구불구불 주름진 초록빛 산맥을 보니 비로소 공중에 떠 있는 것이 실감이 난다. 저기가 어느 동네일까, 저 건물은 무얼까? 산 허리와 정상을 기어가는 저 등산로 좀 보게. 산들이 초록 빌로오드를 두른 것 같아. 산의 품에 안겨 있는 들과 집, 그리고 콧노래 흥얼거리며 흘러가는 강 - 우리 삶의 터전들. 혹시 우리 집이 보이려나? 찾아볼까? 그러나 찾다가 이내 포기한다. 고도가 높아 더 이상 지상은 보이지 않고, 푸르름에 안긴 구름만 가득하다. 창가 자리의 이점을 톡톡히 누리며 어미는 구름에 반하고 푸른 창공에 반해 수시로 셔터를 눌러가며 구름 사진을 찍고 또 찍는다.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다. 서울의 동쪽 한 곳에서만 뱅글뱅글 돌던 내가, 아득한 서쪽으로 떠올라 구름의 정수리를 보다니! 이~ 삼만 피트의 고도에서 내려다보는 구름이라니!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하고, 단장하고, 마지막 점검을 하고, 두 시간을 달려, 공항에 도착하였다. 출발 세 시간 전까지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기에 뭐 그리 서두르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 짐을 부치고, 출국심사를 마치고 면세점 아이쇼핑까지 완수하고 간단한 요기까지 하는 데 세 시간은 그리 넉넉지가 않았다. 아이가 먹고 싶다는 맘모스를 사서 기내용 캐리어에 얌전히 모시고는 탑승 순간까지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달래야 했다. 아득한 기억 속, 신혼여행 말고는 처음 타 보는 비행기에 첫 해외여행이라, 솔직히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컸다. 중력을 거슬러 공중에 떠 있는 시간이 두려워,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꾼다는 지인처럼 내 두려움의 크기도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십 분 정도 지연 후, 드디어 탑승을 하는데, 정원이 몇 명인지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어온다. 탑승이 끝나고 한참 후에야 느릿느릿 움직이는 항공기! 이륙까지의 시간은 왜 이리 굼뜨고, 활주로는 왜 그리 길게만 느껴지던지.



국내 여행도 탐탁지 않아 하던 내가 해외여행을 가다니. 그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일본으로. 일본에서 워홀 중인 아이의 강권과 회유, 압박이 아니었으면 좀체 갈 맘을 먹지 못했을 것인데.....

"다른 친구들은 부모님이 다들 한 번씩 다녀가셨다는데, 엄마 꼭 한 번 와, 제발!"

비교 싫어하는 아이가 다른 친구 부모님을 들어 비교를 한다. 제 언니랑 같이 무한 조르기 작전이 계속되어,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가 되지 못하고 그만 지고 말았다.

"그래, 가자꾸나, 까짓 거."

여행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항공기 예약, 캐리어 구입, 엔화 환전, 여행자 보험 가입 등등, 큰 아이가 앞장서니 어려운 거 하나 없이 2박 3일의 여정에 오를 수 있었다. 어미의 공항패션까지 살뜰하게 챙기던 큰아이! 안 간다고 앙탈 부리는 엄마를 설득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구름은 올려다볼 때도 멋지지만 내려다보아도 황홀하기만 하다. 낮은 고도의 구름층, 항공기 고도와 비슷한 높이의 구름층, 좀 더 높은 구름층을 겹겹 두른 채 창공은 표연히 나그네들을 잔뜩 태운 항공기를 응시한다. 폭신폭신한 저 구름밭에서 뛰놀고 싶다. 저 구름밭 어디쯤 그리운 엄마가 계실 것만 같다. 울 엄마도 여행 참  좋아하셨는데......

어느  순간, 먹장구름이 푸른 창공을 덮어버린다. 일본영공에 가까워졌나, 간사이 공항에 비가 내린다는데. 먹구름 사이로 육지가 보인다. 일본의 어느 항구인가 본데 되게 넓다. 촘촘히 박혀 있는 나지막한 건물 저 너머로 병풍 같은 산맥이 보인다. 고베항인가.



이륙 후 한 시간 반을 날아 간사이 공항에 내리고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낯설고 낯선 이국 땅, 말도 안 통하는 이국 땅에 발을 디뎠으니 두려움이 세차게 밀려든다. 국제 미아가 되면 큰일이니 입을 꼭 다물고 아이의 뒤만 쫓는다. 그래도 아이는 해외물을 먹은 경험이 몇 차례 있으니 우물 안 개구리인 어미보다 낫겠지. 여권과 승차권 QR을 몇 번이나 찍고 양쪽 검지 지문은 또 몇 차례 찍었던지. 신분이 확실하지 않은 자는 절대로 입국시키지 않겠다는 철통 같은 의지가 엿보인다. 지문 인식이 잘 안 되어 한참이나 걸려 통과하고 아이한테 갔더니 아이는 입국 못하는 줄 알았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트레인을 얼마쯤 타고 도착한 공항청사에서 짐을 찾고 작은애가 기다리는 전철역으로 나오기까지 신분확인 절차를 또다시 밟았던 것도 같은데 가물가물.......


이국땅에서 아이를 만나니 반갑기가 이를 데 없다. 아이는 출구를 나오는 우리를 촬영하려 맘먹고 있었다는데 우리가 예고 없이 나와버려 김이 빠졌다 투덜거린다. 대충 다시 나오는 시늉으로 이국 땅에서 향수에 찌든 아이의 맘을 달래준다. 전철역은 매우 혼잡하고 무다. 일본의 전철을 타고 매의 눈으로 살펴보니 우리나라의 지하철보다 폭은 좀 좁은 듯싶은데 지상으로 가는 구간이 많아, 시야가 탁 트여 좋았다. 새 단장을 한 듯 기와지붕의 이삼 층 양옥집들이 아담하면서 정갈하고 예쁘다. 가끔씩 보이는 아파트도 대단지가 아니고 한두 동 정도인 데다 그다지 높지 않아 스카이라인이 거침이 없다. 아스라한 산 능선까지 죄다 보인다. 깔끔한 주택들을 구경하며 난바까지 가서는 환승을 하는데 환승역까지가 멀기도 멀어, 서울의 한 도시를 가로지르는 것만 같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일본어 센 발음과 간판들. 일본 사람들은 조용조용 말하고 전철 안에서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데, 잘못 알려진 정보였나. 오사카 발음이 사투리도 많고 억양도 세어 마치 우리나라로 치면 부산 같다는 아이의 설명. 딸들은 어미를 어린애처럼 사이에 두고 엄호하고, 히라가나와 가다가나만 급히 외워온 어미는 간판 하나라도 더 읽으려 고개를 두릿거려본다. 환승역인 난바에서 아이가 사는 기타하마까지는 세 정거장. 내렸더니 여기는  요지경이다. 하늘을 찌를 듯한 빌딩들. 규모와 높이에 압도된다. 쳐다보다 고개가 빠질 것 같다. 한강보다는 폭이 좁은 토사호리 강변, 미술관을 비롯한  멋스러운 서양식 건축물도 눈에 띈다. 견실하고 깔끔한 외장이 눈길을 잡고, 새시가 없는 베란다가 많은 점이 놀랍다. 비가 오면 들이칠 텐데, 화룡점정을 빼먹은 듯한 모습. 참 요상하네.......


아이의 집도 마찬가지로 베란다 유리가 없다. 층고가 제법 높은 건물 8층으로, 열쇠를 넣어 돌려야 열리는 현관문을 지나, 세 사람 타면 꽉 차는 좁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삼면 벽에 부착된 인조 카펫에서는 쿰쿰한 곰팡내가 마구 풍겨나온다. 방독면이 필요할 정도련만 건물 주인을 그것을 그대로 둔다고 했다. 입주자의 건강보다 엘리베이터의 상태가 더 중요한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문제는 이런 곰팡내로 가득한 엘리베이터를 다른 건물에서도 또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 극도의 집착 같아보이는 그런 행태가 결국 정갈한 주택의 외관과 깔끔한 마을을 유지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를 했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역시 열쇠로 여는 출입문을 열고 아이의 방으로 입성. 쥔양반은 제일 먼저 바닥에 자국이 안 남도록 캐리어 바퀴에 양말부터 신기랍신다. 캐리어 놓을 자리에 돗자리도 미리 깔아놓았다. 임무를 완수하자마자 캐리어를 돗자리 위로 상전처럼 모시고 가, 아이가 먹고 싶다던 김치전과 김치를 비롯한 신선식품을 정리했다. 일 년 선불로 임대했다는 냉장고도 세탁기도 거의 장난감 수준으로 작고 앙증맞다. 집을 비워줄 때는 들어올 때와 똑같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냉장고 밑에도 세탁기 밑에도 자국이 안 남게 받침대가 깔려 있다. 바닥에 자국 남을까 어미와 언니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조마조마하는 아이! 이건 뭐, 벽에 기대기도 조심스럽다.


정말 해도해도 너무하는 것 아닌가? 사람이 일 년 동안 사는 데 어찌 처음과 똑같은 상태가 되겠냐고. 특이한 나라 특이한 민족..... 그래도 로마에서는 로마 법을 따라야지, 별 수 있을까. 싱크대도 화장실도 아담사이즈. 소꿉장난하는 것 같은 미니미니한 공간이지만 혼자 살기에는  딱 좋다는 아이. 얼마 안 남았다. 삼 개월. 여기가 좋으면 더 연장하지 그러니? 지나는 말로 권했더니 극구 도리질을 한다. 자동이체 등록하는 데만도 한 달이 걸리는 이곳에서는 속터져 못산다고. 지금까지 잘 견뎌왔으면서 무슨......


저녁을 먹으러 갔다. 집 근처 공원을 가로질러 도착한 사루 식당. 맛집인가, 길게 늘어선 사람들. 왁자하니 떠들썩한 소리가 여기저기 가득하다. 불금이라 술손님들이 많은가. 우산 속에서 거세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한참을 기다린 후에사 자리안내를 받았다. 메뉴판을 읽으려 인상을 쓰며(우려와 달리 메뉴판에는 그림과 영어발음이 병기되어 있다) 주문을 한다. 스미마셍과 아리가또 고자이마스!가 생활화된 직원들. 나는 벙어리마냥 입을 다물고 아이가 주문하는 양을 바라보며 이질감과 신기함 사이에서 어쩔줄 몰라한다. 비프스테이크 덮밥을 먹는데 간이 짜다. 일본 음식이 단짠단짠이라는데 역시. 그래도 군소리 말고 먹어야지. 아이가 괜찮다고 데려온 곳이니. 그래도 크림크로켓은 너무 느끼하다. 민생고를 해결하고 아이의 집으로 돌아와 씻자마자 기절, 혼절, 꿈나라로 직행하고 만 첫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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