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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an 18. 2024

너무 많이 사랑한 죄

이렇게 변명하자

최근 그릿(GRIT/앤절라 더크워스)이라는 책에 꽂혀 집중공략 중인 가운데,

잠깐 그 책을 내려놓곤.

문득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오늘의 짙은 회색빛 하늘색과 같이 진지한 마음으로 꽤나 깊은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빨리 가자, 빨리 먹자, 빨리 읽고 써보자, 그놈의 빨리빨리 덕분에 지금도 내 아이는 10분이면 한 끼 식사 시간이 충분할 정도. 그래서 결국 글씨는 세상 급한 글씨체를 갖게 되었고, 글도 대강 보는 습관이 조금씩 몸에 배어져 버렸으며, 10가지를 하려다 1가지도 제대로 깊이 있게 배워보지 못한 채 그렇게 저학년 시절을 보내버리고 말.았.다.


이제야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건지, 아이의 성급한 성격과 잦은 실수들, 모든 빨리 끝내버림의 원인진단이 냉정한 성찰 안에 나온 것이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아이가 처음 접해본 분야의 시작을 천천히 느린 속도로 경험해 봤다면 어땠을까.

글씨도 글 읽기도 수학문제 하나도 아주 천천히 느리게 하지만 또박또박 한자씩 보고 쓰고 이해하고 곱씹어보는 그 시간을 가져보았다면 지금 고학년이 된 이 시점엔 그 무엇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고 예쁜 글씨도 덤으로 가지며 시간도 점차 빨라지는 가속도가 붙었을 텐데.

가장 중요한 기다림을 난 못해준 것이다. 현명하지 못하게 음미하고 소화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 아이에게 주지 못했던 것이다.






아들이 7살 땐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아들에 대한 내 욕심이 차고 차서 넘쳐흘렀다. 어리고 시간이 많을 때 다양한 경험과 체험을 해줘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관념과 함께.


친구 따라 좋다는 사고력수학부터, 과학실험실, 영어도서관, 국어, 체험미술학원에  피아노레슨, 축구와 수영, 배드민턴, 야구, 태권도까지 정말 그야말로 사교육의 대마왕이란 별명이 아깝지 않을 정도.

사실 아이의 그 나이에 배우고 받아들일 수 있는 건 한계가 분명히 있는데도 말이다. 한마디로 가성비 떨어지는 시기였음을 이젠 겪어보니 말할 수 있다.


거기다 더해 주말마다 계절 상관없이 연간회원으로 에버랜드 행차를 했으니 참 아이나 부모나 에너지 뿜뿜에 얼마나 활동적이고 세상 가장 바빴는지 그 유명한 MBTI의 외향형 E의 대표주자다운 우리 가족이었음을 감히 자부한다.




본능적으로 아이가 초등 3학년이 되면서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은데란 느낌이 어느 순간 확 밀려왔다.

그리고 난 아이의 정신없이 굴러가던 일상의 빠듯한 스케줄을 모두 하나씩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열 살되고 보니 아이도 이젠 마냥 엄마손에 이끌려 다니기만 하던 학원과 자신의 스케줄에 의사를 적극적으로 어필하며 친구들과 노는 시간의 확보와 자신이 해보니 재미없고 관심이 없는 과목에 대해 목소리를 내며 사교육 정리과정에 큰 보탬이 되었다.

결국 아이가 원하는 운동과 영어도서관, 과학실험실만 남겨두게 되었고 이젠 아이의 스케줄이  널널해졌다.


그때서야 비로소 집에서 시작이 가능해진 건 바로 "강제독서".

아이는 집이 아닌 밖의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고 책을 그렇게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었기에 처음엔 강제가 붙었다.

그래도 조건은 아이가 고르고 내가 읽어주는 것으로 그나마 우리 사이의 좋은 합의가 이뤄진 것은 그중 긍정적 성과라고 본다.


그렇게 문득 한 템포 쉴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찾은 아이의 일상스케줄엔 스스로 짜보는 시간표와 자기가 서점에서 골라본 한자문제집, 사회과학 자습서가 자연스럽게 책상에 꽂히게 되었다.

늦은 건 없다고 지금이라도 천천히 또박또박 써보자라며 어르고 달래고 보상까지 지급하니 날아가던 글씨체도 조금씩 나아졌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야구와 바둑, 미술수업으로 만족스러운 취미생활 중이시다. 물론 영어, 수학학원도 다닌다.

그리고 이젠 인생책을 찾았다며 해리포터 시리즈를 집 소파에서, 달리는 차 안에서 무한반복 읽고 있는 아이.

그리고 여전히 반성중인 엄마여기 있다.


이젠 알겠다.

다줄 수 있다고, 다 주고 싶다고 쏟아부으면 넘쳐흘러 정착 안에 남는 알맹인 별로 없음을.

정보가 넘쳐나 많이 알지만 정말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것만 딱 내어주는 지혜와 현명함이 육아에선 반드시 필요함을 절감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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