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차를 타고 같은 길을 출퇴근한 지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눈감고도 갈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하다. 집에서 회사까지 회사에서 집을 항상 같은 길로 다니고 있다. 한 달에 20일, 1년이면 240일, 10년이면 2400일을 이 길과 함께 했다.
이 길을 다니면서 특별한 느낌은 없다. 그냥 출퇴근길이다. 하지만 이 길을 다니면서 나는 늙었다. 아마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하늘 위에서 10년의 장면을 빠른 속도로 돌려 보면, 그 길 위에 있는 나는 서서히 늙어가는 게 보였을 것이다.
이 길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길은 변화하는 나를 계속 보고 있었다. 때론 웃으며, 때론 한숨 쉬며 통화한 내용도 이 길은 다 알고 있을 듯하다.
출근길 바쁘게 화장하고, 핸드폰도 보다가 신호를 놓치면 어김없이 이 길은 '운전만 좀 하면 안 되겠니? 딴짓 좀 그만해라.'라고 핀잔을 주었을 것이다.
답답해서 차 안에서 소리를 쳤을 때도 이 길은 ' 그냥 좀 내려놔도 되잖아.'라고 말했을 것 같다.
내가 차 안에서 북받쳐 울었을 때도 '그래, 실컷 울어도 돼. 힘들지? 나도 알아'라고 토닥여 주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저 바닥 밑으로 꺼져가면서 운전대를 놓고 싶었을 때도 이 길은...'너만 없어지면 맘이 편할 것 같니? 네가 만들어 놓은 그들은 생각해야지.'라고 붙들어 주었음에 틀림없다.
이 길은 다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내 차가 지나가면 '저 녀석 오늘도 왔네. 오늘 기분은 좀 어떤가? 오늘도 내가 한 마디 해줘야겠구먼.' 이렇게 귀찮아하면서도 챙길 것 같다.
오늘, 내 공간의 주인공이 된 이 길, 그리고 앞으로도 나의 인생을 같이 달려줄 이 길이 특별하게 다가온다.