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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 Jun 30. 2024

공간 III

스크린 골프: 인정, 칭찬, 격려의 공간

2년 전부터 오랫동안 손 놓은 골프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이 시점은 둘째 아이가 보육단계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시간을 요구하던 때였기도 했다. 항상 붙어 다니던 아이들이 점점 엄마, 아빠가 제발 자기들의 자유시간으로부터 잠시라도 빠져주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때가 드디어 온 것이었다! 아이들 없이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 

하지만 쾌재를 부른 것도 잠깐이었다. 그동안 휴일은 무조건 온 가족이 함께 움직이곤 했는데, 갑자기 둘만의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난감했다. 처음엔 "이게 웬 횡제야, 애들이  우리 보고 백화점이라도 가라고 하네 " 하고 좋아했지만 쇼핑도 얼마가지 못했다. 

그때 남편이 "우리 스크린골프 같이 쳐 볼까?"라고 던졌다. 골프채 놓은 지 너무 오래돼서 공이나 맞출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아이들 놓고 집 근처에서 두어 시간 보내기에는 괜찮은 것 같았다. 

그렇게 향한 곳이 "스크린 골프장"이다.  처음엔 이런 곳은 아저씨들이나 시간 때우러 가는 곳 아닌가 싶었는데, 이게 웬 딴 세상? 둘이 함께 시간 보낼 수 있는 곳이 여기 만한 곳이 있을까 싶었다.

둘이 차지하기엔 넘치는 사이즈의 공간, 향기로운 커피, 가상이지만 시원하게 펼쳐진 잔디밭!

여기에서는 둘만의 자유를 만끽하며 전국으로, 심지어 해외로 골프 치러 떠날 수 있다. 친절하고 예쁜 목소리의 캐디언니가 응원도 신나게 해 준다.

"나이스 샷~, 나이스 파~, 나이스 버디~, 오호 홀인원!!"

이 공간에서는 함께하는 시간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게임비 내기라도 하면 골프선수가 된 듯이 경쟁도 치열하다. 한 명이 OB라도 나면 "앗싸! 기회가 왔어!" 하고 더 열심히 친다. 잘 치면 "최고!"라고 엄지 척해주기도 한다. 잘 안 돼서 어깨가 축 처져 있으면 언제 경쟁했냐는 듯이 "파이팅"도 외쳐준다.

생각해 보니 이 공간 참 이상하다. 이 공간에 들어가면 빠르게 진행되는 경기 때문에 머리를 누르고 있던 고민을 잊게 된다. 그리고 서로에게 평소에 거의 안 하던 인정, 칭찬, 격려도 하게 된다. 끊임없는 웃음도 짓게 된다.

갑자기 그동안 혹시 골프가 아닌 코치를 위한 코칭스킬을 연마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에 웃음이 나온다. 

"대단해, 잘했어,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괜찮은데?, 좋은데? 역시! 파이팅!" 두 시간 내내 인정, 칭찬, 격려를 연습하게 된다. 나 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던 점을 새롭게 깨닫게 된다. 다음에 가면 한번 대놓고 코칭 연습해 보고 반응이 어떤지 봐야겠다. 

이 공간을 평생 같이 할 수 있는 둘만의 "인정, 칭찬, 격려 공간"으로 정의해 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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