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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무빙 Apr 22. 2023

토끼 시대 2.

고마워. 잘 살아.

연미씨 가정은 3 식구 더하기 반려견 1이다. 토끼 십동이가 와서 식구가 한 명 늘었다.

잠시 보호하는 것일 뿐 십동이와 함께 살 생각은 아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지금 그녀의 집은 생기가 넘친다. 그녀의 손은 더 바빠졌다.

작은 방에서는 조용하다가도 갑자기 푸드덕 소리가 들린다.

최근 방문객도 늘었다. 어린이 손님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 그런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십동이가 연미씨 집에 온 지 5일째 되었던 그날 밤, 귀가해서 집 안 정리하는 그 30여분 사이에 모든 일이 일어났다.


"여보! 여보! 이리 와봐 " 남편의 다급한 목소리.

"왜?"

"여보! 빨리 와봐."

"왜 이리 호들갑이야?"


두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졌다. 소리도 안나온다. 말문이 턱 막혔다.

십동이 집에 작고 까만 무언가가 보인다. 두 눈을 의심하며 가까이 더 가까이서 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축하드립니다. 십동님! 자녀 5마리를 건강하게 나으셨습니다.


십동이의 자녀들. 새끼들이 태어났다.


그렇다. 며칠 동안 보였던 십동이의 이상한 행동들. 땅을 파는 것처럼 앞발을 구르고, 아플 것 같은데 몸에 있는 털을 입으로 뽑아내고 입 안 가득 담아 주변에 뿌려댔던 그 모습. 그랬구나. 출산 준비를 했구나.


바깥세상에서 토끼는 힘이 없는 존재다. 모든 생명체가 자기 자식을 보호하려고 노력한다. 토끼는 땅굴을 파서 출산을 한다고 한다. 새끼를 낳고는 지키기 위해, 잡아 먹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흙과 풀로 잘도 덮어두어 마치 원래 그 모습이었던 것처럼 티도 안 난다고 한다.


홀로 조용히 새끼를 낳고 양막까지 다 처리한 후에야 그녀의 가족이 보게 된 것. 양막은 엄마 토끼가 이미 먹었다. 준비하고 출산하고 뒤처리까지 홀로 깔끔하게 마친 토끼가 대단하다. 사람보다 훌륭하네. 엄마 토끼는 세상 누구 보다 강했다.

엄마 토끼의 젖을 먹고 크는 아가들. 하루종일 돌아가면서 먹으며 자란다.


십동이도 태어난 지 3,4개월 정도 된 아기 토끼 같다고 했다. 그래서 출산 후 몸이 많이 약해졌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혹여나 다섯 토끼에게 분유를 먹일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자녀가 8살이 된 연미씨이제 분유 먹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토끼 분유 먹이기가 웬 말인가.

고맙게도 하루가 다르게 쑥쑥 랐다.


털이 조금 자람

도움을 주시는 토끼박사님이 아기 토끼들은 입양이 잘 된다면서 도와주시겠다고 했다.


오동통 살이 오르고 보송보송 털이 자란다. 바로 옆 동에 살아서 자주 가서 만났다.

토끼가 이렇게 예뻤나? 우리 집 둘째가 토끼를 안아보았다. 토끼에게 말도 시키고 살짝 안게해주니 떨어뜨릴까 봐 조심했다. 얼른 내려주었다. 아이 사람 그리고 아이 토끼 둘 다 그 모습이 귀하다.


토끼에 대한 상식을 하나 전하자면 토끼는 발이 바닥에 닿아 있어야 안정감을 느낀다. 토끼를 안아주기도 하지만 충분히 교감하고 친해진 후에 안는 것이 좋고, 안는 것보다 바닥에 있도록 하는 것이 더 그들을 위하는 것이라는 점. 새롭게 알았다. 연미 씨를 알아보는지 그녀가 이리 오라며 자신의 다리를 툭툭 치니 투다닥 움직여 그녀의 다리에 앞 발을 얹어 놓는다. 진짜 신기하다.


도리 & 썬더
레이


미니 & 빅

그들은 어느새 가족 같다. 작명에 능한 그녀의 가족은 십동이에 이어 새끼들에게도 이름을 지어주었다.


도리 - 목에 하얀 띠로 무늬가 있어서 꼭 목도리를 한 것 같아 도리다.

썬더 - 이마에 살짝 붉은 번개 모양이 있어서 썬더다. 지금은 하얀색으로 보인다.

레이 - 유일하게 털 색이 회색이다. 그레이의 레이다.

빅 & 미니 - 둘은 너무 똑같이 생겼는데 몸집이 한 친구는 크고 다른 친구는 작아서 빅과 미니다.  

  

이름을 부르니 더 정이 간다. 우리 집 큰 아이는 도리가 가장 예쁘고, 둘째는 레이가 예쁘단다. 보송보송 토끼를 쓰다듬어 주었다. 쓰다듬으며 예쁨을 준건지 행복을 선물 받은 건지 모르겠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잔잔히 농장의 짙은 내음이 올라와 코 끝을 찡긋하면서도 입가에는 미소가 머문다.


한참을 먹더니 십동이는 이제 쉬고 싶은지 옆으로 누웠다. 아가 토끼들은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닌다. 엄마 얼굴을 막 밝고 지나가네. 올라가 앉아 있네.

"엄마 좀 편히 쉬게 두면 안되니?"

"토끼들은 원래 그렇대요."

"나 너무 감정 이입했나 봐요. 하하"

쉼이 너무 필요했던 어느 날 낮잠 좀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두 아들은 내내 거실에서 잘 놀다가도 안방으로 들어와 나를 귀찮게 했다. 배 위에 눕거나 내 머리를 들어 올리며 일어나라고 했다. 그때 정말 쉬고 싶었는데.



토끼들이 어떻게 연미씨네 집에 오게 되었나.

그 인연이 참으로 특별하다. 연미 씨 가족이 아니었다면 십동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뱃속에 아가들은 세상 빛을 보았을까. 맘씨 좋은 사람 덕에 토끼 가족의 삶이 달라졌다. 십동이 가족 덕분에 생명을 얻기 위한 어미의 본능을 보고 배우고, 기쁨을 느꼈다.

두 달여 기간을 함께 살다가 토끼 가족은 모두 떠났다.(입양되어 부산으로 창원으로..곳곳으로 갔다.)


연미씨는 매일 얘네들 보는 게 낙이었다는데 아쉬워서 어쩌나. 나도 아쉬운데... 많이 보고 싶을 거다.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 그리고 고마워.


이제 어디 가서 토끼를 만나면 십동이 가족이 생각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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