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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무빙 Jan 01. 2024

이런 옆집 여자

잘 사는군요!

마이 술푸랜드, 오늘 일찍 오시나요?


그녀의 술푸랜드는 내 남편이다. 그녀는 술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술을 많이 먹거나 자주 취하는 건 아니다. 다만 맛있는 음식과 술 한잔 곁들이는 것을 즐긴다.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그러니까 말이다. 내 남편은 그녀가 술 한잔 하기에 마음 편한 사람인 거다.

어느 날은 맥주잔을 기울이고, 또 어느 날은 소주잔을 기울인다. 하이볼도.


그녀는 나보다 9살 어리다. 2002 월드컵 때 거리응원을 하던 시절 난 대학생이었는데 그녀는 초등학생이었다고 한다.  세대 차이가 확 느껴지는 순간은 이렇게 나이를 확인하게 되는 순간뿐이다. 그녀의 감성은 모두 90년대 맞춤형이다. 집에서 음식을 먹을 때 조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내 기준에는 좀 어둡다. 거기에 더해지는 감성 음악들은 90년대 인기 있었던 노래들. 예를 들어 에매랄드캐슬의 발걸음이라던가. 쿨의 슬퍼지려 하기 전에 같은 곡들이다. 좋다. 좋아.


나이 어린데 나보다 어른이다. 놀이터에 나오는데 커다락 냄비에 어묵꼬치를 해온다. 넓은 쟁반에 샌드위치를 몇십 개 만들어온다. 그녀의 사랑. 놀이터에서 오고 가는 애들도 먹고 어른들도 하나씩 먹으라고 그렇게 한다. 나는 그저 수혜자다.


그녀의 아들은 내 아들과 친구다. 그러다 보니 자주 만나고, 같이 얘기 나누고, 맛있는 음식도 나눠먹는다.

온 가족이 함께 어울린다.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네~재하 어머니. 고추장찌개 끓이려는데 어떻게.. 좀 드려요?

아하하. 네. 고마워요. 많이 끓이세요.


많이 끓이래.. 생각하니 웃기지만 그렇다. 그렇게 편안한 사이가 되었다.

뽀얀 스테인리스 냄비에 감자, 애호박, 버섯, 그리고 돼지고기가 들어간 고추장찌개가 도착했다.

빨강 빛깔이 고운 찌게라니, 금방이라도 한 솥 비워낼 수 있을 것 같은 냄새가 내 코를 찌른다.

큰 아이도 맛있다며 제법 잘 먹어 더 기분 좋은 저녁 식탁이 되었다.


정 많은 사람. 사실 지난 11월에는 큰 일도 있었다. 나의 큰 아들이 신호등 초록불이 깜빡이고 있을 때 그러니까 보행자 신호가 몇 초 남지 않았을 때 뛰었다. 뛰며 건너다가 우회전해서 들어오는 캐스퍼에 딱 부딪혔다.


'툭'소리와 함께 아이는 부딪히며 쓰고 있던 후드티 모자가 뒤로 넘어가며 넘어졌다.

엄마는 수업 중이라 통화 불가하고, 아빠는 안동 출장으로 지금 당장 사고 현장에 갈 수도 없었다.

술프랜드이지 않은가? 남편의 전화기에 저장되어 있는 그녀의 번호. 전화를 걸어 혹시 사고현장에 가봐 줄 수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그녀는 뛰어나갔다. 아이를 살펴보고 119 대원과 경찰과 이야기 나누고 내 남편과 통화도 하여 아이를 봐주었다.


 수업이 끝나고 핸드폰을 열어보니 메시지가 많이 와있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했지.

우리 큰애는 그녀의 집에 가서 휴식을 취하며 동생과 놀고 있었다.

목격자 연락처도 받아놓고, 아이랑 병원에 갈 내 생각을 하여 둘째 아이 태권도장에서의 픽업을 다른 엄마에게 미리 부탁해 두었다. 눈물 질질 난다.


마음에 꽃이 핀다.

환한 꽃이 핀다.


말로 다하지 못한 고마움이, 감사가 샘솟았다.


그녀는 정보력도 탁월하다. 지역에서 무료로 하는 공연과 교육 소식이 있으면 꼭 전한다. 자기는 신청을 안 해도 관심 있는 사람은 하라며.. 그렇게 해서 뮤지컬, 체육, 방학캠프, 한자교실 등 다채로운 활동과 경험을 할 수 있었고 또 예정되어 있다.






그녀랑 아이들과 서점에 갔다가 집에 가는 길 내 남편에서 전화가 왔다. 퇴근했다고.. 전화 밖 시끌벅적한 소리에 내 남편의 한 마디.

오늘 연회 있나요?

연회라니.. 웃기는 남자. 그 말을 전하자 그녀는 전화를 받더니

마이 술푸랜~오늘 일찍 오시나요?


그렇게 그녀의 집으로 갔다.

찜닭, 감자전, 호박전, 두부조림, 미역줄기 볶음, 계란말이 그리고 윤기 나는 밥까지.

무슨 일인가? 금세 호화로운 밥상이 차려진다.



그날 세 가정 11명이 맛있는 저녁 식사를 했다. 식탁 위 대화가 즐겁고 음식이 정말 맛있었다.

우리 남편이 준비해 간 소주를 나눠마시며 그들도 행복하고 보는 나도 평안하다.


집밥에는 사람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 들어간다.

그녀의 야무진 손놀림 덕분에 후끈한 마음 덕분에 배가 부르고 마음도 부르다.


본받고 싶은 점이 많은 이웃집 여자!

그녀는 잘 산다. 정말 나누며 잘 사는 그녀.

우리 집에 놀러 와요. 밥 해줄게요.

술 푸랜드랑 한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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