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의 친구들과 만나 '외로움'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미혼인 친구들은 현재 남자친구가 없어서, 또는 남자친구가 있어도 결혼에 확신이 서지 않아 불안하고 외롭게 느껴진다고 했다. 나는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럴 수 있지~ 나도 그랬던 것 같아!" 라고 대답했다. 그런 나에게 친구들이 물었다.
"넌 이제 결혼도 하고 애도 둘이나 있고, 이제 안 외롭잖아 그치? "
" 어... 뭐.. 그..렇지? "
나의 대답은 애매했다.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와 대답한 게 아니었다.
나는 남편과 아이가 있는 가정을 꾸렸고, 사이좋게 지내며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겉으로 봤을 땐 분명 외롭지 않은게 맞는데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 , 지하철 안에서 눈을 감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넌 언제 외로웠어? “
작년에 첫째 아이가 대학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원인을 몰라 여러 검사를 해야하는 상황이었고, 간수치가 높아 치료가 필요했다. 이 때는 코로나로 인해 대학병원을 입원할 때 보호자는 딱 한 명만 있어야 했다. 그래서 내가 첫째와 함께 대학병원에 들어갔다. 4박 5일간, 아픈 아이를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돌보는 일은 정말 힘들었다. 혹시 우리 아이가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지냈던 보호자로서의 시간이 문득 외롭게 느껴졌다. 아이가 아파 속상한 마음도 있었지만, 이 아픈 아이를 온전히 책임지는 ‘엄마’로서 외롭고 무서웠다. 아이가 볼까 봐 혼자 숨어서 울기도 했다. 철없는 내가 엄마라는 위치에서 아이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이 버거웠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내가 책임질 수 밖에 없다.아무도 나를 대체할 수 없다. 이 사실이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나에게 외로움은 스스로 책임지는 삶으로부터 온다.
10대 때는 온갖 시험과 수능 공부가, 20대때는 직업을 얻는 일련의 과정이 내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행동들이었다. 남탓, 환경탓 하지않고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해야 할 일을 묵묵히 견뎌내야했던 그 시간이 나에게는 외로운 시간이었다. 친구들이 취직해서 여행도 다니고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나는 그들을 보며 부러움을 삼키고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독서실에 앉아 잡생각이 들고 도망가고 싶을 때면
“그래서 너 뭐할 건데? 대충 놀며 시간 떼우고 싶어? 여기서 도망가면 니 인생 어떻게 책임질건데?” 라고 스스로에게 협박(?)성 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외로움은 내가 제대로 살고 있을 때 동반되는 감정이었다. 만약, 내가 20대때 아무런 목표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삶을 살았다면 외로움보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안고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 번 뿐인 내 인생을 멋지게 살고 싶었다. 그래서 현재도 더 나은 삶을 위해 혼자 자본주의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임장을 다닌다. 남들이 다 자는 새벽에 일어나 공부를 하는 것, 주말 나들이를 떠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임장을 가는 것은 모두 외로운 시간이었다. 외롭고 힘이 들어 도망치고 싶을 때면 나에게 다시 묻는다.
“ 남들처럼 살면서 남들과 다른 인생을 꿈꾸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다수의 행동과 생각과 달라야 한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외로울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외로움을 덜고 싶다면, 내가 스스로 나의 편이 되어주면 된다. 나 스스로를 믿고 사랑해주고, 믿어주고, 말을 걸어주어야 한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듣고 싶었던 힘이 되는 말은 내가 해주면 된다. 그래서 오늘도 졸린 눈을 비비며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이야기 해본다.
“00아, 너는 지금 어제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어. 너는 이미 충분히 잘 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어. 조급해하지마. 남들과 비교하지 마. 지금처럼 매일을 성실하게 살면 되는거야. 장하다 00이! 멋지다 00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