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글을 쓴다.
한 달간의 트레이닝을 무사히 마치고
회사에 제대로 출근을 시작한 지 무려 세 달이나 지났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 중심에는 회사생활에 적응하는 것과
퇴근 후 삶을 알차게 보내는 것에
최대한 집중을 하는 시간이었다.
인턴쉽을 해봤기 때문에
회사 생활 적응은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인턴과 정직원의 갭차이는 대단했다.
인턴 때는 오전 9시쯤 출근해 오후 5시 반 정도에 퇴근하는
여느 직장인의 업무시간과 다를 게 없었는데
정직원이 된 이후로 출근은 오전 7시 반까지,
퇴근은 오후 6시가 넘어서하게 되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오후 7시 정도이고,
그다음 날 출근을 위해 적어도 오전 6시에 일어나야 하면
일찍 잠들어야 하니까 퇴근 후 주어지는 개인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하게 느껴졌고,
일 = 삶 이 돼버린 것만 같아서 사실 조금 슬펐다.
뿐만 아니라 인턴 때는 내 프로젝트 하나만 맡아서 잘하는 게 전부였는데,
정직원이 되니까 실수를 조금이라도 하면 큰일 나는
정말 리스크가 높은 일들도 맡게 되고,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한 번에 하는 상황이라
업무 내용이 훨씬 더 부담스럽다.
그래서 인턴 시절이 많이 그립다 ㅎㅎ
하루에 7-8시간 정도 자면 충분하게 수면을 취한다고 생각했는데
피로해소가 전혀 안 돼서 몇 달 동안은 오늘 하루만 버티자 하는 힘든 마음으로 지내왔다.
아무래도 살면서 11시간 연속으로 한자리에 앉아서
점심시간도 없이 일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것에 적응하는 것이 피로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하지 않았나 싶다.
대학을 다닐 때는 그날 있는 수업 정도만 시간 맞춰서 다니면
중간중간 이동하면서 산책도 할 수 있고
수업 외의 시간을 자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는데
회사에서는 정적으로 한 곳에 앉아서
자율성이 거의 없고, 항상 높은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다 보니
에너지의 고갈이 더 빠르게 왔다.
처음 한 달 동안은 정말 정신없이 이런 생활의 변화에
그 어떤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살았던 것 같다.
그쯤 깨달았던 것은 내가 체력이 너무 약해졌다는 점과
운동을 하지 않은지 너무 오래되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당장 헬스장에 등록을 했다.
Equinox라는 곳에 등록을 했는데, 여기는 월 회비가 50만 원 정도이다.
회비가 좀 비싼 편에 속하는데, 비싼 회비가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멋진 클래스들이 많고, 시설도 쾌적하고, 모든 기구와 머신들이
최고의 퀄리티로 갖춰져 있다.
그리고 비싼 회비의 장점은 투자를 많이 했기 때문에
운동을 정말 가기 싫은 날에도 동기부여가 되어준다.
한 달 정도 운동을 꾸준히 하다 보니 회사생활이 훨씬 수월해졌다.
생활패턴에 조금 더 적응을 한 것도 있겠지만
역시 체력이 좋은 것은 지구력과 정신력에도 도움이 된다.
나는 회사의 한 트레이딩 팀을 서포트하는 퀀트 리서치(Quant Research, QR)이다.
11명 정도 되는 트레이더들을 위해서
그들의 실적, 경쟁자들의 실적, 역사적 퍼포먼스를 종합한
여러 가지 리포트와 분석 자료를 만들고,
그들이 수년간 일일이 수작업으로 했던 일들을
자동화시키는 일들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
처음에는 내가 일하는 트레이딩 팀에 대해서
전혀 아무런 지식이 없었는데
일하면서 주변에 사람들의 대화를 듣고,
프로젝트를 통해서 배경지식을 점점 쌓아나가다 보니까
일에 대한 이해도가 생각보다 빨리 높아졌다.
그래서 일을 확실히 더 수월하게 하게 되었고,
주변에서도 내가 막내고 금융 전공을 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아서
내가 하는 정말 많은 질문에 인내심을 가지고
대답해 주시고 가르쳐주셔서
짧은 시간에 많이 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도 모르고
시키는 일을 실수 없이 하는 것에 집중했는데
이제는 내 아이디어도 조금씩 제시해 본다 ㅎㅎ
초반에 받았던 많은 지적들은 대부분 내가 너무 모르고
감이라는 게 하나도 없어서 받은 지적들인데,
비슷한 일을 다시 맡게 되었을 때 이제는 알았으니
똑같은 지적을 반복해서 받지 않도록 일을 더 꼼꼼히 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리포트에 들어가는 표를 코드로 하나 만들었을 때
표에 나와있는 숫자들이 어떤 의미이고,
왜 그 숫자들이 말이 되는지 혹은 안되는지
전혀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안되어서 상사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아서 고치느라 급급했다.
그런데 요즘은 표를 만들고 나서 직접 수치들이 말이 되는지
정확해 보이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직관과 판단 능력이 조금 생긴 듯하다.
매일매일 발전하는 것은 잘 보이지 않지만
3개월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보면
정말 많이 성장했다. 많이 뿌듯하다.
일머리가 조금씩 좋아지고, 생활에 적응도 해가고 있고,
체력도 좋아지고 있지만 월스트리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훨씬 힘들다.
힘들다는 것은 업무시간이 긴 것도 있지만
우리 회사는 참여하고 있는 모든 분야에서 탑 3에 드는 회사라 그런지
일의 퀄리티, 속도 그리고 정확도에 대한 기대치가 많이 높다.
그 기대치에 맞게끔 내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니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은 기본이고,
기복 없이 하루하루 업무를 해내야 하는데,
이건 정말 보통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생각보다 엄격한 자기 관리가 되지 않으면
컨디션 관리가 되지 않고,
매일 같이 일정한 업무 효율성을 보여주기가 어렵다.
평소보다 조금 더 피곤하거나, 살짝 아프거나,
멘탈이 흔들리면 금방 실수의 양으로 드러난다.
그러니 저절로 바른생활을 하게 되고,
삶의 평화에 방해가 되는 인간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다.
자기 관리 측면에서 나는 아직 갈길이 많이 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나에게 맞는 생활을
잘 빚어나가고 있는 것 같아서 기쁘다.
좋은 루틴과 생활습관들을 찾았으니
이제 남아 있는 숙제는 꾸준함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